★참고문헌★
안진태, 『카프카 문학론』, 열린책들
- 전범위에 걸쳐 「변신」에 관련된 내용만 추려낸 것이다. 전체적인 설명은 많이 적지 못했다.


제1장 카프카의 인물적 배경
3. 카프카의 민족성과 종교성
1) 카프카와 프라하
(생략)
  카프카는 프라하에서 태어나서 일생을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죽어서도 그곳에 묻히게 되어 카프카와 프라하는 영원한 관계를 맺게 된다. 그가 증오하고 또 사랑했으며 언제나 떠나려 했는데도 그를 꽉 붙들어 두었던 도시, 그 세계를 그가 뒤로 물러서서, 그러나 정확하게 하나하나 기록해 놓은 도시, 그 위험스러운 다양성과 생소함이 현대적인 소외의 면모들을 지니는 듯한 도시의 준엄한 진실이라는 도구로 카프카는 <자신의> 상황이 낳은 결과들을 기록하려고 노력했다.
  카프카는 대부분의 경우에서 주위 세계에 부정적 판단을 내렸음에도 이 주변 세계가 카프카의 작품의 주제나 문체에 결정적인 몫을 차지하고 있다. 주제의 기초가 될 수 있는 것으로는 프라하에 사는 독일인들의 섬사람 같은 폐쇄성을 들 수 있다. 카프카는 프라하에서 태어나 그곳에 생활 기반을 두었으면서도, 체코어도 히브리어도 모르는 유대인으로 체코적 토속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일률적으로 독일 교육을 받아 독일 정신으로 성장했다. 물론 이것은 프라하의 상류 유대인의 생활 태도이기도 하지만, 여하튼 생의 뿌리를 박은 카프카의 대지는 체코이면서도, 공간의 위치를 점하는 육체는 유대인이고, 무한대로 하늘을 나는 정신 세계는 독일이다. 이런 배경에서 볼 때 , 독일적이기 때문에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체코인으로부터 배척되고, 오스트리아인에 의해서는 보헤미아인으로 기피되고, 독일인으로부터 유대인으로 경멸되고, 자식으로 부친의 지배 하에 있는 가정에서 소외되고, 유대인으로 기독교에서 단절되고, 무신론자로서 종교적 유대인에게 외면당하고, 예술인으로 일반 대중에게서 이해되지 못한 카프카는 유대인이기에 너무나 독일인이며, 독일인으로서 너무나 체코인이고, 체코인이기에는 너무나 유대인이라는 이율 배반의 화신이다.
(생략)


4)카프카의 종교성
(생략)
  카프카는 1917년 9월에서 1918년 4월에 걸쳐 씌어진 취라우 잠언에서 신학적 물음들과 집중적으로 담판을 벌였다. 특히 『8절지 노트의 기록』중 세번 째와 네 번째에는 신의 창조의 원죄, 실낙원과 최후의 심판에 대한 단상들이 여러 개 발견된다. 카프카의 시각에서 볼 때 인류 역사는 추락과 원죄의 반복으로 나타난다. 그러면 원죄에 관한 카프카의 잠언을 살펴보자.
-  낙원으로부터의 추방은 그 주요 부분에 있어서 영원하다(시간외적인 영원한 과정이다). 그러므로 낙원으로부터의 추방은 최종적이고 이 세상에서의 삶은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의 영원성은 (혹은 시간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그 과정의 영원한 반복은) 우리가 지속적으로 낙원 안에 머무를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곳에서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가 여기 이 세상에서 그 사실을 알거나 모르거나 상관 없이.(H 69) -
  카프카는 여기서 실낙원의 상태, 즉 인간의 시간이 영원과 분리된 상태를 영원한 것으로 묘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실낙원의 영원한 반복이 오히려 인간을 낙원의 영원성 속에 머무르게 할 수도 있다는 역설적인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카프카는 이러한 실낙원 등 성서상의 모티프를 작품에 간접적으로 자주 차용했다. 예를 들어 「변신」에서 부친이 그레고르를 향해 던진 대상은 사과이다. 그런데 다른 과일이나 소도구일 수도 있을 텐데 카프카는 왜 구태여 사과를 등장시켰을가. 사과는 인식의 나무로 실낙원을 상징하며 원죄 의식과도 관련된다. 실낙원의 원인은 아담과 이브를 유혹해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한 선악과, 즉 사과인데 카프카는 이 사과를 작품에 자주 등장시키고 있다.  「변신」에서 부친이 던진 사과 조각이 몸에 박혀 생긴 그레고르의 상처는 <살 속에 박힌 가시적인 기념물>(E 90)로서 그레고르가 인간 이전의 동물적 단계로 퇴행에 대한 벌인 동시에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기억시키는 매체이기도 하여 신화와 현실의 양자적 개념을 암시한다. 인류의 조상이 사과를 따먹는 순간 자기 의식을 갖게 되고 원죄를 느껴 쫓겨나야 했듯이 그레고르는 자기를 의식하는 순간 변신한다. 사과의 형태는 원형(圓型)이며 원형은 종말이 없는 무한을 의미한다. 따라서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 파의 말도 있다. 마찬가지로 그레고르의 고독과 원죄의 짐은 끝이 없어 죽을 때까지 그 고독과 짐을 감내해야 했다. (홍경호, 「카프카의 『변신』연구」, 『카프카 문학론』, 한국카프카학회, 1987, 241면.) (중략)
  카프카는 창세기의 원죄 이야기를 읽은 후 1916년 6월 19일자 일기장에 <인류에 대한 신의 분노>(T 366)라는 말을 적었다. 그는 오래된 유대 전통에 따라 신에대한 논쟁을 벌이면서 신의 잔인함을 비난했다. 그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신의 금기 사항은 근거 없으며, 이를 어긴 뱀, 아담, 이브에 대한 신의 처벌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며 이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  우리 인간은 단지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죄가 있는 것만이 아니라 아직도 생명 나무 열매를 따먹지 못한 데 죄가 있다. 그리하여 죄와는 상관없이 우리 인간이 처해 있는 상황이 죄가 된다.(H 48) -
(생략)


4. 카프카의 여성관
1) 부정적 여성상
(생략)
  심지어 「변신」에서는 근친상간의 면모도 보이고 있다. 폴리처는 평범한 인간 그레고르의 변신을 근친상간적 모티프로 해석하였다. 즉 절대로 소유할 수 없는 여동생을 소유하겠다는 그레고르의 죄악이 변신의 원인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였다.(Heinz Politzer, Franz Kafka, Der K ünstler, Frankfurt/M., 1978, S. 128) 
  음악에 대하여 특별한 재능이나 취미가 없으면서도 여동생의 연주를 듣고 감동하였으며 그 여동생을 자기 방으로 데려가 생명이 붙어 있는 한 그 방 안에 가두어 두고 싶어한 그레고르는 그녀를 음악학교에 보내겠다는 결심을 한다. 따라서 음악이 그의 동경을 나타낸 것이라면, 동생은 소유욕을 상징한다. <그러면 그(그레고르)는 여동생의 어깨 위까지 기어올라가 그녀의 목에 입을 맞추어 주리라. 직장에 다닌 후부터 여동생은 리본이나 깃을 달지 않고 목을 드러내 놓고 다녔으니까.>(E 99)
  심지어는 여동생 그레테 자신도 약간의 애욕성을 보이고 있다. 그레테가 집안의 하숙생을 위해서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벌레가 된 그레고르가 출현하자 불쾌감을 느낀 하숙인들이 이것을 구실로 하숙 계약을 취소하겠노라고 그의 가족들을 위협하자, 이들 하숙인들의 교만에 비분강개해야 할 여동생은 오히려 하숙인들에게 잘못을 빌고 아양을 부린다. 즉 음악에 무관심한 하숙인들의 호기심을 자극시키는 교태 같은 행위를 하자 그레고르는 실망과 분노의 눈초리를 보낸다.
  이렇게 대부분의 카프카 문학의 여성들은 육감적 사랑에 치우쳐 있다. 카프카에게 여성들이란 말하자면 <유혹의 올가미>이며 <남성을 유혹하기 위해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G 178)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카프카의 독신의 남자 주인공들이나 카프카 자신의 공통적 심적 상태인 고독, 불안, 우울, 방만, 유아적 특징, 자질구레한 성찰 따위가 일으키는 강박 관념의 소산으로 여성상도 들 수 있다.
  따라서 카프카 작품의 주인공들의 정신적 갈등 과정에는 언제나 애욕적인 여성들이 등장하여 이러한 갈등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이러한 애욕은 인간이 아닌 그림에서도 등장한다. 예를 들어 「변신」에서 그레고르가 방해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기어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동생이 어머니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의 방에 놓여 있던 가구를 치우는 과정에서 그레고르는 액자 속의 여인과 관련되어 있는 성적(性的) 모티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가 애호하던 가구와 물건이 거의 들려 나가고 방이 텅 비게 되었을 때 소파 밑에 있던 그레고르는 어린 시절부터 사용해 온 책상마저 들려 나갈 기미가 보이자 무엇 하나라도 붙들어 두고 싶은 마음에서 가족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세심한 배려도 잊어버린 채 소파 밑에서 기어나온다. 이때 그레고르의 눈에 띈 것은 바로 텅 빈 벽에 걸려 있는 털제품을 두른 여인의 그림이 들어 있는 액자이다. 그는 급히 벽으로 기어 올라가서 액자의 유리에 들러붙는다. 뜨거운 하체가 차가운 유리에 닿자 그레고르는 쾌감을 느낀다. 이 느낌이 바로 그레고르가 느끼는 애욕의 정점이다. 그가 지금 전신을 감싸고 있는 이 액자만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방어 태세를 취한다.
(생략)


제2장 카프카 문학의 구성 분석
(생략)
-  카프카에서 무엇인가 습득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상황도 최종적이지 못하다. 긍정이든 부정적이든 세상의 상황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은 더 많이 아는 자를 찾아야한다.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Martin Walser, Beschreibung einer Form, Versuch Franz Kafka, München, 1961, 30.) -
  이렇게 시간적 지형적으로 서구의 계몽적 세계와 거리가 먼 카프카 작품은 바로 그의 시대의 비판의 결과로서 이해될 수 있다. 즉 카프카에게 있어서 외적 현실은 보편성이 상실된 체험인데, 이는 그 당시의 시대 상황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페터 지마에 따르면 카프카 텍스트의 다의성은 주체의 위기에서 새로운 주체성을 찾으려는 세기 전환기 소설의 기본적인 특징에 해당된다. 즉 <세기 전환기의 소설들은 모든 일회적인 것과 특수한 것을 의문시하는 매개의 중의성을 그 정반대의 차원 - 텍스트와 그 기호의 다의미성 - 으로 변화시키려는 변증법적 시도>인 것이다. (페터지마(서영상, 김창주 공역), 『소설과 이데올로기, 현대 소설의 사회사』, 문예출판사, 1996, 301면 이하.) 따라서 카프카의 불확정적인 서술 전력의 배경에는 세계 대전 이후의 20세기의 상황, 즉 소외 의식과 불안이 팽배했던 당시 사회적 혼란과 무관하지 않다.
  19세기 말엽에서 20세기로 전환하면서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야기된 계층간의 갈등, 제국주의 경쟁 하에서의 국가간의 대립, 전통적인 기독교 이념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에서 비롯된 종교관의 분열 현상 등이 이 시대 상황을 대변한다. 외적 현실은 이미 절대 규범과 보편적 가치를 지니지 못하고 뿌리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으며, 각 개인은 저마다의 세계 속에 파묻혀 공동의 이해를 이룰 수 없다. 기존 가치들은 절대성을 상실하고, 개인이 지금까지 삶을 규정하고, 해석하고, 밝혀 왔던 모든 관념들은 보편성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현대 문명이 낳은 비인간화와 부조리한 사회의 현실이 결과적으로 계몽주의 이래로 과학적인 이성으로 극복했다고 믿어온 또 다른 현실에 불과했다는 인식은 인간으로 하여금 어떠한 판단도 확신할 수 없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렇듯 인간 상호 간의 관계가 절대 규범과 보편적 가치를 상실하고, 정상적인 사고 행위에서 보편 이념이 표출될 수 없으며, 보편성을 창출하고 매개해야 할 언어가 그 기능을 상실한 상황에서 외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꼼꼼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해야 한다는 요구는 시대를 초월한 초석을 형상화하려는 카프카의 창작의지와 상반될 수밖에 없었다.(G 185) 따라서 카프카는 작품에서 자신의 독특한 보편성을 전개시킨다.
  카프카의 작품에서 서로 모순되거나 이질적인 요소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긴장상태로 양립할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카프카는 소재의 변형을 통해 자신과 더불어 문제시함으로써 인류의 발자취를 반성한 것이다.
  결국 카프카의 작품은 서구 모던의 합리성의 위기를 확인해 준 셈이다. 따라서 소위 새로운 시대적-계몽주의적 인식 능력이 그의 작품의 여러 곳에서 언급되어 있다. 그러한 형상은 종종 전근대적 혹은 고대적인 모티프와 상황의 형태로 나타나 우리의 존재와 존재의 의의를 보다 근본적인 입장에서 파악시킨다.
  이런 배경에서 카프카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카프카 문학을 우연히 대하면 그것은 기괴하고 무의미한 유희, 그저 자기 자신에 몰두하고 있는 황당무계한 행위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프카의 기술된 언어만 살펴보아도 이러한 해석은 타당치가 않는다고 인식하게 된다. 논증의 혼란 속에 내재적 진실이 담겨 있는 것이다.
  카프카의 작품에 기술된 것은 깊이 분석해 보면, 냉철하고 명확한 조서처럼 즉물적인 언어이며, 어떠한 요술도 또 어떠한 <순수한> 추상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따라서 황당무계한 행위처럼 생각되었던 것이 사실은 참된 현실이며 우리 자신의 아주 구체적인 운명이 된다. 이와 반대로 지금까지 현실이라 생각되었던 것이 가상(假象)의 모습을 띠게 된다. 환영이 진리가 되어 나타나고, 여태까지 참된 현실이라고 믿어 왔던 것이 허위로 나타나는 것이다.
  (중략)
  한편으로 기울지 않는 공평한 곳에서 인간은 구제된다. 따라서 카프카의 문학을 인간 전체의 실존적 묘사로 여겨, 즉 삶에서 거리를 두는 전체성으로 여겨 끊임없는 현실 압박에서 벗어나는 구제를 얻을 수 있다. 이 내용을 요약해 볼 때, 카프카는 우리를 현실과 거리가 먼 꿈의세계로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사는 현실을 직접적으로 절실하게 체험시키고 있다. 


1. 카프카의 언어
2)시각적 서술
(생략) 카프카는 무대 장면적인 묘사를 선호한다. 그는 일단 그의 의식 속에 단락적으로 들어온 사상(事象)을 정지시켜 집중적으로 집요하게 묘사함으로써 가시적(可視的) 인지(認知)를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구체적인 형상 세계로 시각화 경향은 현실의 탈개념화 과정과 맞물린다. 추상적인 개념이나 논증적 담론보다는 구체적으로 시각화된 형상 기호는 텍스트 체험 과정에서 수용자 직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는 논증적 담론에서의 개념적 현실 인식이 아니라 체험적 미적 인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유선, 「디지털 다매체 시대의 글쓰기 전략」, 『카프카 연구』, 제12집, 한국카프카학회, 2004, 252면 이하.)
  「변신」에서 그레고르가 변신한 갑충은 사실상 표현될 수 없고, 결코 볼 수 없는 상상적 동물인데도 우리에게 친숙한 시각적 동물로 이해되어 <부당함>과 <당연함>의 당혹스런 동시성을 갖게 한다. 따라서 본 적이 없는 신비스런 동물에서 아무런 놀라움을 발견하지 못하는 <기괴한 일상성>이 놀랄 만하다. 갑충이란 명백한 동물로 극히 시각적으로 표현되었기만 관계된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실제로 그 동물을 본 사람이 없다. 따라서 이 동물을 이해하고 관찰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갑충 그레고르를 실재하는 갑충으로 해석하는 것은 어리석다.
  카프카 자신이 이 점을 명확하게 말한 적이 있다. 쿠르트 볼프 출판사가 슈타르케에게 「변신」에 들어갈 삽화를 그리게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을 때, 카프카는 출판인에게 보낸 1915년 10월 25일자 편지에 <슈타르케가 어쩌면 곤충을 그려보고 싶어할 거라고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결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제가 그의 힘을 제한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제가 당연히 제 작품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 요청하려는 것입니다. 곤충 그자체를 그려 넣어서는 안 됩니다. 어렴풋하게 곤충을 암시하는 것조차 결코 안 됩니다>(F. Kafka, Briefe 1902~1924, hg. v. Max Brod, Frankfurt/M, 1986, S. 136.)라고 쓰고 있다. 갑충을 실재하는 동물로 해석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의미다. 이렇게 갑충은 인간의 표상 세계에 들어맞을 수 없는 이물(異物)로 전혀 다른 것, 이해할 수 없는 것, 감각과 표상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것인데도 작품에서는 시각적으로 당연한 동물로 등장하고 있다.


2. 비유와 상징
2)상징
(생략)  이러한 여러 가지 관점에서 볼 때 카프카 문학이 지닌 <전체로서의 상징성>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그의 문학의 올바른 해석이 불가능하다.
(중략)
  넷째는 시대와 장소를 떠난 보편적 인간 상황의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다. 부유한 유대인이 내일 아침에 개처럼 비참히 학살당할 후도 있다. 오늘의 도둑이 내일 아침에 영웅이 되고, 오늘의 매국노가 내일 아침에 애국자가 되는 변신의 시대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 보건대, 양심에 따라 변신을 거부하고 끝까지 고려 왕실에 충절을 지키다가 선죽교에서 살해당한 정몽주와 몰살당한 그의 가족들, 한편 그를 죽여 변신한 뒤 왕권을 약탈하고 500년 동안 자손을 많이도 번식한 이방원. 어느 쪽이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6.25전쟁 때에도 한 동네에서 나름대로 똑똑하고 꼿꼿했던 탓에 공산주의자 혹은 국군에게 학살당한 사람이있는 반면 머리가 부족했거나 실리에 약삭빨라 변신한 덕분에 살아남아 면장 군수 국회의원이 되어 자손을 번식하고 출세시킨 이들도 있다. 생존 경쟁의 승리자로서 크나큰 긍지를 느낄 수 있지만 살아남은 자신에 대해서는 어쩐지 거북하고 계면쩍은 감정이 될 수 있는 것이 변신이다. 치열한 생존 경쟁의 시대, 강하게 살아남는 것이 미덕인 시대에 인간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것이 변신이다.
  이러한 인간 상황의 변신이 카프카 작품에도 반영되어 이미지나 용모까지도 의도적으로 변신시키는 동기가 나타난다. (중략)
  앞에서 카프카의 상징적 성격을 작품 「변신」을 중심으로 고찰해 보았다. 그런데 우의(寓意)를 나타내는 알레고리와 상징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알레고리란 추상적인 개념이나 사상재(思想財)와 사유(思惟)된 복합체를 상징적으로 지각(知覺)되는 구체적 실체의 현상으로 옮겨놓는 화법을 말한다. 즉 이념적인 것이 의인화로 물질화된 것이다. 여기서는 어느 것 대신에 어느 <다른 것>을 말하지만, 이 <다른 것>이란 그 자체로서의 뜻이 없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난데없이 한 마리의 커다란 갑충이자 독충이라는 딱정벌레로 변해 버림으로써 자기의 인간으로서의 실체를 은폐한다. 인간이 벌레로 변신함으로써 자기 실체를 은폐한다는 기만 행위는 카프카 나름의 알레고리 수법이다.
  카프카의 알레고리는 비본질적인 언어 양식이 아니라, 본질적인 언어 양식으로 이해된다. 각각의 형상은 자체적으로 의미되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즉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의 언어 형태, 형상과 사고 가능성 등은 항상 스스로의 세계를 나타낸다. 그러나 그 뒤에는 매우 깊은 인식이 담겨 있다. 자기 형상적 의미 배후의 본질적 의미는 잘 해명되지 않는다. 특히 이 본질적 의미가 우리 삶에 관련된 일반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에 관련될 때 더욱 해독되지 앉는다. 그리고 알레고리는 이렇게 추구된 일반적인 것에는 삽화되지 못하는데, 이렇게 추구된 일반성은 우리 인식의 고유 법칙으로 다른 존재가 되거나, 인간 자신의 인식이 변하기 때문이다. 본질성은 형상으로 고정되어야 마땅한데 본질적 영역과 비본질적 영역의 혼돈으로 인해서 독자는 본질성의 정확한 규정이 어렵다.
 

제3장 카프카 문학의 내용분석
3. 꿈같은 초현실적 문학

1)꿈같은 초현실적 작가
(생략)
  조겔도 카프카의 작품이 서술구조상 꿈의 원리를 철저히 견지한다는 점에서 카프카의 천재성을 인정하였다.(Vgl. Walter H. Sokel, Franz Kafka, Tragik und Ironie, Frankfurt/M., 1976, S. 9 f.) 카프카 스스로도 자신을 <잠자며 꿈꾸는 자>로서 또한 <깨어 있으면서 꿈꾸는 자>(S. Freud, Der Dichter und das Phantasieren, in: Ders. Bildende Kunst and Literatur, Frankfurt/M., 1969, S. 177.)처럼 글을 쓰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뜬 눈으로 꿈을 꿀 줄 아는, 낮에도 꿈꿀 수 있는 자인 카프카는 깨어 있는 상태에서 <완전히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T 291, 468)할 수도 있고, 또한 종종 <몰아의 상태>(F. Kafka, Briefe 1902~1924), Frankfurt/M., 1958, S. 385.)에 도달하곤 했다. 따라서 카프카는 자신의 글쓰기를 <보다 깊은 잠>으로 또는 <꿈같은 내면적 삶>(T 306)의 묘사로 이해한다.
  이런 맥락에서 꿈과 같은 서술이 카프카 문학의 공식으로 볼 수 있다. 카프카가 언급하는 모든 것은 정신적인 의미로 수렴된다. 형상들의 상호 연관성 상실, 주인공들의 불확실한 전망, 불안의 기본 정서, 꿈과 현실의 결합에서 카프카와 초현실주의자들 사이의 유사성이 나타난다. 예컨대 현대 회화의 연상(聯想) 묘사, 몽환적 환상 등이 상기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카프카에 의해서 묘사된 현실은 꿈 속처럼 비현실적이며 인간 상호간의 관계는 단절되어 있다. 카프카는 자신의 이야기가 <형상들>일 뿐이며, 이 형상은 <바라봄>이 아닌 <눈감음>의 결과라고 말했다.(G 51 f.) 이 눈감음은 외부 현실 세계의 사실적인 묘사를 포기하고 현실적인 사건들을 꿈같이 비현실화 시킨다.
  따라서 인습적인 시간 개념의 상실, 재빠른 공간 변화, 원근의 급박한 뒤바뀜, 순간적인 등장인물들의 배열, 감각적으로 불가능한 시점 인식의 변화, 모든 사건들의 뒤엉클어짐 등에서 우리는 꿈의 기교로서 몽환과 같은 내면 세계를 표출하려는 카프카의 의도를 직감할 수 있다. 카프카는 고정되고 인습적인 삶에 얽매인 관념의 세계로부터 탈피하여 보다 포괄적인 인식을 위한 불가결한 <거리>를 창출해 내기 위하여 세상의 잡다한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요구한 것이다.
(중략)
  그러나 카프카 특유의 방식인 꿈같은 초자연적 현상은 작품의 끝까지 재전환이나 해명되지 않아 독자를 혼란 속에 빠뜨린다. 카프카가 쓴 내용은 끊임없이 의문만 제기시키는 것이다. 카프카의 서술자가 묘사한 것이 자체적으로 파악되지 않는 이유는 항상 발생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을 상대했기 때문이다.(Vgl. Hartmut Binder, Motiv und Gestalrung bei Franz Kafka, Bonn, 1966, S. 360.) 대체로 처음에 꿈같이 낯선 상황이 묘사되어 독자는 이에 대한 해명을 기대하며 계속 읽어가지만 후속되는 대목에서도 앞서의 내용에 대한 설명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점점 미국에 빠져들어 독자는 논리적 연결을 위해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보지만 실패하고 만다. 이에 따라 인물들이 자아의 분열로 말미암아 출구 부재의 허구 공간에서 자체내의회전 운동을 하는 텍스트의 구조는 독자들에게 불가능한 논리를 쫓는 원 운동을 강요한다.
  이렇게 꿈의 형태는 분석적 방법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논리적 시각으로 접근해들어가다가 미로에 빠지는 원인 또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이러한 혼란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카프카의 개별적인 형상과 서술 자체를 모조리 음미 검토하여 작품의 우주적인 뜻을 이해해야만 한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카프카의 소설은 느낌으로서 공유체험으로 먼저 접근해야 한다. 분석적 시각으로서가 아닌, 종합적 이미지로 파악되면 카프카의 소설이 안고 있는 난해한 다의성이 일원론적 세계관으로 드러난다. 즉 카프카의 작품을 느낌으로서 공유 체험으로 접근하면 작품의 몽환적 내용이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예를 들어 사람이 동물로 변하는 모티프로 시작되는 「변신」의 이상한 특징은 꿈같은 현상에 대한 사실적 차원의 해석이다. 「변신」에서 그레고르의 변신도 분석적 시각이 아닌 종합적 이미지로 파악되면 서술자에게 아무런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부득이한 자연 현상으로 수용된다. 심지어 작품을 읽어 가노라면 독자도 서술자와 동일한 입장을 취하게 된다.(Vgl. Benno von Wiese, Die deutsche Novelle, Von Goethe bis Kafka, Interpretationen II, Düsseldorf, 1962, S. 322.) 이는 카프카의 불확실성이 확실성으로 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변신의 사건은 매우 중대하기는 하지만 인간이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이 유효하게 되는 것이다.
  나겔은 작품의 내용이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쓰여져서 독자는 자기 눈앞에 전개되는 사실이 있을 수 있는 일인지, 혹은 있을 수 없는 꿈인지를 생각해 볼 겨를도 없으며, 결국에 가서는 처음에 도저히 믿어지지 않던 꿈같은 사실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바로 카프카 작품의 특징이라고 말했다.(Bert Nagel, Franz Kafka, Aspekte zur Interpretation und Wertung, Berlin, 1974, S. 89.) 따라서 그레고르가 갑충으로 변신하여 잠에서 깨어나는 것보다 그것에서 아무런 놀라움을 발견하지 못하는 <기괴한 일상성>이 발생한다. 놀라운 대상이나 사건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거나 당혹케 하지 않고 그것들을 정상적인 것처럼 아무런 동요 없이 천진무구(天眞無垢)하게 서술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카프카의 소설에서는 환상적 세계와 현실적 세계가 서술상의 특수한 관점에 의하여 결합하게 된다. 독자는 <불신의 유예(猶預)>나 <잠정적인 불신의 지양>(Erich Heller, Franz Kafka, München, 1976, S. 69.)을 거듭하면서 카프카의 작품을 <읽고, 경악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다.>(Bert Nagel, Franz Kafka, Aspekte zur Interpretation und Wertung, Berlin,1974, S, 11.) 경악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는 상반된 감정은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을 높여준다.(김용익, 『프란츠 카프카 연구』, 삼영사, 1984, 9면.)
(생략)


2)꿈같은 초현실적 작품
  카프카의 작품들은 우리들을 꿈같은 세계 속으로 불러들인다. 이 꿈같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나 사건은 시간과 공간으로 규정된 현상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져 시간과 공간, 원인과 결과와 같은 경험적 질서는 카프카의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결론적으로 카프카의 작품 세계의 <시도 동기>는 꿈의 원리와 꿈의 구조로, 즉 <정신적인 것을 투사하고 주관적인 것을 구상화시키는 문체 의지와 형식 의지> (Walter H. Sokel, Franz Kafka, Tragik und Ironie, Frankfurt/M., 1976, S. 10.)로 표출된다.
  <어느 아침 어수선한 꿈에서 깨어, 자기가 한 마리의 거대한 갑충으로 변신하여 침대 위에 누워 있음을 발견한다>(E 57)는 시작 부분처럼 「변신」은 <어수선한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시작된다. 이러한 시작 부분과 마찬가지로 「변신」의 마지막 부분, 즉 그레고르가 죽은 후에 계속해서 서술된 에필로그에서도 갑충으로의 변신이 꿈의 세계를 대변하고 있다. 동일 시점적 소설이 중심 인물이 죽은 후에도 계속해서 그의 시각으로 이야기되는 것은 하나의 꿈에서 또 다른 국면의 꿈으로 변전되는 것이다. 이렇게 카프카의 기법은 인간을 기상천외의 갑충의 모습을 변신킴으로써 꿈과 같은 초현실의 세계를 일상적인 현실 세계에 대치시킨다.
  흔히 카프카의 소설을 난해하다고 하는 것은 이렇게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환상적인 일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진지하게 다뤄지기 때문이다. 「변신」에서도 사람의 형태를 가진 생물이 하급 곤충으로 변하고도 역시 인간으로서의 기능을 지속하고 있다. 사람이 별안간 벌레로 변해도 정신 기능을 잃지 않고 있음이 사실이라면 그 사실은 인과성을 벗어난 것으로서 그 이유를 꿈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레고르는 이미 변신했으면서도 여전히 인간으로 남아 있다. 그는 인간으로서 자기 속에 숨겨진, 보다 높은 곳에 이르려는 인간적인 충돌을 발견하면서 현실과 꿈같은 세계를 끊임없이 내왕하는 이중의 역을 하고 있다. 즉 그는 완전히 자기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완전히 자기 밖 꿈속에 있는 이중의 실존 상태에 있다. 사고와 존재를 일치시키는 상황이 조성되어 현실과 꿈같은 상황이 융합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비현실적인 꿈같은 사건이 점차 진짜 현실로 하나씩 입증되는 사실이 카프카 문학의 특징이다. 「변신」의 첫 구절의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E 57)라는 주인공의 꿈에 잠긴 듯한 독백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실제의 현실로 전개된다. 꿈같은 방식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자연적인 양상을 띠게되는 것이다. 그레고르는 자신의 변신을 이상하지만 있을 수 있다고 받아들이면서 앞으로 일어날 일에 생각을 집중한 결과 모든 망설임과 불확실성은 사라진다. 카프카는 묘사의 정밀성으로 꿈같은 것을 현실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카프카 문학에서 꿈같으면서도 줄거리는 매우 현실에 근거하여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 구분되지 않는다. 카프카 자신도 「화부」를 <어떤 꿈에 대한 회상>(G 53)으로 그리고 「변신」을 <표상이 배후로 물러나 있는 현실을 드러내는 꿈>(G 55)으로 보고 있다. 또 카프카는 「변신」과 관련하여 <꿈은 심상이 숨겨져 있는 현실을 드러낸다. 이것은 삶의 끔찍스러움이며 예술은 충격적인 성격이다>(G 55 f.)라고 말한 바 있다. 카프카는 야노우흐와의 대담에서 <변신은 무서운 꿈입니다. 소름이 끼치는 표상입니다. 꿈은 현실을 폭로하는데, 그 현실의 배후에는 표상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삶의 공포입니다. 예술이 주는 충격이지요>(G 55 f.)라고 말하고, 이어서 <변신은 결코 나의 고백은 아닙니다. - 어느 의미에서는 - 비밀 누설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겁니다. 물론 암호 따위는 아닙니다. 그저 그것뿐입니다>(G 55) 라고 말하고 있다.
(생략)


5.실존주의적 개념
1)존재를 위한 문학
(생략)
  실존주의적 방법은 전후 실존주의 사상적 경향과 더불어 키르케고르의 영향과 베르그송, 후설의 철학 사상을 발판으로 하여 독일에서는 신화, 환상, 꿈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현실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밝히려는 데서 대두되었다. 실존주의는 존재와 실존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질문과 인간이 이 세계에 어떻게 존재하며 무엇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일상의 현실로 복귀함으로써 그 해답을 얻으려는 철학의 한 방향이다.  따라서 자아의 동일성에 관한 문제가 실존주의의 첫 번째 전형적인 문제로 나타난다.  실존주의의 또 다른 측면은 존재의 부조리성이다. 욕망하는 정신과 실망만 안겨 주는 세계 사이의 절연, 통일에의 향수, 지리멸렬의 우주 그리고 그 양자를 한데 비끄러 매놓은 모순이 바로 부조리이다. 실존주의자들은 표현주의 시대에서 성립된 카프카의 작품에서 실존의 문제가 예증적으로 표현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실존주의는 실존의 관계 상실과 결속 상실을 주장한다. 인간이 발견한 세계에는 자연 법칙이 있을지언정 보편타당성을 지닌 인간적 법칙은 없다. 따라서 인간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기존의 행동 법칙에서 볼 때나 스스로가 설정한 일의 선택에서도 그러하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이 되고자 하는 것을 위하여 <구상>한다. 이러한 구상은 누구에게나 자유롭다. 인간은 자유롭도록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판결을 받은 이유는 그가 그 자신을 창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유롭지 못한데 그 까닭은 일단 세계에 던져진 그는 자기가 행하는 모든 것에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즉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러나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자신의 의지에서가 아니므로 존재에 책임이 없다. 즉 이 세상에 원해서 태어나지 않았고 또 원해서 이 세상을 떠날 수도 없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허무 속으로 내동댕이쳐진 존재>이다.
  실존주의 내용대로 카프카 작품의 주인공들은 허무 속으로 내동댕이쳐져 있다. (중략)
  중편 「변신」에서도 주인공 그레고르가 어느 날 잠에서 깨어 보니 자신이 커다란 갑충으로 변신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변신」이 상징하는 바와 같이 본질적으로 변해 버린 부조리의 주인공들에게는 삶이 고역일 수밖에 없다. 그레고르는 부친이 던진 사과가 등에 박히는 중상을 입고 사랑하는 여동생이 밖에서 잠가 버린 방 안에서 죽는다. 그레고르는 죽고자 하는 의도가 없어도 세상에 의해 허무 속으로 내동댕이쳐져 불가항력적으로 죽임을 당한다. 그것은 그가 대결하고 있는 부조리한 운명이다.
  이렇게 카프카가 그리는 세계는 실존과 결속을 상실한 부조리한 세계로 나타난다. 인간은 예기치 못한 완전히 변화된 현실과 대립하고 새로운 상황에 의해 고통을 당한다. 결국 문학 작품은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따라서 이들 주인공들이 당하는 부조리한 사건은 실제로 우리 모두에게 닥치는 상황이다. (생략)


제4장 카프카 문학의 소외 개념
2. 이념적 배경
1) 카프카의 이데올로기적 분석
(생략)
  카프카는 사회주의 경향의 <클럽 믈라디취>와 노동자 계급에 대항한 정치 경제적 억압에 대항하여 투쟁한 정치 단체 <빌렘 쾨르버>의 집회에도 참가했다. 클럽 믈라디취는 <자유학교>의 설립자인 프란시스코 페러의 처형에 반대하는 집회를 개최하였다. 카프카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카차라는 사람이 기록한 바에 따르면 카프카는 1909년 10월 13일에 있었던 이 시위에 참가했다. <군국주의와 애국심>이라는 주제로 모임을 개최한 후 이 클럽은 반군국주의와 기타 반국가적인 이념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프라하 총독령에 의거하여 해체되었다.
  카프카는 야노우흐에게 <자본주의란 내부에서 외부로, 외부에서 내부로, 상부에서 하부로, 하부에서 상부로 향하는 종속 체계이다. 모든 것이 종속적이며 얽매어 있다. 자본주의는 세계와 영혼을 지배하는 상태다>(G 102)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비판이 카프카의 작품에 자주 반영되고 있다.
  카프카는 작품 「변신」에서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신한 주인공의 개인적인 삶을 통해 다가오는 후기 자본주의의 물신화되고 기능화 된 인간의 일그러진 모습을 정확하게 집어내고 있다. 그레고르는 가족 구조 내에서 뿐만 아니라 산업 경영 구조 내에서도 오직 그의 기능 역할로 필요한 존재가 된다. 그는 절대로 인격으로서 필수적이 아니라 일정한 기능의 수행을 위해 필수적이다. 그는 후에 <도대체 아침에 두서너 시간만 일을 하지 않아도 양심의 가책을 받아 멍하게 되어서 곧 침대에서 빠져 나오게 되고 마는 그런 충실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단 말인가>(E 62 f.) 하고 의문을 표시한다. 자신의 기능 역할을 수행해야만 비로소 사회적 유기체의 건강이 가능해지는데 이는 가족과 경영에 대한 <효용성>을 의미하며, 이런 경우 자신의 인격은 병들게 되는 것이다.(Vgl. Wilhelm Bernsdorf, Wörterbuch der Soziologie, Frankfurt/M., 1972, S. 836.)
(생략) 


3. 주체의 객체화
  마르크스에 의하면 개인의 사회적 역할은 물질의 관계로 규정된다고 한다. 따라서 인간은 소비 형태의 관점에서 파악되고, 이 소비 형태가 그 신분을 결정한다. 이렇게 인간이 소비 형태로 파악되는 내용이 카프카 작품에 자주 암시된다. 예를들어 「양동이를 탄 사나이」에서 여자 석탄 장수는 곧장 값을 지불할 수 없는 고객에게 <아무것도 아니에요>(B 92) 혹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요>(B 93)라고 말한다. 고객은 인간적인 관계에 기초해야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즉시 지불이냐 아니면 사후 지불이냐 하는 지불 방식에 따라 고객 접대의 기준이 결정되므로 곧장 가격을 지불하지 못하는 옛 고객은 석탄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작별>(B 94)로 사라져 버린다. 「양동이를 탄 사나이」에서 우리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객체에 대한 인간의 사물화를 볼 수 있다.(Joachim Isreal, Der Begriff Entfremdung, Reinbeck bei Hamburg, 1972, S. 380.) 즉 인간의 관계는 오직 객체의 교환 가치를 통해서 결정되고 있음을 본다. 이 작품에서는 <사물 숭배> 때문에 옛 고객에 대한 인간적 관계가 무시되어 버린다.(한석종, 「카프카의 난해성과 그 구성 요소」, 『카프카 연구』, 범우사 1984, 47면.)
  이러한 인간의 사물화가 「변신」의 에필로그에 해당되는 그레고르의 사후에 보인 가족들의 태도에서 정점으로 나타난다. 갑충으로 변신한 후 처음 얼마 동안은 가계 수입에 공헌하는 인간의 흔적을 아직도 느껴서인지 가족들은 그레고르를 계속 인간으로 취급한다. 인간 그레고르와 갑충으로서의 존재 사이에는 그 어떤 상응점이 있어 실질적으로는 그 어떤 변신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변신 이전과 이후의 생활은 너무나 일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레고르는 5년이나 직장에 근무하는 동안 한 번도 병을 앓아 본 적이 없고, 아침 기차 시간에 지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회사로부터 신임도가 높았다. 매일같이 여행을 해야 하고, 기차 연결에 대한 걱정, 불규칙하고 좋지 못한 식사, 언제나 바뀌는 고객들과 사무적인 교제를 해야 하는 등 너무나도 증오스러운 외판원 생활은 자신의 경제적 노력 없이는 도저히 살아 나갈 수 없는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계속되어야 했다.
  이렇게 그레고르는 세일즈라는 직업이 싫지만 가족 부양을 위해 온갖 희생을 다해 온 것처럼 앞으로도 자신의 회사 사장에게 싫지만 가족 부양을 위해 온갖 희생을 다해 온 것처럼 앞으로도 자신의 회사 사장에게 부친이 진 빚을 다 갚기 위해서는 아마 5~6년은 더 그 노릇을 해야한다. <나는 내 부모 때문만이 아니라면 벌써 오래전에 해약을 하고 회사를 그만 두엇을 것이다. 나는 사장 앞으로 걸어가서 솔직하게 나의 생각을 말했을 것이다. 그러면 사장은 책상에서 아래로 굴러 떨어졌을 것이 틀림없어.>(E 58)
  (중략) 의무와 혐오감, 이 양자의 어느 것도 자의로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레고르는 자신의 실체가 은폐되는 벌레로 변신한다.
  그레고르가 갑충으로 변한 이후 그의 가족에 대한 헌신은 망각되고 계속 (가계 재정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동물로 조재하자 마침내 가족들은 짜증을 느껴 그를 인간이 아닌 물건으로 취급하게 된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아 그가 죽자 가족들은 벌레와 그레고르를 동일시할 것인가를 놓고 곤혹해 하던 갈등을 버리고 벌레로 죽은 그레고르의 시체를 단순한 사물로 간주한다. 시중드는 할멈이 옆방에 있는 <물건>(E 106)을 치워 버릴 걱정은 말라고 하며 집을 떠났을 때 가족 가운데 어느 누구도 섭섭하다는 눈치조차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그레고르 자신으로 볼 때는 벌레가 되어서도 계속해서 자신의 완전히 무의미한 작업 생활의 실체, 인간적 따뜻함의 결여를 보게 되어 메마른 일상생활 그리고 특히 자신의 육체와 욕구로부터 철저히 소외된다.
  심지어 「변신」에서는 순수 예술도 기업 세계의 결정체인 상품화, 즉 사물화에 좌우된다. 그레고르는 비록 생계 유지를 위해 자신의 내면 생활을 포기하더라도 여동생만은 아무런 걱정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에 정력을 쏟도록 하고 싶었고, 이러한 뜻은 곧 그레고르의 유일한 정신적 힘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그레고르가 아끼던 여동생의 음악성은 어느 날 저녁, 그의 부모가 하숙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간소한 연주회를 베풂으로써 상품으로, 오락으로 전락된다. 딸의 연주회를 마련하는 부모의 행위는 딸의 음악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음악이라는 수단을 통해 딸을 혹사하고 착취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그 음악을 감상하는 하숙인들은 음악에 심취하여, 음악성의 깊이를 추구하기 보다는 호기심으로 식사 후의 무료와 권태를 달래며, 또한 경제력으로 그레고르의 가정을 지배하는 권력 의식을 충족시킨다.
  「변신」에서처럼 인간에서 벌레를 거쳐 하나의 사물로 이어지는 한 인간의 운명은 사회주의에서 인간의 사물화로 암시된다. 이에 관한 마르크스의 이론에 의하면 상품의 경제적 품질이 아니라 교환 가치에 의해서 개인의 사회적 지위가 상징되고 그다음에 인간의 물질화가 시작된다고 한다.
  (중략) 카프카 작품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의지에 어긋난 일방적이고 기능적인 직업속에 머물고 있다. 직접성과 전문성에 수렴(收斂)된 직업은 개인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하고 무의미한 일로 느껴질 수박에 없다. 따라서 「변신」에서 그레고르는 이러한 직업에 대한 처지를 저주하면서 <악마여, 이 모두를 쓸어가 버려라!>(E 58)라고 외친다. 개인은 거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손에 조종당해 사물화되면서 자신의 결정이 환상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물질적인 발달만을 추구한 나머지 인간을 비참 속으로 몰아넣는 산업 사회의 능률주의와 물질주의에 대해서 카프카는 다음과 같이 극단적인 공격을 하고 있다. <산업에 있어서의 테일러 시스템과 분업은 끔찍스럽다. 거기에는 인간의 노예화 이상의 것이 들어있다. [......] 모든 창조의 가장 숭고하고 가장 범해서는 안되는 부분, 즉 시간이 불순한 기업적 이해(利害)의 그물 속에 빠져 버리게 된다. [......] 이처럼 심하게 능률화된 삶이란, 바라던 부와 이득 대신에 굶주림과 비참만이 자라날 수 있는 소름끼치는 저주로 가득 차게 된다. [......] 인간은 생물이라기보다 오히려 사물, 물건인 것이다.>(G 105)
  (중략)
  이런 식으로 카프카의 세계에서 기계화된 산업 사회에서의 천재성은 상실되고 모두가 일반화된 현대 인간의 처지가 된다. (중략)
  결국 산업 사회에서 개개인을 평가하는 규준은 천재성 등 인격이 아니라 이용가능성, 즉 기능적 업적 등이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실존적 가치를 지녀야 할 어느 개체가 자신에 대응하는 집단 혹은 전체에 대해 소기의 값어치를 지니지 못할 때 그 개체의 배제가 현대 사회의 통념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개인적으로 천재성보다는 기능적인 직업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그러한 사회는 기술 진보 이외의 다른 생활 목적을 알지 못하고 이데올로기, 즉 마르크시즘, 파시즘, 종교 정신 등을 이용하여 인간을 동화시킨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사회, 즉 마르크시즘, 파시즘, 종교 정신 등에 의한 인간 동화의 결과는 인간의 착취이다.  (중략)
  카프카의 「변신」에 이러한 사상이 잘 암시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그레고르는 스스로의 가족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회사와 가정의 톱니바퀴가 되려고 영혼을 희생적으로 직장에 팔아 버린다. 「변신」에서 지배인은 아주 경멸적인 언사로 회사의 피고용인이 점점 능률이 떨어지면서 쓸모없이 되어 가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이때가 실은 대단한 이익을 남기는 시기는 못 된다는 점을 우리는 인정을 하기는 하네. 그러나 잠자 군, 전혀 이익을 남기지 못하는 시기란 없는 것이며, 또 있어서도 안 되네.>(E 65) 이 진술에서 지배인이 그레고르의 직업적 처지를 혹독히 비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그레고르의 판매고는 떨어지고 있어서 회사에서의 그의 처지가 위태롭다.
  그레고르는 엄청난 업무량, 진실되지 못한 대인 관계 등 직업에 대한 많은 불만에도 불구하고 5년 동안 성실히 일해 왔으므로 직장에서 자기 위치는 확고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레고르가 변신한 수 업무적 수단으로서의 이용 가치를 잃게 되자 나오는 회사 지배인의 태도는, 개인과 직업 사회는 상호간에 유용한 경제 수단으로서만 관계를 맺고 있음을 드러낸다. 선량하고 사심 없는 행동은 기업 세계의 눈에는 악하게 비쳐지는 것이다. 지배인의 언급에서 카프카는 거의 냉소적으로 인간이 얼마나 철저하게 시민 사회의 엄격한 기능주의와 노동 이데올로기에 얽혀있는 가를 보여준다. 고용주는 피고용인에게 직접적이고 외부적인 권력을 통해서 피고용인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둔다. 그 때문에 그들 피고용인은 <외적 권력의 연관 속에서 변형된 정신에 의해 간접적으로 지배된다. 즉 외적 제재가 내적 통제로 대치되는 결과를 초래한다.>(Wilhelm Arnold, Hans Eysenek, Richard Meili, Lexikon der Psychologie, Bd. 3, Freiburg, Basel, Wien, 1972, S. 376.) 달리 표현하면 기업 세계가 개적인 삶 속으로 침입하게 된 것이다.
  「변신」에서 인간이 직업의 부속품으로 전락하는 상황이 그레고르의 부친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즉 그는 한 은행의 말단 수위직을 얻고난 후 가장(家長)으로서의 태도보다는 오히려 수위 직책이 가정에서도 그에게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심지어 부친은 잠을 자면서까지 제복을 벗으려 하지 않으며 상관이 부를 때는 언제나 뛰어나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가족이나 그레고르에 대해서만은 이성을 잃고 지배자가 되려 한다. 이러한 직업 사회화 때문에 그레고르 가족에게 개인적 삶이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생략)


4. 개인과 조직의 대립
(생략) 카프카 문학에서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목표의 제한이냐 아니면 조직으로서의 개혁이냐의 어려운 선택이 제시된다. 그런데 사회의 발전은 오직 조직이나 집단을 이루는 방향으로 이루어져 그 사회에서 개인은 이탈되어 말살되고 있다.
  결국 카프카의 작품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이며, 망각되고 상실된 생의 의미를 새로이 모색하려는 시도로서 허위적인 사회 질서, 법의 질서, 종교 질서에 대한 풍자 이상의 힘을 소유한다. 그러나 새로운 삶의 모색을 시도한 결과 토지 측량사 K 등 주인공들은 좌절만 당할 뿐이다.(김용익, 『프란츠 카프카 연구』, 삼영사, 1984, 88면.)
  이러한 좌절의 체험이 특히 <카프카에스크>란 단어에 잘 암시되어 있다. 카프카에스크는 전율, 불안, 소외, 좌절을 나타내는 표제어이다. 이것은 불투명하고 의미 엇는 운명에 어쩔 수 없이 내맡겨져 있는 상태에 대한 상념이며, 테러, 죄, 절망뿐만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무가치함과 무력함을 느끼게 하는 관료주의 조직 및 익명의 권력 구조에 의한 위협을 상기시킨다. (중략)
  현대의 유행어가 된 <카프카에스크>란 단어가 온갖 악몽.미망(迷妄).유령적인 것, 인간의 사고와 행동과 꿈의 부조리, 그리고 현대의 관료주의 메커니즘, 인간을 노예화하는 제도의 부조리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카프카의 문학의 본질을 가늠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카프카에스크는 물론 우리 인식의 전형으로 카프카 작품에서는 주로 조직에 의한 개체 상실의 상념으로 묘사되고 있다.
  예를 들어 「변신」에서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었을 때 자신이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E 57)는 작품 처음의 문장처럼 젊은 외판원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벌레로 변한 자신을 발견한다 여기서 벌레로의 <변신>은 집단에 제대로 융화되지 못한 사람이 느끼는 소외감을 의미한다. <소외>의 근본적인 의미는 <이질성(異質性)>에 있으며,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억압하고 죄어 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과 다르게 갑충이 된 그레고르는 고립된 상황에 수동적으로 지배를 당하는 처지가 된다.
  그레고르는 여러 차례 가족 공동 사회의 영역에 도달하려고 노력하였으나 결코 <만남>에 도달하지 못하고, 그 자신의 방으로 되돌아갈 것을 강요받으며, 그때마다 상처를 입는다. 따라서 한 개인이 동물로 변신하는 상상을 하거나 그 상상이 현실로 나타나는 상태는 그 차이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자신이 소속되기를 원하는 공동체로부터 소외를 반영하는 것이다. 엠리히는 이러한 그레고르의 실존 상황을 가리쳐 <이 벌레의 가상적 환상적 비실재성은 바로 그레고르의 의식 속에 숨은 자아의 실제가 현실 생활에 침투된 현상으로 써 그가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최고의 실재성>이라고 했는데, 이는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내용과 유사하다.
  카뮈의 시지프는 자신의 불행을 의식으로써 극복해 나간다. 즉 그의 시지프는 불가해한 자신의 비극적인 운명을 분명한 의식으로 항거하며, 그 운명을 대범하게 무시함으로써 극복한다. 카프카도 임의적 행위에 무의미함에도 불구하고 - 지각을 잃은 - 대담한 것을 결단력 있게 지속시킨다.(W. Emrich, Kafka und der literarische Nihilismus, 119, in: Maria L. Caputo-Mayr(Hg.), Franz Kafka, Karmstadt, 1978, S. 115.) 그러나 이렇게 주인공이 강한 의식으로 자신의 상황을 개척할 만큼 그는 고립에 빠져들게 된다. 결국 카프카의 인물들은 현실의 고립에 대해 맹목적인 불안에 사로잡히게 된다.


5. 세계 상실의 비극
1) 가정에서 소외
  삶의 가장 본질적인 단위는 가정이다. 외부에서의 갈등을 풀 수 있는 가장 본질적 장소가 가정인 것이다. 그런데 카프카의 소외는 먼저 가정 생활에서 파생되어 역설적이다. 사회가 가정으로 침투할 때 가정에서도 지속적인 진실한 행복이 있을 수 없다. 사회처럼 가족에서도 금전이 개재되어야 행복이 수반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변신」에서 그레고르가 생계비라는 명목으로 벌어 들인 돈을 탁자 위에 놓을 때마다 고마운 마음으로 가족들은 돈을 받을 수 있었고 그레고르도 이에 대한 기쁨으로 돈을 내놓았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가족들이나 그레고르는 익숙해져 그것을 예사로 생각해 버리고, 그렇다고 서로 각별히 따듯한 마음이 오고 가지도 않는다. 오직 여동생만이 아직도 그레고르와 친밀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결론적으로 가정에서 어느 개체의 실존적 가치란 전체, 다시 말해서 전 가족에 대한 부양 의무를 충실히 지킬 때에만 존재한다.
  따라서 그레고르는 가족의 부양 의무를 충실히 수행했을 때 전 가족의 환심을 샀지만 갑충으로 변신된 뒤에는 이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즉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모해 버린 뒤에는 한 인간으로서의 노동적 가치를 지니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의 부모와 여동생도 이미 그레고르의 실제 가족이 아니다. 결국 그레고르의 존재는 단지 가정을 위한 것이었고, 가족들에게 그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자명종 쪽을 바라보았다. 6시 30분이었다. [......] 다음 기차는 7기에 출발한다.>(E 58 f.)라는 내용이 보여 주듯이 그레고르의 생활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직업 생활로 철저히 짜여 있었다. 그러다가 몽매간에 돌아온 영혼, 즉 본래의 자기 자신이 가족의 생활을 위협하는 갑충이라는 엽기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자 그는 가정에서도 소외된다.
  그레고르를 다시 인간으로 변신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모티프는 아마도 가족의 관심일 것이다. 그러나 가족은 그를 철저히 외면한다. 이러한 사실은 그레고르의 방에서 물건을 치우는 장면에서 단적으로 예시된다.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가 방을 이리저리 기어다니는 것을 발견한 여동생은 어머니를 동원해 그레고르의 방에서 물건을 치우려고 한다. 물론 외견상으로는 그레고르가 자유로이 방을 기어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라고 주장하지만, 그레고르를 기억나게 하는 옷장과 책상을 치우는 것을 그의 과거의 주체성, 즉 가족의 일원으로서 아들과 오빠로서의 주체성을 부인하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오직 어머니만이 그레고르의 방에서 그를 연상시키는 옷장을 치우려는 딸에게 가구를 치워버린다는 것이 <그레고르의 회복에 대한 모든 희망>(E 84)을 포기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방을 예전 그대로 놓아 두자고 제안한다. 그래야만 그레고르가 다시 가족의 일원인 인간으로 돌아왔을 때 갑충으로서의 과거를 쉽게 망각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어머니가 그레고르의 회복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음이 드러나지만, 그것은 어떤 실천적 행동도 수반하지 않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희망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가정에 얽매이다가 벌레로 변해 버린 그레고르의 고뇌는 자기 신앙에 일어난 육체적인 변화보다도 먼저 생계 부양자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하게 된, 이른바 한 가정에 예속된 윤리적인 실존자로서의 죄의식이다. 그에게 주어진 이러한 죄의식은 무엇보다 자기 한 사람을 오인해서 지금까지 환희와 행복에 차 있던 가정의 평화를 깨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온다. 이렇게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감이 몸에 밴 그레고르는 빨리 갑충의 벌레에서 벗어나 출근해야겠다는 생각에 다급하지만, 가족은 오히려 그가 변신한 상황에 차츰 적응하며 자구책을 마련해 간다. 그러므로 더 이상 돈을 벌어 오지 못하는 <벌레>가 된 그가 생활에 불편까지 주게 되자 가족들은 그를 죽이려 든다. 결국 그레고르는 부친이 던진 사과가 등에 박히는 중상을 입고 사랑하는 동생이 밖에서 잠가 버린 방 안에서 죽는다.
  가족은 거대한 곤충으로 변한 그레고르를 방에 가두고, 그의 외양을 견디지 못하고 악의를 두려워한 결과 그의 죽음에 기쁨의 기색까지 나타낸다. 말라 비틀어진 갑충의 시체를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처럼 빗자루로 쓸어버리고 부친은 비정하게도 비애가 아니라 해방과 구제의 안도감이 곁들인 십자(十字)를 그은 다음 가족들과 더불어 이른 봄날의 햇빛을 받으면서 교외로 소풍을 가며 그동안 몰라보게 성숙한 딸의 새로운 삶에 희망을 건다.
  여기서부터 무수한 해석의 가능성이 열린다. 사회학적 관점에선 시민 가족 이데올로기가 허상이라는 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 소설이 밝혀 주는 무서운 진실은 가장 아름답고 애정어린 인간 관계가 미망(迷妄)에 근거한 것이라는 통찰이다>(W. Emrich, Franz Kafka, Frankfurt/M., 1957, S. 122.)는 엠리히의 말처럼 그레고르의 변신 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보여 준 가족들의 태도는 현대의 가족 사회에 진정한 애정이 없음을 보여 주고 있다.  개인은 결국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아서 산업 사회에서 극한의 소외 상황에 놓인다. 기계의 한 부품처럼 되어 버린 개인이 벌레같이 느껴지는 감정을 「변신」은 아예 한 마리의 벌레로 변해버린 인간이 결국 비참하게 죽는 모습으로 덤덤하게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변신」에서 독자는 작품의 전개를 따라가는 동안 주인공 그레고르가 한 마리의 갑충이 될 수밖에 없는 참담한 상황을 스스로 읽어 내게 된다.
  이렇게 그레고르의 가족이 그를 버리는 내용에서 변신이 되면 주체성이 상실되어 같은 가족이나 종족도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는 오랜 병을 앓다가 죽은 아들의 유골을 화장하고 온 직후에 맛있는 음식을 찾고 내일 걱정하는 오늘날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 따라서 그레고르의 죽음은 고통스런 슬픔이 아니라 오히려 무거운 짐으로부터 가족을 해방시킨 것이다.
 

제6장 카프카 문학의 신화적 분석
3. 작품의 신화적 분석
3) 동물의 인간으로 변신
  「변신」에서 그레고르처럼 인간이 동물로 변신하는 것을 <격하 변신>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동물로의 변신은 가치 하락이나 치욕스런 비인간성으로 생각되어 발전사(發展史)에서 비인간적으로 좋게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개념에서 동물은 예속되는 존재로 여겨져, 인간의 동물로의 변신은 엄청난 불명예로 생각되는 것이다. 민담의 기념비적인 상징성을 저술한 바이트와 프란츠는 동물로의 변신을 <동물 단계로의 역행>이라고 부르거나 <인간이 더욱더 무의식으로 되돌아감, 즉 인간 개성으의 필요한 무의식>으로 해석했다.(Max Lüthi, So leben sie noch heute, Betrachtungen sum Bolksmärchen, 2. Aufl, Gttingen, 1976, S. 51.)
  (중략) 동물로의 변신이 가치 하락으로 여겨지므로, 여기에서 구원의 염원인 인간으로의 변신이 요구된다. 카프카 작품에서 동물로 치환(置換)된 주인공들은 고전적인 우화나 낭만주의 동화의 그것들과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낸다. 이들 우화나 동화에서 동물 주인공은 일종의 인간으로 이해되며 위기가 극복되면 다시 인간으로 바뀐다. 여기에서 동물들은 위험한 일에 직면한 어린 아이들을 도와 구원한다. 이것은 그림 동화에서 동물들이 젊은 왕자들 혹은 바보들이 위험한 시험과 모험을 극복하도록 도와주거나, 그들을 위해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 주는 것과 동일하다. 이렇게 우화나 동화에서 동물로 변신된 주인공이 위기 등이 극복되면 다시 인간으로 되는 만면, 카프카의 변신된 동물은 사물로서의 기능을 지니고 있어 그 이상 인간 회복이 불가능하다. 일종의 <인간은 사물이 된다>는 명제의 출발로 격하 변신이 되는 것이다.
  카프카의 작품에서 동물로 변신된 주인공이 다시 인간으로 변신 되는 내용은 희망으로만 전개될 뿐이다. 예를 들어 「변신」에서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가 방을 이리저리 기어다니는 것을 발견한 여동생은 어머니를 동원해 그레고르의 방에서 물건을 치우려고 한다. 물론 외견상으로는 그레고르가 자유로이 방을 기어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라고 주장하지만, 그레고르를 기억나게 하는 옷장과 책상을 치우는 것은 그의 과거의 주체성, 즉 가족의 일원으로서 아들과 오빠로서의 주체성을 부인하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레고르의 방에서 그를 연상시키는 옷장을 치우려는 딸에게 가구를 치워 버린다는 것이 <그레고르의 (인간으로의) 회복에 대한 모든 희망>(E 84)을 포기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방을 예전 그대로 놓아 두자고 제안한다. 그래야만 그레고르가 다시 가족의 일원인 인간으로 돌아왔을 때 갑충으로서의 과거를 쉽게 망각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이렇게 어머니는 그레고르의 인간으로 변신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단지 희망일 뿐이지 카프카 작품에서 실제로 인간에서 동물로 된 존재가 다시 인간으로의 변신되는 일은 없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윤리적 존재>다. 중요한 것은 <동물처럼 번식하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영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존재하느냐>이다. 살아 있는 한 인간은 누구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지나칠 수 없다. 따라서 가치 하락적 동물은 인간으로 변신은 격상 변신이라고 불린다.
(생략)


4) 창조적 해방
  카프카 작품에서 인간이 동물로 되거나 동물이 인간이 되는 신화적 기능은 미학적 유희의 가능성으로 현실에 대한 압력으로 전개된다고 볼 수 있다. 카프카가 볼 때 세상에는 미학적 요소가 끊임없이 작용한다. 그러나 의미 부여로 생긴 미학적 거리감이나 인간이 동물 되기나 동물의 인간 뒤기는 신화적 변신이 <현실적 부담을 경감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쿼드는 공포의 이야기에서 그 공포를 피하는 시도를 한다.(Vgl. Odo Marquard, in: Manfred Fuhrmann(Hg.), Lob des Polytheismus, Über Monomythie und Polymythie, S. 107 f. in: Ders., Abschied vom Prinzipiellen, Stuttgart, 1984, S. 528 (Kap. Erste Diskussion: Mythos und Dogma)) 이러한 신화이론은 몇몇 문제성을 제외하고, 특히 마쿼드가 현실의 압박을 덜어 주는 신화의 기능을 그의 정치적 자유주의의 합리화 전략을 사용한 예(Odo Marquard, a.a.O., S. 91~116.) 외에 카프카에서는 현실의 압박을 덜어 주는 기능이 있다. (중략) 따라서 신화적 기능이라 할 수 있는 카프카의 변신도 한편으로는 현실적 압박을 경감하는 신화적 기능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동물이나 인간의 변신은 또 다른 형태의 삶으로 구제를 의미한다. 이러한 변신은 하나의 고정된 의미로 현실의 압박을 경감시켜주어 현실에 대한 미학적 의미를 지닌다. 신화옹호론자에게 신화는 사고와 표현 형식으로 삶과 행동의 형태라고 케레니는 주장한다. 그에 주장에 의하면 사고와 삶 사이에는 어떤 틈이 있을 수 없다. (Karl Kerényi, Was ist Mythologie? S. 219, in: Ders.(Hg.), Die Eröffnung des Zugangs zum Mythos, ein Lesebuch, Darmstadt, 1982, 212~233.)
  이러한 동기에서 「변신」에서 그레고르의 동물로의 변신은 해방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변신」에서 그레고르의 신화적 변신은 일종의 구원적 모티프를 강하게 암시한다. 어느 날 아침 동물로의 깨어남은 의식의 깨어남, 즉 자기 인식의 행위이다. 모름지기 물질적인 가족 구조가 지니고 있는 힘, 모든 부조리한 인간의 모순된 힘으로부터 재창조되는 것이다.
  출근하기 싫고 그대로 빈둥거리고 싶은 유혹적 소망은 갑충 변신으로 표출되어 실제로 출근을 하지 않게 된다. 직업으로부터 일탈하여 자유로운 자아를 찾고 싶은 소망이 역설적으로 흉물스런 갑충의 변신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따라서 「변신」에서 그레고르의 갑충으로 변신은 <이른바 인간 세계의 절대적 파기>를 뜻한다. 외판사원 직업에 나름대로 충실몰 그레고르의 벌레로의 변신은 자본주의적 직업 세계에서 타자에 의해 만들어진 정체성에서 해방을 의미한다. 한 집안의 경제적 지주인 선량한 그레고르의 머리에 어느 날 문득 책임을 저버리고 싶다는 저주스런 생각이 번득이고 바로 이때 갑충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엠리히는 카프카의 이렇게 변신된 동물을 인간의 <해방적 자아>(W. Emrich, Franz Kafka, Frankfurt/M., 1960, S. 115.)라고 언급한다. 조켈은 <자아의 분열>이 변신의 형태로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변신은 결과적으로 가정에 대한 책임과 일과 의무로부터 도피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Walter H. Sokel, Franz Kafka, Tragik und Ironie, Frankfurt/M., 1976, S. 82.)
  이렇게 그레고르는 변신을 통해 가정의 경제적인 억압으로부터 도피하여 그의 변신은 일종의 <자신의 재창조>(R. Lachmann, Erzählte Phantastik, Frankfurt/M., 2002, S. 370.)로도 볼 수 있다. 재창조란 그대로 자신으로 머무는 지속 반복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여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중략)
  그대로 머묾과 반복은 폐쇄적이며 제한되고 갇혀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재창조로 카프카는 이를 변신으로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그레고르처럼 갑충으로 변신하여 파멸이 구원이라는 <역설적 관계>가 성립된다. 죄를 의식하는 자가 가장 구제에 가깝고, 반대로 죄를 의식하지 못하는 자는 언제까지나 현세의 권력에 예속해 있는 것이다. (W. Emrich, Franz Kafka, Frnkfurt/M., 1960, S. 122 f.)
  여기에서 카프카 특유의 역설적 사상을 느낄 수 있다. 즉 신이 창조한 세계에 악이 없었다면 자유가 설 여지가 없는, 선택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세계가 되어 버렷을 것이다. 상응하는 악덕이 없다면 미덕을 인식할 수 없으며, 빗나가도록 유혹받지 않는다면 미덕을 수행할 수도 없을 것이다. 신은 선과 악을 구분하고 둘 간에 거리를 두어 우리가 악의 본질과 대비해 보도록 함으로써 선의 본질을 파악케 하였다. 악의 배제는 선을 없애는 것이다. 종교 개혁가 루터는 개혁가답게 <용감하게 죄를 지어라, 그리고 투철하게 회개하라!>고 가르쳤다. 죄를 지을 수 있는 자만이 회개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아닌 게 아니라 성 바오로는 그렇게 혹독하게 기독교인을 학대한 경험이 있었기에 그토록 투철한 신앙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이러한 역설적 관계가 카프카 문학의 본질이다. 카프카에게 있어서 <사유 과은 어떤 때는 직접적으로 부정에 의해 제거되고, 어떤 때는 그 궤도의 반대 방햐으로 전향을 통해 밀려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놀랄 정도로 전도된 근본 상황에 속한다.>(Gerhart Neumann, Umkehrung und Ablenkung: Franz Kafka, Gleitendes Paradox, in : Richard Brinkmann und Hugo Kuhn(Hg.), Deutsche Bierteljagrsschrift für Literaturwissenschaft und Geistesgeschichte, 42. Jahrgang, Stuttgart, 1968, S. 704.) 이러한 역설적 상황은 <신화의 재난에 무엇으로 대비할 수 있을까? 찾는 사람은 발견하지 못한다. 찾지 않는 사람이 발견하는 법이다>(F. Kafka, Hochzeitsvorbereitungen auf dem Lande. hg. v. Max Brod, Frankfurt/M., 1986.)라는 카프카의 잠언에 신화의 내용으로 잘 나타나 있다.
(생략)


5) 변신에서 인간적 주체성
  민간 동화에서는 어린이들 혹은 연인들이 동물 혹은 사물로 변신을 통해 마녀나 악한 마술사의 추적을 피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들 주인공들은 격하 변신을 의미하지 않으며 <인간은 동물이다>라는 명제에서 크게 벗어나지도 않는다. 이들에게 가끔 적용되는 <비인간적>이라는 말도 인간의 마음에 도사린 칸트적 야수성(野獸性)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에게서 소외나 이화감(異化感)을 느끼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카프카의 작품에서도 변신된 동물에서 격하 변신을 느끼지 못하며 <동물도 인간이다>라는 명제를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변신」에서 인간인가 하면 인간 아닌 벌레요, 벌레인가 하면 벌레 아닌 인간인 그레고르의 존재는 매우 역설적이다. 변신은 그레고르의 외면에 전체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외면은 그를 동물의 자태로 바꿔 놓았으나 그의 내면에는 그 같은 변화가 없다. 그의 내면은 인간의 의식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의식은 변신 이전의 그와 변신 이후의 그가 동일인임을 알게 한다. 변신한 그레고르는 변신 이전에 겪었던 일들을 회상하고, 또 그것에 기초하여 현재와 미래의 일들을 생각한다. 변신한 자신을 현실적 상황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그레고르는 육체적으로 동물적 존재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인간저인 식사나 쾌락을 거부한다. 반면 정신척인 추구는 여전히 인간적으로 음악에 대한 동경이나 인간의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이렇게 그레고르가 겉은 동물이고 속은 인간이라는 이중성의 존재인 데서 가족들의 인식도 서로 다르게 발생한다. 그레고르는 너무나 징그럽고 <끔찍한 자태>(E 99)로 변했다. 가족들은 그런 벌레의 자태와 동작을 접할 때, 또 그런 것을 의식할 때 자신들을 그레고르와 동일시 않는다. 따라서 가족들은 그런 벌레의 존재로서의 그레고르와 일치감을 갖지 않고 거리를 갖게 된다. 반면에 가족들은 내면적인 인간적 존재로서는 그레고르와 일치감을 갖고, 그의 입장에 서게 된다. 가족들이 그레고르에 대해서 이렇게 이중적인 입장을 갖게 된 결과, 한편으로는 그레고르에게 공감과 동정을 갖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시각을 벗어나 제3자의 안목에서 그의 이야기를 관찰하고 그 전체의 의미 관계를 파악하게 된다.
  「변신」의 끝 부분에서 여동생 그레테는 그레고르와 동인성(同人性)을 부정한다. 그레고르의 취업이 그의 가족 전체의 생계를 감당한다는 생각에서 그레고르의 인간성이 연상되다가, 약 한 달 동안 직장 활동을 하지 못하는 오빠 치다꺼리에 짜증이 날 대로 난 그레고르의 여동생은 갑충 오빠의 사람 취급을 거절하기 시작하는 태도를 보이며 <저것이 그레고르 오빠란 생각을 버리면 돼요. 저 갑충이 그렇게 오랫동안 오빠인 줄로 믿었던 것이 불행의 씨였어요. 어떻게 저것을 그레고르 오빠라고 믿을 수 있단 말이에요. 만일 저것이 그레고르 오빠라면, 사람들이 이런 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벌써 알아차렸을 게 아니에요>(E 101)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오직 그녀의 이기주의적인 심사(心思)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녀도 처음에 딴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갑충 그레고르가 오빠임을 의심치 않았고, 그녀가 태도를 바꾸게 된 마지막에도 갑충 그레고르 오빠의 형태나 태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신한 그레고르는 여전히 인간 의식과 양심을 갖고 직장과 가족의 생계를 염려한다. 그 기괴한 갑충의 생활은 가족들의 일상적 평범성과 병존하여 양자간의 단절에서 불가사의한 교섭으로 묘사되고 있다. 즉 갑충으로 변해서 방안을 기어다니지만 그레고르는 역시 전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인간 그레고르로 자아가 분해되거나 파괴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그가 존재하고 있는 곳인 <방>의 낱말이 당연히 인간의 사용 공간을 의미함에도 새삼스럽게 <인간의 방>으로 강조된다. 작품의 시작에서 이미 벌레의 몸이 되었지만 그레고르는 죽을 때까지 이 인간의 방에서 지내게 되어 그에 대한 인간의 주체성의 본질에 대한 의심이 없다. 그것은 그레고르의 주체성은 외면적 육체적 형태에 있기 않고 그레고르의 자아라고 불리는 정신력에 있다는 믿음이다.
  따라서 갑충이 되었지만 그레고르는 여느 인간 못지않게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예민하게 느낀다. 그 자신이 벌레로 변한 것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여타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 의해서 확인받은 이후 그의 가족들 간의 대화를 통해서 변신 이전에 전혀 알지 못했던 가정 경제 상황은 물론 가족들의 일 거수 일 투족을 모두 알게된다. 즉 벌레로 변한 그의 육신과는 대조적으로 정신 세계, 의식 세계는 완전히 인간인 것이다. 그러기에 변신이 됐으면서도 그레고르의 죄의식, 즉 의무감에서 오는 죄책감은 지워지지 못한다.
  따라서 그레고르는 폐쇄된 자기 방에서 벌레가 됐지만 부모와 여동생의 모습을 연연히 그리워하는 인간적인 면을 여전히 지녀, 다시 전과 조금도 다름없는 다정스런 가족의 일원이기를 갈구하면서 온갖 수단을 강구한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자기가 부모나 여동생에게 이런 훌륭한 집에서 살림을 마련해 줄 수 있었다는 것을 자랑으러 생각하지만, 이제 그 모든 평화와 행복과 만족이 공포감으로 끝을 맺어야 한단느 생각에 몸서리친다. 벌레로 변신한 자기 처지로 인해서 점점 가세가 기울어지게 되고, 이미 5년 전에 사업에서 실패하여 은퇴한 부친이 다시 어느 은행 수위복을 입어야 하는 궁지도 염려한다. 또 더 이상 바이올린 교습을 받을 수 없게된 여동생을 위해서 그레고르는 서글픈 비애감을 되씹는다. 육체적으로는 벌레지만 정신적으로는 인간의 본질로 남아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레고르는 <어서 일어나야지>(E 58), <어서 기차를 타야 할 텐데>(E 58) 그리고 <전처럼 부모님에게 돈을 가져다 드리고 집안의 평화를 깨뜨리지 말아야 할 텐데>(E 58)라는 논리적인 죄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이렇게 변신되었으면서도 그레고르의 내심에서 부모와 여동생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자기의 가정을 구하기 위해서 <상반신을 침대 밖으로 끌어 내려고 시도>(E 61)도 해보고 <조심해서 머리를 침대가로 돌려>(E 61) 보다가 여의치 않자 <몸 전체의 균형을 잡고 몸부림을 치면서>(E 61) 방 안에서 <큰소리가 나면 온 집안을 놀라게 하진 않더라도 집안 사람들이 걱정할 것이라고 생각>(E 62)하여 아무도 문조차 열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전력을 다해 침대에서 뛰어내린다.>(E 63) 이렇게 간신히 뛰어내리는 순간에도 그레고르는 회사와 가족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가족에 대한 인간애가 예술적으로도 영감을 받는다.
  그레고르는 벌레로 변한 후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음식이 없어 내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단식 예술가』의 단식 광대가 경이적인 단식을 하면서 <저는 입에 맞는 맛있는 음식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것을 찾아냈다면, 저는 결코 세인의 이목을 끌지 못했을 테고, 당신이나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배가 부르게 먹었을 것입니다>(E 199 f.)라는 말과 같다. 그러다가 그레고르는 벌레가 된 이후에 자신에게 알맞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음식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는데 그것은 육신의 생명 연장을 위한 음식이 아니고 그의 정신이 강렬히 갈망했던 정신적 양식인 예수르 즉 여동생 그레테의 바이올린 연주라는 음아기었다. 즉 그레고르는 하숙생들의 요청에 의하여 우연히 듣게 된 여동생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그것이야말로 자기가 찾던 음식이라고 여긴다. 결국 갈망했던 음식을 마침내 찾은 것으로 여긴 여동생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겠다는 열정에 사로잡혀 자신의 흉측한 모습을 잠깐 잊고 방에서 기어나와 인간 세계에 들어가는 것에서 분해되거나 파괴될 수 없는 인간적 본질을 볼 수 있다.
-  음악에 감동되는데도 짐승이란 말인가? 자기도 몰랐던 양식으로의 길이 열리는가 싶었다. 그는 여동생이 있는 데까지 나가려고 결심했다. 그녀의 스커트를 잡아당겨 바이올린을 가지고 자기 방으로 가자고 의사 표시를 하기로 결심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연주에 보담할 자는 자기 말고 이곳에서는 업기 때문이다. 적어도 생존하고 있는 동안 그녀를 방 밖에 내보내지 않으리라. 흉측한 이 모습도 도움이 되겠지. 문 옆에 있다가 침입자에게 덤벼들리라.(E 98 f.)-
  여기에서 동물 변신의 긍정적 의미가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동물로 변하는 것이 부정적으로 여겨져 <격하 변신>이라 불리는 것과 반대로 여기서는 인간이 동물로 변신하는 것이 긍정적 의미를 가져 <격상 변신>으로 되는 것이다. 문제가되는 것은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양식>이다. 동물인 그레고르는 동시에 동물 이상으로 동물 속에 인간적 주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변신은 동물 안에 있는 인간적 존재에 대한 동경을 일깨우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음악은 카프카에게 사실 인간을 모든 지상의 한계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가능성이다.
  물론 카프카 문학 고유의 애매성 때문인지 그레고르에 미친 음악의 영향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도 있다. 폴리처는 그레고르가 갈망하던 미지의 양식이 음악과 동일한지 그리고 음악 속에서 구원을 발견했는지에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작품에서 우리는 음악 그 자체가 그레고르가 갈망하던 천상의 양식이 아니라 단지 그 양식에 이르는 길에 지나지 않음도 알 수 있다. 여동생이 연주하고 있는 동안 그레고르는 가족과의 화해, 특히 여동생과의 화해를 꿈꾼다. 그러나 갑충을 본 하숙생의 공포에 찬 비명 때문에 그레고르는 이 꿈에서 깨어나고 바이올린 소리는 갑자기 중단된다. 이를 두고볼 때 여기서 음악이라는 수단 때문에 일순간 소음으로 가득찬 세계가 정지되고 보다 나은 세계로의 돌파가 가능한 것으로 보였을 따름이라는 이론도 있다. (Heinz Politzer, Franz Kafka, Der Künstler, Frankfurt/M., 1978, 128 f.)
  그러나 이러한 일부 이론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내용을 종합해 볼 때 결국 그레고르는 여동생 그레테가 연주하는 음악을 통해서 인간으로 동물적 속박 상태를 초월했다고 볼 수 있다.

(생략)
Posted by Hyos :

★참고문헌★
빌헬름 엠리히, 『카프카를 읽다1』, 유도
-p.176-195

해방하는 자아로서의 동물
단편 「변신」의 갑충
(생략)
  잠자의 운명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그의 변신이 아니라, 이 변신에 접한 모든 인간이 품는 착각이다. 잠자는 변신을 승인하려고 하지 않는다: "곧 옷을 입고 견본을 꾸려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부모와 누이동생은 변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아는 업무 세계에서 뿐 아니라, 가족세계에서도 절대적으로 낯선 것, 중요하지 않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녀들은 처음에는 감동적인 방법으로 그의 상황을 개선하고, 해충의 모습을 참아내고, 그를 돌보며, 지키고, 그를 안락하게 해주고, 그녀들이 그의 인간적인 것과 그가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보존하고 다시 불러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 작품의 무서운 진실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애정이 넘치는 인간관계조차 착가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통찰이다. 그 자신과 다른 사람의 본래 모습이 무엇인지 누구도 모르고, 예감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부모는 그레고르의 갈등, 그가 부모를 위해 치렀던 희생을 전혀 예감하지 못했다. 부모는 모든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여러 해가 지나가는 동안 그들은 그레고르가 그 회사에서 평생토록 신분이 보장돼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부모는 변신의 형태로 이 내적인 질병이 폭발하기 오래전에 그레고르의 내부에서 무엇인가가 모반을 일으켰고,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음을 예감하지 못했다. 그들은 인간의 본질적인 것이 단순한 부양으로 말미암아 은폐되고, 왜곡되고, 파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 왜곡이 뚜렷한 특징을 띠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어찌할바를 모르고 자기 아들을 이물(異物)로 느낀다.
  반대로 그레고르 역시 자신과 가족과의 관계를 오해했다. "'식구들이 무척 조용한 생활을 하고 있구나'하고 그레고르는 혼잣말을 했다. 그의 어둠 속을 응시하며, 부모와 누이동생을 이런 좋은 집에서 이렇게 생활해 나가도록 뒷받침해 왔다는 사실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런데 혹시 이 편안과 윤택한 생활과 만족스러움이 끔찍스럽게 끝장나면 어떡하지?'" 그는 자신을 희생하고 회사에 몸을 팔면서 가족에게 아름답고, 만족스럽고, 안정된 생활을 마련해 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상호관계는 은밀한 계산과 타협에 기초하고 있다. 아무도 이 계산과 타협의 영향력을 예감하지 못한다. 질서의 가상, 만족스러운 세계의 가상이 완성된다. 그러나 그레고르의 불안한 꿈속에서 이 가상은 찢기고 찢긴 틈에서 흉측한 해충의 형태로 진실이 나타난다. 그레고르는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자신을 왜곡시켰다. 이제 희생당한 동물은 무자비할 정도로 왜곡된다.
  기만은 계속된다. 사실 부모는 그의 희생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레고르가 알고 있던 것 보다 더 많은 돈을 갖고 있었다. 사실 그는 일을 할 수 있었고, 겉으로 보이듯이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다. 그레고르 역시 속았다. 그의 희생은 무의미했다. 가족의 모든 행복과 모든 만족은 착각과 은밀한 타산에 기초하고 있었다. 업무세계가 실제로 사적인 생활 속으로 침입했다. 모든 것은 소유에 기초하고 있지, 존재에 기초하고 있지 않았다.(「죄, 고통, 희망 그리고 진실의 길에 대한 성찰」35번을 참고하시오) 가족의 목가적 생활 전체가 허위였다. 어느 곳에도 진실은 없었다. 그레고르가 가족에게 돈을 더 많이 벌어다 주면 줄수록, 가족관계는 그만큼 더 냉담해진다: "식구들이나 그레고르나 그것에 습관이 되고 만 것이었다. 식구들은 고맙게 돈을 받고 그는 기꺼이 돈을 대주었지만, 거기에 특별한 온정 같은 것은 두 번 다시 없었다." 이제 비로소 그레고르의 왜곡으로 말미암아 희생당한 동물이 눈에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동물은 쫓기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괴물은 사라져야만 한다. "옆방의 물건은 치워져야만 한다." 왜냐하면 허위에 의해서만 이 세계는 존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레고르 자신이 이것을 요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식구들에 대해서 그는 감동과 사랑으로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자기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에 대한 그의 생각은 아마도 누이동생의 생각보다 더 확고한 것 같았다." 그레고르가 뒈졌을 때, 이 목가적인 허위는 한층 고양된 형태로 방해를 받지 않고 계속 전진한다. 세 명의 하숙생이 눈짓을 한다. 결혼 적령기의 딸은 젊은 육체를 쭉 편다. 공포의 종말이 오직 그레고르만 덮친다. 바로 그가 가족만 생각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동물로의 변신은 긍정적인 의미도 갖고 있다. 갑충인 그레고르가 누이동생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었을 때 결정적인 문장이 나타난다: "음악에 이렇게 감동을 하는데도 내가 동물이란 말인가? 마치 그리워하던, 미지의 양식에 이르는 길이 그에게 나타난 것만 같았다." 여기에서 비로소 이 동물변신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문제가 되는 것은 지상에서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양식'이다. 동물인 그는 동시에 동물 이상이다. 그의 소외는 그안에 있는 이 양식에 대한 동경을 일깨우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음악은 카프카에게 사실 언제나 인간을 모든 지상의 한계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가능성이다. 「어느 개의 연구」에서 여전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음악과 영양학을 결합하고, 음악의 도움을 받아 땅에서 생산되지 않는 양식을 위에서 아래로 유인하고, '영양분을 불러내리는 노래에관한 학설'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학설은 "자유를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높이 평가하는 궁극적인 학문"에 도달한다. 그레고르의 갑충변신의 최종 의도는 자유를 향한 탈출이고, 인간의 미지의 양식을 향한 동경이다.
  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변신의 동물 혹은 괴물은 오히려 결코 표현할 수 없고, 결코 볼 수 없는 하나의 영역을 표시한다. 왜냐하면 관계된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실제로 그 동물을 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극히 사실적으로 묘사됐음에도 불구하고 이 동물을 이해하고, 관찰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실타래인 오드라덱 등과 같은 카프카 문학의 사물들과 꼭 마찬가지로 동물은 인간의 모든 경험적인 이해능력을 뛰어넘는다. 갑충 잠자를 실재하는 갑충으로 해석하는 것은 어리석다. 카프카 자신이 이점을 명확하게 말한적이 있다. 쿠르트 볼프 출판사가 오토마르 슈타르케더러 「변신」에 들어갈 삽화를 그리게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을 때, 1915년 10월 25일에 카프카는 출판인에게 편지를 쓴다: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그(슈타르케)가 어쩌면 곤충을 그려보고 싶어할 거라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제가 그의 힘을 제한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제가 당연히 제 작품에 대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힘을 요청하려는 것입니다. 곤충 그 가체를 그려넣어서는 안 됩니다. 어렴풋하게 곤충을 암시하는 것조차 결코 안 됩니다."
  그레고르의 물화된 꿈은 동시에 꿈 이상의 것이다. 왜냐하면 꿈의 형상들 역시 어쩌면 모사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이야기는 하지만 아무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밀이다. 그런데 비유 속에서 그러한 비밀이 폭로된다. "너희들 자신이 비유가 되면"(「비유에 대하여」) 진실은 드러난다. 잠자의 변신은 자아의 비유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비유에서 비로소 자아는 현실적이 되고, 인간 세계의 허위를 파괴한다.
  그렇다면 갑충 잠자는 무엇인가? 그것은 명백하게 모든 사람이, 잠자 조차 참을 수 없는 것, 낯선 것, 무서운 것으로 느끼는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그도 자신을 이 갑충과 동일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그가 갑충이 되고, 갑충의 생활방식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지만, 처음에는 그는 종래의 생활의 사고, 표상과 감정에 사로잡혀서 더 이상 자기의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지 못하는 것을 고통스럽게 생각한다. 갑충이라는 실존은 그를 익숙한 모든 것에서 쫓아내고, 그를 모든 사람들에게 낯설고 무섭게 만든다. 그러나 옛날에 숨겨진 실제의 금전관계가 이제 밝혀졌다고 해서 주변세계에 대한 그의 애착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그는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갑충의 실존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폭력 때문에 그 소망은 방해를 받는다. 그 때문에 잠자를 아주 좋아하고 돌보아온 누이동생이 결국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없어져야 해요. 아버지  그리고 오직 그와 같은 것으로서만 갑충은 진실을 포함하고 있다. 왜냐하면 "진실의 바탕에서 비롯한 것은 다시금 설명하기 어려운 것으로 끝나야만"(「프로메테우스」)하기 때문이다. 진실과 자아는 동일하다. 자아는 정말 설명하기 어렵다. 자아는 우리의 자아에 대한 모든 표상을 뛰어넘는다. 갑충은 우리의 의식적, 무의식적 표상의 피안을 구현한다. 다름 아닌 인간 그 자체임에도 불구하고, 동물은 이른바 인간세계의 절대적 파기를 의미한다. 잠자의 삶의 세계와 잠자의 갑충형상과의 분열은 표상과 존재와의 분열이다. 카프카의 경우 표상의 피안이 인간 자신에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 외부에 피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피안의 형상, 이 피안의 비유는 필연적으로 현세의 형상이다. 동시에 이것은 비현세의 형상이며, 묘사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역설적인 사정은 카프카가 그런 피안을 사물들 혹은 동물들의 형상으로 묘사한 이유이다. 사물들과 동물들은 혼란에 빠트리면서, 놀라게 하면서, 모든 장애를 제거하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일상세계 안으로 침입한다. 라반의 갑충에서 잠자의 해충으로의 왜곡은 단지 시각의 역전에 불과하다.
  라반은 움직이지 않고 휴식하고 있는 자아와 진실의 바탕에서 세계를 보았다. 그에게 세계는 왜곡되고, 참을 수 없고, 혐오스러운 것의 모습으로 나타나야만 했다.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그에게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반면 잠자는 세계 안에 머무르려고 한다. 그 때문에 휴식하는 자아는 그를 익숙한 생활권에서 끌어내는 끔찍한 괴물로 그와 그의 주변세계에게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 이 두 입장은 보호받아야만 한다. 이 두 입장이 합쳐져서 비로소 인간의 삶이 구성된다. 카프카는 두 입장을 비판하기도 하고 긍정하기도 한다. 단지 라반의 은둔의 생활방식 아니면 잠자의 가족과 직업에 대한 근심의 견지에서 카프카를 해석하려는 것은 잘못이다. 라반과 잠자, 이 둘의 이름이 카프카 자신의 이름에 대한 별명이듯(「카프카와의 대화」, 『일기』), 이 두 가지가 카프카 안에서 교차하고 있다. 이 두 갑충환상을 해석함으로써 비로소 완전한 의미가 밝혀진다., 그 방법밖에 없어요. 저것이 그레고르 오빠라는 생각은 집어치우세요."
  그러나 이미 그의 음악과 미지의 양식에 대한 동경이 보여주듯이, 결국 그레고르는 포로상태에서 풀려나 경험세계로 들어간다. 그의 죽음은 무의미한 멸망일 뿐 아니라, 해방하는 인식이다. 그레고르는 자신의 죽음을 긍정한다. 그는 자신과 세계와 화해하고 죽는다: "식구들에 대해서 그는 감동과 사랑으로돌이켜 생각해 보았다. 자기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에 대한 그의 생각은 아마도 누이동생의 생각보다 더 확고한 것 같았다. 교회의 탑시계가 세시를 칠 때까지 그는 이렇게 공허하고 평화로운 명상에 잠겨있었다. 그는 창 밖에서 세상이 환해지기 시작하는 것도 느꼈다."
  물론 작품 어디에서도 이 인식의 내용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다. 또한 여기에서 어떤 이미지의 양식이 문제되고 있는지, 그 것이 정신적인 의미의 양식인지, 종교적 의미의 양식인지, 심적인 의미의 양식인지, 아니면 단순히 물리적 의미의 양식인지 작품 어디에도 암시되어 있지 않다. (중략)
  이 자아는 예컨대 직업과의 갈등 속에서 노동세계와 가족세계에 맞서 이제 말하자면 지금까지 억눌려왔던 잠자의 본래의 자아를 대표하는 일련의 내적인 감정과 이상과 목표가 활동한다는 의미에서 영혼으로, 여전히 감정과 소망과 희망의 꿈과 노력 등의 영역에서 해명할 수 있는 특정한 정신 상태로 심리학적으로 이해될 수 없다. 이와 같은 해석은 논외이다. 또 이런 내면세계가 하필이면 어떻게 구역질나는 해충의 형상을 지닐 수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다. 잠자의 자아가 억눌리거나 굴복당하고 그 때문에 부정적인 특징을 띠어야만 하기 때문에 라반-환상과는 달리 자아의 왜곡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견해를 전개했지만, 이 경우에도 심리학적 해석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만약 심리학적 해석이 가능하다면, 이 억눌린 자아와 잠자와의 내적 대결이 벌어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 자아는 그것이 긍정적인 의미든 부정적인 의미이든 상관없이 그에게 호소하는, 태도결정을 강요하는, 그를 내적으로 변신시키는 내용을 전개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심적인 변화와 변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가 없다. 변신은 심적인 변신, 정신적인 변신, 성격적인 변신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이것이 이 작품이 지닌 전대미문의 것, 불가해한 것이다. 이것이 이 작품을 종래의 심리문학과 구별한다.
  따라서 갑충-동물이 인간에 내재한 꿈처럼 무의식적인 본능영역, 동물적이며 인간이전의 본능영역을 대표한다는 주장 역시 결정적 제한이 필요했다. 이 동물이 말하자면 꿈의 소산인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침대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변신은 이미 눈을 뜨기 전, 잠을 자고 꿈을 꾸는 상태에서 일어났다. 꿈 즉 낮의 인식으로부터의 해방이 변신의 전제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 것도 꿈의 세계에서 변신된 것의 세계 속으로 이행하지 않는다. 잠자의 갑충이라는 실존은 꿈속의 상태와는 관계가 없고, 꿈속의 자유롭고 본능적인 감정, 반응, 체험의 직접성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또한 잠자의 합리적인 낮은 표상을 위협적으로 좌절시키는 악몽 혹은 직접적인 반응의 형태로 직접성이 전도됐다는 의미에서는 잠자의 갑충은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실제로 잠자는 갑충이라는 실존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낮은 표상들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이해하기 쉬운 모든 해석들은 무용지물이다. 갑충은 인간의 표상세계에 들어맞을 수 없는 이물이다. 이것이 유일하게 갑충이 지니고 있는 의미이다. 갑충은 전혀 다른 것, 이해할 수 없는 것, 감각과 표상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갑충은 미숙의 의미에서 뿐 아니라, 갑충의 실존을 모사하는 해석의 의미에서도 결코 암시적으로 묘사될 수 없다. 갑충은 오직 해석하기 어려운 것으로서만 해석이 가능하다.
Posted by Hyos :
★참고문헌★
조정래, 『프란츠 카프카(읽기의 즐거움)』, 살림

-p.64-96

종말 또는 새로운 탄생 -「변신」론
동물 모티프와 메타포
 (생략)
  「변신」을 구성하고 있는 세 개의 장에는 일상적인 삶에서 비일상적이며 비현실적인 상황에 처한 주인공의 행위와 그에 대한 가족의 반응이 집중적으로 묘사된다. 주인공에게 익숙했던 일상적인 것 속에서 낯설고 비일상적인 것이 갑자기 개입하게 된 상황은 작품에서 구체적으로 '불안한'이나 '무시무시한' 또는 '벌레' 등의 단어로 제시된다. 작품의 첫 문장이 동화적인 서술 방식이 아니라 무섭고도 혐오스러운 사실성에 토대를 둔 반동화적 방식으로 시작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독자는 이 작품이 우화도 동화도 아니라는 관점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독자로서는 벌레로의 변신을 우선 인간 본질의 상실과 연결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은 작품 진행 과정에서 빗나가고 만다. 처음에는 비록 주인공이 공동생활을 함께 할 수 없을 정도로 흉한 모습을 하고는 있기만 가족에게는 그가 여전히 책임져야 할 아들이자 오빠로 남아 있다. 작품의 후반부로 가서야 비로소 이러한 생각은 사라지게 된다. 마침내 가족은 아들의 존재를 부정한다. 그러나 동물적인 방식으로의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자아동일성은 손상되지 않는다. 변신 후에도 주인공이 여전히 그레고르로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작품의 모순적 상황이야말로 카프카적 우화의 특징이 된다. 그러니까 인간과 동물의 인류학적인 분류를 토대를 두고 있는 전통적인 우화나 동화의 개념은 카프카의 시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일상적인 것과 비일상적인 것과의 갈등이란 측면에서 볼 때, 이 이 작품은 '음식'과 '음악'이라는 두 개의 중요한 메타포를 내포하고 있다. 누이동생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면서 주인공은 "이처럼 음식 소리에 감동을 받는데도 내가 벌레란 말인가?"라고 생각한다. 음악 소리에 의해 내적으로 감동된 비일상성은 가족과 하숙인들의 세계와 같이 보편적이며 규범적인 일상성에 의해 축출된다.
  변신 이후 점점 축소되긴 했지만 그나마 유지되왔던 주인공과 가족간의 인간적인 관계는 작품 후반부에 와서는 완전히 단절된다. 주인공을 돌보는 일은 전적으로 늙은 청소부 할멈의 손에 맡겨진다. 카프카는 백발이 성성한데도 뼈대가 굵은 큰 몸집 덕에 자신의 긴 인생에서 온갖 궂은일을 극복해온 청소부 할멈을 주인공과 대조되는 인물로 설정한다. 일상적인 것의 중심에 활기차고 굳건하게 서 있는 할멈은 비일상적인 것 속에 방치되어 있는 주인공을 두려워하지 않고 "늙은 말똥벌레"라고 지칭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비일상적인 것은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라져야만 한다는 일상성의 법칙에 따라 주인공의 시체는 결국 할멈의 손에의해 한낱 쓰레기로 처리된다.

잠자 가족과 실제 가족과의 유사성
잠자 부인과 카프카의 어머니
  (생략)
  인물의 성과 관련하여 앞에서 언급한 유사성 외에도 두 가족(카프카 가족, 잠자 가족)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다. 잠자 부인은 두 아이의 어머니이며 아들 그레고르가 변신하기 전에는 직업 활동을 하지 않다가 변신 후에 유행품 가게에서 삯바느질을 한다. 그녀는 남편의 사업은 이미 5년 전에 파산했기 때문에 남편 일에는 신경 슬 필요는 없다. 그러니까 잠자 부인은 카프카의 실제 어머니에 비해 비교적 가사에 대한 부담이 적은 편이다. 그녀는 그레고르가 갑자기 보통 때처럼 회사에 출근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자, 그 즉시 걱정을 하면서 조심조심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레고르가 출근 시간을 미루는 이유를 알아내려고 한다. 그녀는 변신 후의 그레고르와 접촉을 시도하는 한편, 아들이 변신 전에는 성실하고 바람직한 직원이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는 등 그레고르의 무성의한 태도에 화가 난 회사 지배인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는 첫 인물인 셈이다. 그레고르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아버지는 열쇠 수리공을 부르자고 주장하는 반면에 그녀는 의사를 불러오라고 한다. 이런 그녀의 배려와 부드러운 마음씨는 작품 끝부분에 가서야 비로소 과감하고 단호한 태도로 바뀐다. 전체적으로 볼 때 그녀는 그레고르와 특별히 친밀함을 유지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아머지가 그레고르에게 사과를 던지면서 공격할 때도 그녀가 자발적으로 개입하여 남편을 제지하지 않았다면 그레고르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레고르를 남편으로부터 보호해 줄 뿐만아니라 그레테 앞에서도 그의 입장을 옹호해주기도 한다. 잠자 부인은 딸의 주장에 따라 그레고르의 방에 있는 가구를 치워버린 뒤에 야기될 수 있는 불행한 결과를 통찰하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는 딸에게 맞서기에는 너무 약하고 불안정한 인물이기도 하다. 잠자 부인의 이러한 행동 방식의 원인은 그녀의 허약한 건강 상태에 있을 수 있다는 가정도 가능하다. 그녀는 자주 몸이 아픈 데다 계속 천식에 시달려왔다.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야 비로소 그녀는 건강과 활기를 되찾는다. 작품에서 종종 묘사되는 그녀의 실신과 히스테리성 발작은 남편과 아들 사이의 갈등이나 경제적인 어려움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잠자 부인의 특성은 그녀로 하여금 카프카의 어머니 율리 카프카에 비견되는 가족내의 중간자 역할을 가능하게 한다.
  아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특징으로 하는 어머니 역할에서 볼 때 잠자 부인과 율리 카프카는 거의 일치한다. 율리 카프카는 아들 프란츠 카프카에게는 그야말로 좋은 어머니이다. 카프카 부인은 객지에 나가 있는 아들에게 종종 소포를 보내주곤한다. 외적으로 볼 때 아들에 대한 두 여자의 사랑과 보살핌은 행동 방식의 공통분모가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율리 카프카의 아들에 대한 사랑은 물질적인 면에만 치우친 피상적인 성격을 벗어날 수 없다.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 밖에서 보내야 했기 때문에 아들과 내면적으로 깊은 신뢰를 형성할 만큼의 시간적인 여유를 갖지 못했다. 이런 카프카 부인과는 달리 잠자 부인은 그레고르와 진지하고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비교적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카프카 아버지, 여동생에 관한 내용 생략 )

그레고르와 카프카
(생략)
  그레고르의 외적 특성은 시간이 가면서 점점 동물적인 것으로 바뀐다. 처음에는 언어능력이, 다음에는 식욕과 시각이 상실되어간다. 이러한 과정에도 불구하고 그레고르에게는 인간적인 사고와 인식력, 그리고 가치 판단 능력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는 누이동생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면서 자신이 여전히 인간임을 스스로 확신한다. 그러나 가족은 그레고르를 더 이상 인간으로 간주하지 않고 그의 방 속에 방치할 뿐이다. 회사에 출근하는 것은 고사하고 이제는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된 그레고르는 가족에게 경제적으로 커다란 손실을 초래하는 존재가 된다. 가족은 경제적으로 쓸모없게 되어 버린 그레고르를 대신해 각자 새로운 직업을 갖는다. 그레고르의 변신을 통해 가족은 예전과는 달리 각각의 삶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특히 아버지는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활기찬 직장 생활을 다시 시작한다.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는 속담은 적어도 카프카와 그의 아버지 사이에서는 적용되지 않았다. 자기 스스로를 몸이 비쩍 마르고 연약한 체질이라고 묘사한 카프카의 눈에 아버지는 항상 강하고 힘센 모습으로 각인되었다. 아버지는 훗날 성공적으로 자신의 사업을 물려줄 튼튼한 아들을 원했지만, 카프카에게는 아버지의 그런 현실 지배욕이나 사업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카프카의 삶에서 모든 것을 의미하는 글쓰기 작업은 아버지의 눈에는 한낱 현실 도피처에 불과했다. 아버지의 강압적인 자세와 끊임없는 책망은 카프카의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았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않는 카프카적 침묵과 수줍음은 그러한 상처의 흔적일 것이다. 항상 자기 자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아들에게는 반항의 권리를 전혀 허용하지 않는 아버지 앞에서 아들이 느끼는 공포는 카프카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그 무수한 익명의 불안으로 확장되었다. 그 결과 카프카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고, 수시로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적 감정에 빠져들었다. 
  카프카는 자신의 비극적인 경험을 작중 인물 그레고르 잠자를 통해 독자에게 제시했다. 그레고르의 변신 후 그의 아버지에게서 볼 수 있는 부정적인 행동 방식은 카프카의 아버지의 것과 동일한 속성을 갖는다. 이러한 일치 역시 결코 우연이 아님은 지금까지 밝힌 바와 같다. (이하 생략)
Posted by Hyos :

★참고문헌★
유숙자, 『자화상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 (인생에 대한 친밀한 고백의 기록)』, 살림

- ~p.98 '인간실격'에 연관된 부분이나 작가의 유년시절에 된해서 적었다. 분홍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책속의 인용문!



1부다자이 오사무의 문학과 삶
고향을 찾아서

아오모리현 기타쓰가루군 가나기촌
  나는 시골의 소위 부잣집에서 태어났습니다. 형과 누나가 많았고, 막내로서 무엇하나 부족함 없이 자랐습니다. 막내로서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자랐습니다. 이 때문에 세상 물정 모르는 지독한 부끄럼쟁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나는 이런 부끄럼이 자칫 남 보기에 스스로 자랑삼고 있는 듯 보이지는 않을까 신경이 쓰입니다.
  나는 남한테 제대로 말도 거의 못 붙일 정도의 여린 성격으로, 따라서 생활력도 제로에 가깝다고 자각하면서 어린시절부터 지금껏 지내왔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오히려 염세주의라 부를 만도 하고, 산다는 것에 별로 흥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저 한시라도 어서 이 생활의 공포에서 도망치고 싶다. 이 세상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만, 어릴 적부터 늘 갖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나의 성격이 나를 문학에 뜻을 품게 한 동기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성장한 가정이나 가족, 혹은 고향이라는 개념, 그런 것이 아주 깊게 뿌리박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나의 반생을 이야기한다」)

  (이하생략)

유년시절
  (윗부분 생략)
  내가 태어났을 때 가장 출세해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귀족원 의원이었다. 아버지는 우유로 세수를 했다.(「솔로몬왕과 천민」)
  '오즈카스'. 가부장제가 엄격했던 당시, 쓰가루 지방에서는 삼남이나 사남을 업신여겨 이렇게 불렀다 합니다. 특권층 계급 출신, 그리고 집안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오즈카스'로서의 위치는 작가에게 '세상 물정에 어둡고' '제로에 가까운 생활력'을 허용하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이해타산을 밝히는 현실적 문제와 생활로부터 무풍지대에 놓인 작가는 이로써 초현실적인 절대성이나 순수에 대한 갈망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굉장히 바쁜 사람으로 집에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집에 있어도 아이들과 같이 있지 않았다. 나는 이런 아버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머니와도 나는 친해질 수 없었다. 유모의 젖으로 자라 숙모의 품에서 성장한 나는 초등학교 2,3학년 때까지 어머니를 알지 못했다. (중략)어머니에 대한 추억은 쓸쓸한 것이 많다.

  인용한 문장은 다자이의 초기 단편 「추억」에 나오는 글입니다. 「추억」은 작가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거의 사실그대로 묘사한 작품으로, 작가의 내면세계의 형성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텍스트라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공포, 어머니의 부재는 작가의 기독교 이해, 신(神)을 받아들이는 자세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용서하는 신이기보다 벌하는 신.
  병약한 어머니를 대신해 어린 다자이를 돌본 사람은 숙모 기에와 유모 다케입니다. 오랫동안 다자이는 숙모를 생모인줄 알았는가 하면, 자신에게 독서와 도덕을 가르쳐준 다케의 존재가 자신에게 그 누구보다 큰 의미를 띠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1944년, 쓰가루를 방문하고 나서 발표한 기행문 소설 『쓰가루』에는 고향을 떠난 이래, 극적으로 이루어진 다케와의 재회가 클라이 막스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다케의 이렇듯 진하고 거침없는 애정의 표현방식을 접하고, 아아, 나는 다케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형제 중에서 나 혼자 촌스럽고 거친 구석이 있는 것은, 이 슬픈 키워준 부모의 영향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이때 비로소, 내 성장의 본질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나는 결코 고상하게 자란 남자가 못된다. 자연히, 부잣집 자식답지 않은 구석이 있었다.
  '부잣집 자식답지 않은 구석'. 이는 강한 자보다 약한 자, 승리자보다 패배자, 권력자보다 고뇌하는 자에게 더 관심과 애착을 보인 작가의 특징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하 생략)


작가로의 길
- 쓰시마 슈지에서 다자이 오사무로


습작시절
  드디어 나는 어떤 쓸쓸한 배출구를 발견했다. 창작이었다. 여기에는 많은 동류가 있어서 모두들 나와 똑같이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떨림을 응시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작가가 되자, 작가가 되자, 나는 남몰래 소망했다.(「추억」)
  아오모리 중학교 시절 『교우회지』에 소설을 발표하면서 다자이는 작가가 되기를 열망했습니다. 급우들과 동인지 『신기루』를 창간해, 적극적으로 편집도 맡으면서 잇달아 단편과 에세이 등을 발표합니다(통권 제 12호로 폐간).  히로사키(弘前)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어, 다자이는 평소 흠모하던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1892-1927)의 자살 소식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으로 어느덧 우리에게도 그 이름이 낯설지 않은 이 작가는 스스로 죽음의 이유를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라 했습니다. 다자이는 후에, 당시 문단에서 '문학의 신(神)'으로 까지 존경받던 작가 시야 나오야(志賀直哉, 1883-1971)를 향해 "당신이 지긋지긋한 까닭은,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아쿠타가와의 고뇌를 전혀 이해 못한다는 점이다."〔『여시아문(如是我聞)』〕라고 쏘아붙입니다.
  아무튼 이로 인한 심리적 우울을 치유하기 위해서였을까. 이때부터 다자이는 기다유〔義太夫, 음곡에 맞추어 낭창하는 옛이야기로 전통 악기 샤미센(三味線)을 이용〕연습에 열을 올리기도 하고, 게이샤가 있는 요릿집을 드나들게 됩니다. 요즘과 달리 당시 풍속으로는 부잣집 출신 고교생의 이런 도락이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는데, 다만 쓰시마 집안의 '수재'로 기대받던 다자이의 갑작스런 변모에는 어떤 심상찮은 전조가 분명 엿보입니다. 게이샤 오야마 하쓰요(小山初代, 당시 17세)와의 만남. 그녀는 다자이의 첫 아내가 됩니다.
  고교 때 창간한 동인잡지 『세포문예』창간호에 다자이는 장편소설 『무간나락』의 「서편 아버지의 첩댁」을 쓰시무 슈지라는 필명으로 발표합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소설에는 호색한 아버지와 그의 방탕한 피를 물려받은 소년의 조숙한 성의식이 노골적으로 강조되어 있습니다. 소년이 지닌 용모의 추악성, 굴절된 성의식에 대한 과장된 표현은 작가의 자학적 자화상에 가깝습니다. 용모로 인한 열등감, 소외 체험, 자신의 출생에 대한 망상, 과도한 자존심 등 유년시절 작가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습작 『무간나락』은 집안의 치부를 드러낸 만큼 결국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이하 생략)

자살의 시대
  도쿄생활의 시작과 더불어 다자이에게는 여러가지 일들이 한꺼번에 벌어진 듯한 느낌입니다. 일본공산당 재건을 위해 활동하던 고향 선배의 권유로 매달 십 엔씩 자금 원조를 승작하면서 비합법운동에 관여하게 된 것. 유독 우애가 두터웠던, 도쿄미술학교 조소과에 다니던 셋째형의 죽음. 오야마 하쓰요와의 결혼 문제로 인해 생가로부터 분가(分家) 절연. 긴자의 바(bar)에서 만난 여급(다나베 아쓰미)과 칼모틴 동반자살 기도, 여자만 사망……. 
  다자이와 공산당 운동에 관해서는, 그가 사상으로서의 코뮤니즘 그 자체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 따른 행동이었다기보다, '부르주아'로서 자신의 위치에 대한 죄의식, 약자에 대한 공감 등 다분히 윤리적, 양심적인 측면이 앞섰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남에게 부탁을 좀체 거절하기 힘든 그의 연약한 심성도 미루어 짐작하게 됩니다. 활동 참가를 권유하면서 내세운 두 가지 조건은, 직접 운동에 가담 않고 생가에는 비밀에 부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결국 다자이는 2년 뒤 공산당 활동과의 절연을 서약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부친의 뒤를 이어 정치에 입문한 큰형의 입지를 고려한 생가의 강권이 크게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전향을 한 셈으로, 비합법 운동과 전향 체험이 다자이의 문학정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때부터 그는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는 필명으로, 유년시절의 자신을 찾아 '역행'해가는 「추억」을 쓰기 시작합니다.
  여자와 동반자살을 기도했다가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사실 또한, 평생토록 '생애의 흑점'〔『도쿄팔경』〕으로 다자이의 내면에 아픈 흔적을 남깁니다. 아오모리에서 도쿄로 자신을 좇아 가출해 온 하쓰요와의 결혼 부담, 생가와의 절연이라는 중압감에서 막다른 도피처로 선택한 죽음. 이때의 사건을 소재로 쓴 소설이 『만년』에 실린 「광대의 꽃」입니다.
  나는 이 손으로 소노를 물에 빠뜨렸다. 나는 악마의 오만함으로, 나 살아나도 소노는 죽어버려 하고 바랐다. 더 얘기할까. 아아, 그렇지만 친구는 그저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중략)
  다자이는 고교시절(1929)에 이미 칼모틴 음용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아쓰미와의 가마쿠라 동반자살 미수(1930) 이후 서른아홉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두 차례나 더 비슷한 사건이 되풀이됩니다. 혼자 가마쿠라로 가서 산에서 목 맨 자살 미수(1935), 그리고 아내 하쓰요의 불륜을 알고나서 그녀와 동반자살 미수(1937).
  원래 보통사람과는 달리 삶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가 결핍되었다고는 하나, 다자이의 거듭되는 자살 기도와 미수를 보노라면, 마지막의 경우를 제외하고 네 번씩이나 죽음의 가능성을 절묘하게 피해나간 그 우연에 대해 참으로 기이하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듭니다. 못다 한 문학에 대한 야망과 미련이 그의 몸과 정신세계를 무의식적으로 강하게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저는 이렇게 추정해 봅니다. 혼자 감당하기 버거운 현실의 장벽(고교 시험성적 부진 우려, 신문사 입사 시험 실패, 대학 졸업 가망 없음에 대한 절망 등)에 부딪힐 때마다 이를 해결, 극복하려 애쓰기보다는 순간적인 충동에 내맡겨 죽음으로 치닫는 그의 데카당적인 기질, 자기파멸적 성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짚어 두고 싶은 점은, 수차례에 걸친 다자이의 자살 미수가 모두 1938년 이전, 그러니까 그의 초기 문학시기까지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 등 시대적 정황이 작가의 순수 예술적 창작 활동을 크게 위협하던 시기에, 놀랍게도 다자이의 생활과 문학은 오히려 건강성을 유지하는 저력을 발휘하고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절망과 방황의 계절

(윗부분 생략)
『HUMAN LOST』 체험과 성서
  당시 병원에서 '자살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그를 어둑한 감금병동에 강제 수용했는데, 이때의 절망으로 다자이 스스로 자신에게 내린 선언-인간실격. 이듬해(1937) 발표한 『HUMAN LOST』는 이 입원 체험을 소설화한 것입니다.
  쇠창살과, 철망, 그리고, 육중한 문, 여닫을 때마다 쩔거덕쩔거덕 열쇠소리. 불침번 서는 간수, 어슬렁어슬렁.
  다자이와 성서(聖書). 약 한 달간의 입원 생활은 비록 굴욕과 절망의 시간이 분명했으나, 오히려 이러한 조건이 다자이에게는 '성경만 읽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이 작가의 내면 깊숙이 흡수되는 중요한 계기를 부여했습니다. 성서는 다자이의 사상적 근간을 형성했다고 할 수 있는 책입니다. 그렇다면 다자이는 성서, 기독교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였을까요.
  우리가 알고 잇는 요짱은, 무척 얌전하고 아주 눈치 빠르고, 그냥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 하나님처럼 착한 아이 였습니다.
  다자이의 대표작 『인간실격』은 마담의 대사로 이렇게 끝맺고 있습니다. 인간실격자 , 오바 요조 - 그를 마담은 '하나님처럼 착한 아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실격자가 '신격화'되는 자리, 여기에 일본적 풍토의 문제를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우치무라 간조 수필집』과의 만남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치무라의 제자인 쓰카모토 도라지의 「성서지식」강독을 들 수 있습니다. 알려진 바대로 우치무라는 무교회주의라는 일본의 독특한 기독교적 정신을 주창한 인물입니다. 우치무라의 글에 보이는 신(神)인 동시에 인간으로서의 그리스도상(像), 그리고 이에 동화되어 스스로 그리스도가 되려 노력해야 한다는 점 등은 다자이의 시점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형성된 그리스도상이 일본의 패전을 거침으로써, 현실적 위기 상황을 맞아 일종의 파멸적 저항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는 측면도 충분히 설득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나는 그 사람의 고뇌만을 생각했다.(『고뇌의 연감』)
  지금까지 다자이 연구에 있어서 특히 성서와의 연관성은 여러 논의가 진행되어 왔으나, 신앙보다는 자기인식의 수단 으로서 기독교의 의미가 강조되는 것이 일반적인 듯합니다. 비록 다자이와는 그 시대나 입장이 상이하긴 해도, 기타무라 도코쿠, 시마자키 도손, 아리시마 다케오 등 일본 근대문학의 대표작가들이 기독교 신앙의 세례를 받은 후에 결국은 종교로부터 멀어지는 전말을 함께 떠올려도 봅니다. 공교롭게도 기타무라, 아리시마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아내 하쓰요와의 결별
  그런데 무사시노 병원을 퇴원하고 난 뒤, 몇가지 사실이 다시 다자이를 충격으로 몰아넣습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아내 하쓰요의 '슬픈 실수'.
  H는 이제, 죽을 작정인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을 때, 나도 죽는 걸 생각한다. 둘이서 함께 죽자. 신(神)인들, 용서해 주겠지. 우리는 사이좋은 형제처럼 여행을 떠났다. 미나카미 온천, 그날 밤, 두 사람은 산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H를, 죽게해선 안 돼, 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애썼다. H는, 살았다. 나도 멋지게 실패했다. 약품을 사용했다.(『도쿄팔경』)
  죽음을 각오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사람은 충분히 세상앞에 면목이 설 터'이니 '나만, 혼자서 죽자'라고 결심한 다자이 역시 뜻대로 되지 않아, 이로써 네 번째 자살 미수라는 기록을 남깁니다.
  되풀이되는 다자이의 자살 충동과 미수에 그치는 사건들을 보면서, 자칫 우리는 그의 전 생애가 어둡고 무거운 막에 휘덮여 잇는 게 아닌가 단정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다자이=절망, 자살한 작가'라는 단선적인 이미지에 구속되어 다자이 문학의 명(明)과 암(暗)을 균형 있게 감상하지 못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하 생략)


새로운 출발
- 전시하(戰時下)의 수확기

(윗부분 생략)
여성 독백체
  다자이 문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 특징이면서 중기 이후 현저해진 점으로는, '여성 독백체'문장을 들 수 있습니다. 그 집대성이라 할 소설이 『여학생』. (이하 생략)

순수를 위한 동경
  단편 『직소』는 그리스도를 은화 30냥에 팔아넘긴 배신자 유다의 고백으로 이루어진 작품입니다. 자신의 배신 행위에 대한 정당화를 이리저리 둘러대며 비굴하게, 또는 나름대로의 간절한 진실성을 담아 다급하게 호소하는 유다의 어투는, 작가의 '구술 필기'라는 방식과 어우러져 생동감 잇는 극적 효과를 전달해 줍니다.
  다자이와 성서의 관련을 언급할 때 자주 거론되는 이 소설은, 어째서 작가가 유다를 주인공으로 선택했는가, 하는 문제를 던져보게 합니다. 가령 "나는 나쁜 짓을, 언젠가 저질렀다, 난 지저분한 녀석이다라는 의식이지요, 그 의식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어, 나는 언제나 비굴합니다."(「갈매기」)라는 문장에서 유추해 볼 수 있는, 과거 자신의 행위-특히, 동반자살 미수와 전향 체험-에 대한 잠재된 죄의식에 기인되었다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또한 작가에게는 전지전능한 그리스도보다 유다의 배신과 그의 고뇌가, 순수를 동경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나약한 인간의 전형으로 받아들여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순수에 대한 동경은, 인간의 마음속에 지닌 사랑, 신뢰, 명예에 대한 기원을 담은 『달려라 메로스』에서도 극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메로스의 순수와 대비해, 폭군 디오니스 왕의 인간 불신이 서로 상극을 이루며 이야기의 긴장을 유발한다는 점에 주목할 만합니다.


『인간실격』
- '고뇌'하는 인간

신에게 묻습니다
  일본 근대 작가 가운데 다자이만큼 극단적인 호(好)·불호(不好)의 취향으로 나뉘는 독자를 가진 이도 아마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숭배, 아니면 혐오. 짐작하건데, 그 취향은 다자이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인간실격』의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결정적으로 좌우될 여지가 많아 보입니다.
  『인간실격』은 '인간'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노라고, 그래서 '인간'들이 모여 사는 '세상'을 살아갈 힘이 없노라고 호소하면서 '실격'을 자처한 한 '인간'의 고백서입니다. 그의 참담한 고백이 당신의 내면에, 영혼에 어느 정도의 진정성과 파장을 확보할 수 있는가. 이 점이 다자이와의 거리를 좌우하게 됩니다.
  흔히 다자이 문학은 '청춘의 문학'이라 일컬어집니다. 청춘 - 감수성 예민하고 자기 정체성에 눈뜨기 시작해 주면과의 불가피한 마찰에 직면하는 이 시기에, 다자이는 '나의 다자이'로서 독자에게 거의 절대적인 대변자로 화려하게 등장하지만, 이는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일 뿐 언제까지나 다자이 팬으로 남는다는 것은 '미성숙'의 표출이다,라는 암묵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지 오래입니다. 그럼에도 그의 문학은 시들지 않는 생명력으로 새로운 세대와의 호흡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다자이 연구가로 잘 알려진 오쿠노 다케오는 『만년』『신(新)햄릿』『옛이야기』『사양』등 다자이의 그 어떤 걸작들이 잊혀진다 해도 『인간실격』만은 오래오래 사람들에게 거듭 읽히면서 남게 되리라 확신한다(『太宰治論』)고 썼습니다. 반면에 이런 평자도 있습니다. 『인간실격』은 세상이 떠들썩할 정도의 걸작으로도, 또한 다자이 오사무적인 훌륭한 작품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의 자신이건 현재의 자신이건, 보기 드문 뛰어난 인간 이해자이면서도 그저 실용적인 측면에만 유독 타인의 마음을 알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고 연신 주장하는 것은 마치 자신이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정신의 귀족인 양 과시하는 듯하여, 참으로 역겹다〔하나다 도시노리〕라고.
  『인간실격』의 구성을 보면 '첫 번째 수기' '두 번째 수기' '세 번째 수기'를 사이에 끼고, 앞뒤로 '서문'과 '후기'를 각각 나눠 싣고 있습니다. '수기'의 주인공은 오바 요조(다자이의 첫 단편집 『만년』에 실린 「광대의 꽃」주인공 이름과 동일). '서문'과 '후기'는 소설가인 '나'가 쓴 것입니다. 일본의 전통적인 사소설 작가로서의 면모를 부정할 수 없는 만큼, 독자들은 아무래도 소설가 '나'보다는 오바 요조를 작가 다자이의 자화상으로서 추출해 읽으려는 경향으로 쏠리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실격』이 단지 오바 요조의 수기만으로 성립되지 않고, '나'에 의한 '서문'과 '후기'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는 점은 새삼 강조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적어도 작가 다자이는 오바 요조를 '나'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시각과 의견 표명을 하고 있으므로.
  이건은 『인간실격』 이후, 다자이가 아사히 신문에 연재될 예정으로 집필한 소설 『굿바이』의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분위기로의 급변에 대한 낯설음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주는 게 아닌가도 생각됩니다.
  오바 요조의 '인간실격'은 현실세계에 내재하는 선과 악, 미와 추(醜), 그 양면성을 꿰뚫은 지(知)에 기인된 이해 불가, 소통의 부재라는 지점에 그 불행이 놓여 있습니다. 자포자기의 막다른 길목에서 오바 요조는 신(神)에게 물음을 던집니다. "신에게 묻습니다. 신뢰는 죄인가요?" "신에게 묻습니다. 무저항은 죄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조차도 두려워하는' 요조, '하나님의 사랑은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벌만을' 믿는 요조에게 신앙이란 '단지 하나님의 채찍을 받기 위해 고개를 떨구고 심판대로 향하는 일'입니다. 폐인이 된 요조는 '고뇌의 항아리'가 텅 비어 더 이상 '고뇌할 능력'조차 상실하게 되는데, 그 배경에는 아버지라는 '그립고도 무서운 존재'의 죽음(부재)이 있습니다. 요조의 '인간실격'은 신과의 관계 단절로 인한 '고뇌'의 상실이 핵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Posted by Hyos :
★참고문헌★
김성곤, 『J.D. 샐린저와 호밀밭의 파수꾼』, 살림
(ISBN 89-522-0349-6, ISBN 89-522-0096-9)
- 재밌는 부분이 많아서 전범위에 걸쳐 조금씩 옮겨적었다. 책마다 같은 내용을 다르게 설명하기도 하고, 자세하게 여기는 내용이 다르기도 해서 주로 그런 부분만 뽑았다.


은둔의 작가 샐린저

(앞부분 생략)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샐린저는 홀든 콜필드(Holden Caulfield)의 입을 빌어, "정말로 내가 감동하는 책은 말이야. 다 읽고 난 뒤에 그걸 쓴 작가가 친구가 되어, 언제라도 전화를 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책이란다. 하지만 그런 기분을 주는 책은 좀처럼 없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그 어느 독자의 접근도 철저히 차단하고 있는 패러독스를 보여주고 있다.
(이하 생략)


샐린저 현상

『호밀밭의 파수꾼』이 등장한 시대적 배경
  미국의 1950년대는 흔히 '정치적 보수주의, 경제적 호황, 그리고 사회적 순응'의 시대로 기억된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인들은 평화와 안정을 선택했고 1952년에 '평화와 번영'을 약속한 공화당의 아이젠하워를 대통령으로 선출했으며,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이 주도한 좌파색출 마녀사냥인 매카시즘의 횡포에 순응했다. (중략)
  1950년대에 중산층들은 교외로 이사 가기 시작했으며, 잔디밭에서 바베큐 파티를 열고, 세탁기와 텔레비전 수상기를 들여놓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은 가정과 교회와 커뮤니티의 미덕을 존중했고, 정원에는 동양의 약초를 심었으며, 애국심과 건전한 정신을 숭상했다. (중략)
  1950년대는 또 미국인들의 이혼율이 최저로 떨어지고 가족이 중시되었으며 출산율이 높아지던 시대였다. 텔레비전 드라마 역시 가족을 중시하는 홈드라마들이 주종을 이루었으며(예컨대 인기드라마 「비버에게 맞겨줘 Leave It to Beaver」),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과 품위가 리바이벌되던 시대였다. 심지어는 오늘날 범죄의 온상으로 여겨지는 뉴욕의 센트럴 파크조차 당시는 가족들이 놀러가는 평화로운 곳의 상징이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홀든이 센트럴 파크를 자주 거니는 것도 바로 그런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한 장치라고 보아 틀림이 없다.(중략)
  그러나 평온한 외관과는 달리, 1950년대의 그러한 모노크롬적 분위기를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매카시즘의 철저한 반공이데올로기로 정치적 우파만을 허용했고, 소위 정상적인 그룹이나 커뮤니티에서 일탈하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억압했다. 당시 미국인들은 경제적 풍요 대신 다양성이 결여된 단일문화와 보이지 않는 정신적 통제를 그 대가로 치르고 있었다. 그래서 고백파 시인들(Confessional Poets)은 내면 속의 문제점들을 천착하기 시작했고, 로버트 로월 같은 시인은 「스컹크들의 시간」이라는 시에서 "시대는 병들고 내 정신도 정상이 아니다."라고 노래했으며, 비평가 어빙 하우는 당시를 "순응의 시대(This Age of Conformity)"라고 불렀다.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은 바로 그러한 시대에 정면으로 도전했던 신선하고 도발적인 작품이었으며, 1950년대 초반, 물질적 풍요의 시대에 정신적 빈곤을 고발한 반문화(反文化)의 원조가 되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가 프렙 스쿨(Preparatory School : 아이비리그에 진학하기 위해 부자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사립 고등학교)에서 낙제해서 자랑스럽게 학교를 떠나는 설정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 위선으로 위장한 점잔은 사회에 대한 저항의 상징처럼 보인다.
  (생략)

'샐린저 현상'은 왜 일어났는가?
  (생략)지금 읽어도 『호밀밭의 파수꾼』의 구어체 문체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또 강한 마력으로 독자들을 끌어당긴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독자들은 이 소설이 당대에 누렸던 그처럼 폭발적 인기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인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1950년대를 전후한 미국사회의 분위기를 알아야만 한다. 1930년대 좌파 진보주의 시대를 겪은 미국사회는 제2차세계대전을 지나 전후사회로 접어든 1940년대 후반부터는 차츰 우파 보수주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파괴적 전쟁을 겪은 제대군인들과 그 가족들은 평화와 안정을 원했고, 그 결과 미국은 1957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의 애들라이 스티븐스 대신 또 다시 공화당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를 선택했으며,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이 주도해 현대판 좌파 마녀사냥을 주도한 극우 매카시즘이 사회전반에 걸쳐 횡행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몸을 사렸고, 작가들은 비정치적인 작품들을 썼으며, 사회는 점잖음과 안정을 내세워 보수로 회귀하고 있었다.
  가장 비정치적인 작가로 알려진 헨리 제임스와 윌리엄 포크너가 재발견되어 재평가된 것도 바로 이때였고, 솔 벨로 같은 작가들이 정치적 이슈 대신 산업사회에서의 개인의 소외를 주제로 질서를 추구하며 인간의 내면세계를 탐구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또 엘리아 카잔 같은 유능한 감독이 미의회에 불려가 영화계의 좌파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바로 그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정면 도전하는 도발적인 작품이었다. 학교라는 제도로 표상되는 보수적 기성세대의 위선과 허위를 고발하며, 분연히 학교를 떠나 뉴욕의 거리를 방황하는 홀든 콜필드의 체제 저항적 태도는 당시 억눌려있던 젊은이들의 가슴에 반항의 불을 지피는 기폭제가 되었다. 홀든 콜필드의 거칠 것 없는 언사, 당시로서는 사회적 터부였던 적나라한 욕설, 그리고 시원하게만 느껴지는 그의 저항적 태도는 점잖음을 추구하던 미국문단에도 충격적이었지만, 허위와 기만 속에 안정을 추구하며 살고 있었던 기성세대에도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더욱 놀라운 것은 『호밀밭의 파수꾼』이 아직은 아무런 체제 저항이 시작되기도 전인 1951년에 발표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곧 샐린저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가는 혜안의 작가였다는 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기념비적 소설은 이후 시작된 일련의 체제저항운동의 시발점이자 기폭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학사적 의의를 갖는다고 알려져 있다. 예컨대 『호밀밭의 파수꾼』은 1950년대 중반과 후반에 일어난 반체제 움직임인 미국의 '비트운동(The Beat Movement)'과 전후 영국의 진보주의 그룹인 '성난 젊은이들(The Angry Young Men)'의 시효가 되었으며, 1960년대를 풍미했던 히피문화와 젊은이들의 반문화(counter culture)의 원조가 되었다.
  (생략)


샐린저의 삶과 문학적 여정

은둔하기 전의 샐린저
  (생략)
  전쟁이 발발하자 샐린저는 군에 입대하려 하지만 심장에 약간의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징집을 거부당한다. 후에 신체 검사 기준이 약화되자, 샐린저는 드디어 부사관으로 입대해 통신부대에 근무하다가, 1943년에는 정부보대에 근무하게 된다.(중략)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그때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종군작가로 샐린저의 부대에 왔다가 독일제 루거 권총의 성능을 시험해본다는 이유로 닭의 머리를 날려 보내자 샐린저는 이후 헤밍웨이를 싫어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헤밍웨이에게 있어서 용기를 획득하고 성인으로 입문하는 과정은 늘 사자나 투우(죽음)와 대면해서 그 짐승을 죽임(두려움의 극복)으로써 이루어진다. 반면 윌리엄 포크너에게 있어서 순진성으로부터 벗어나 경험의 세계로 들어가는 성인의식은 언제나 동물(사슴이나 곰)과 대면했을 때 그 동물을 차마 죽이지 못하는 보다 더 고양된 감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헤밍웨이의 문제점은 그러다보니 닭처럼 위협이 되지 않는 짐승도 별 생각 없이 죽이게 된다는 데 있고, 샐린저는 바로 그 점에 혐오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샐린저는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홀든의 입을 빌어,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있거라』를 '가짜 책(phony book)'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중략)
  당시만 해도 샐린저는 사람들과 잘 어울렸고, 한때는 사라로런스 칼리지의 단편 강좌에 가서 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곧 대중 앞에서 말을 한다는 것과, 강연 중에는 작가들을 범주화하게 된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껴, 이후 공적 행사에는 일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게 되었다.
  (중략)
  1953년까지만 해도 샐린저는 사람들과 자주 만나 사교를 했다. 그가 셜리 블레이니에게 유일한 인터뷰를 허용한 것도 이때였는데,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샐린저는 점차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그들이 자기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착취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점차 사람들을 피하게 되고, 그 결과 1954년에는 샐린저에 대한 기록이 아무것도 남아있기 않게 되었다.
  (중략)
  샐린저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들로 릴케, 카프카, 프루스트, 플로베르, 랭보, 도스토예프스키, 체홉, 톨스토이, 제인 오스틴, 에밀리 브론테, 윌리엄 블레이크, 콜리지, 헨리 제임스 등을 꼽았다. 미국작가로는 피츠제럴드와 링 라드너를 특히 좋아해서, 샐린저의 작품 속에서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와 라드너의 소설들을 자주 칭찬하곤 했다. 그는 또 「두이노의 비가(悲歌」를 쓸 때 칩거했던 릴케의 성(城)을 본받아 자신도 일종의 성채에 칩거하는 것처럼 보인다.
 
은둔한 후의 샐린저
  샐린저 vs. 해밀턴 저작권 법정사건
  (생략)해밀턴은 자신이 그렇게 존경했고 관심을 가졌던 작가가 자신의 전기를 쓰는 전기 작가를 고발해 서로 적이 되었고, 앞으로 법전과 문학사에 '샐린저 대 해밀턴 사건'이라는 영원히 바람직하지 않은 사례로 남게 된 것은 말할 수 없이 큰 손실이자 유감이라고 자신의 소감을 밝히고 있다.
  (생략)


『호밀밭의 파수꾼』은 어떤 작품인가

  (생략) 홀든은 서부로 갈 생각을 하게 되고, 피비의 학교로 가서 떠나기 전 작별인사를 하고 싶다며 오후에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으로 나오라는 메모를 남겨놓는다. 피비의 학교의 벽에 외설스러운 욕이 써 있는 것을 본 홀든은 그걸 쓴 자를 붙잡아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그 낙서를 지운다. 그러나 홀든은 곧 다른 곳에도 그런 상스러운 욕이 씌어 있으며, 어떤 것들은 칼로 새겨져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절망하게 된다.
  (중략)
  오후에 박물관에서 피비를 기다리는 동안, 홀든은 이집트 무덤을 구경다가 다시 거기에서도 외설스러운 낙서를 발견하고 경악한다. 이는 비단 현대문명뿐 아니라, 인류역사 내내 순수성을 오염시키는 저급한 요소들이 상존해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중략)
  서른 다섯 살쯤 되면 돌아올는지도 모르지, 누군가가 병에 걸려서, 죽기 전에 나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을 경우에 말이야. 하지만 그런 일이 없는 한, 나는 오두막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단다.
  서른다섯 살이라는 나이가 미국에서는 중년의 시작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홀든ㅇ은 청년기의 순수성을 간직한 채 현실 세계에서 멀리 떠나 살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략)
  이윽고 나타난 피비는 짐을 들고 와서 자기도 같이 서부로 가겠다고 조르지만 홀든은 거절한다. 두 남매는 동물원으로 들어가 잠시 곰을 보다가 피비는 회전목마를 탄다. 그녀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홀든은 이름 모를 행복감 속에서 서부로 달아나지 않고 남아야겠다고 결심한다. 홀든은 다시 한번 이 거친 세상에 순진한 아이들을 지키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기로 결심한다.
  (중략)
  홀든은 자연사 박물관을 특히 좋아하는데, 그 이유를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그대로 보존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자연의 역사는 유리로 된 창 안에 오염되지 않고 순수를 간직하며, 언제 찾아오더라도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순수의 보존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마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처럼, 시간이 흐르면 피비도 순수성을 잃게 될 것이고 타락한 어른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속하는 순수란 없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순수를 상실하고 타락하며,결국 허위와 가식 속에 살게 된다. 홀든의 고뇌는 바로 그러한 필연적 사실의 슬픔을 인식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중략)
  홀든 콜필드가 정신적 편력을 선택하는 두 번째 이유는, 사회제도 속에서 길들여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ㅣ 기성세대로 편입되는 것을 거부하기 위해서다. 우선 홀든은 자신이 다니던 고등학교에서도 기성세대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속물들을 발견하고 좌절한다. (중략)
  홀든의 방랑과 탐색의 또 다른 목적은 자신의 정체성 탐색이다. (중략)사실 그가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밤거리의 방황을 통해 추구하고탐색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이다. 정체성은 물론 타자와의 만남과 연관 속에서 형성되고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한 타자와의 만남에는 언제나 진정한 교류와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문제는 홀든과 그가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 진정한 교류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래서 홀든은 늘 외롭고 고독하다. 그가 보는 성인들의 세상은 모두 허위와 가짜(phony)로 되어 있고, 그는 거기에 혐오감을 느낀다. 홀든이 자주 현기증과 구토증을 느끼는 이유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중략)
『호밀밭의 파수꾼』은 겨울인 크리스마스에 시작된다. 겨울은 모든 것이 죽어가는 계절의 종말이지만, 크리스마스는 새롭게 태어나는 재생을 상징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의 계절적 배경은 순수의 종말과 경험의 탄생을 상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순수성을 지키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비전은 사라졌는지 모르지만, 홀든은 지나간 것들을 그리워하며 회전목마를 타고 있는 어린시절 피비의 환영을 본다. 작품의 마지막에 홀든은 예전에 알고 지냈고 한대는 경멸했던 속물들까지도 보고 싶다고 말하며 그들을 포용하는 제스처를 보여준다.


홀든 콜필드를 위한 변명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한 비판과 옹호
  (생략)
  비판자들은 『호밀밭의 파수꾼』의 언어가 "거칠고 세속적이고 외설적이며, 세상을 가짜라고 비난하는 홀든이야말로 가짜"라고 비난한다. (중략) 그러나 『호밀밭의 파수꾼』의 비판자들이 화를 내는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이 소설이 기성세대의 치부를 과감히 드러내 고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그렇게 인기 있었던 이유는, 당시 전후 젊은 세대가 느꼈던 좌절과 분노를 이 소설이 정확하고도 시원하게 드러내 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의 젊은이들은 그런 '가짜' 세상으로부터 도망침으로써 현실을 개선하고 자신을 향상시키며 순수성을 보존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잇었다. 홀든 역시 끊임없이 서부로 도망치려고 하지만, 결국 이 소설의 메시지는 "우리는 도망칠 수 없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휴 맥리언 같은 사람은 『호밀밭의 파수꾼』을 "출구가 없는 보수주의적 소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부조리한 사회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

  홀든 콜필드는 단순히 성장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성장에 수반되는 고통으로 인해 고뇌하는 젊은이라고 보는 편이 보다 더 정확할 것이다. 예리한 감각과 지각력을 가진 홀든은 진정한 교류와 상호이해가 불가능하며 위선과 허위로 점철되어 있는 성인세계와 기성사회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좌절하며, 구토증을 느끼고 고뇌하는 현대인의 전형이다. 홀든이 단순히 막나가는 반항아가 아니라, 비인간저깅고 허무주의적인 세상에서 윤리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젊은이라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는 그러한 부조리한 상황을 블랙 유머로 시니컬하게 묘사해 독자들을 즐겁게 해준다.
  (중략)
  『호밀밭의 파수꾼』은 그래서 좌절과 부패로 오염되어 있는 어른 세계 속에서 유일한 보람 있는 일은 순수한 어린아이들을 붙잡아 그러한 파괴적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이 소설은 그러한 작업이 사실은 불가능하다는 것, 어린이들의 성장은 멈출 수 없으며 결국 아이들은 순수성을 상실하고 성인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을 인식하고 슬퍼하고 있다. (중략)
  홀든이 뉴욕에서 만나는 옛 애인 샐리는 홀든이 혐오감을 느끼고 도망치려는 맨해튼과 브로드웨이와 록펠러 센터로 표상되는 동부의 상징이다. 비록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에 이끌려 홀든이 혼란을 느끼고 착각을 일으켜 청혼까지 하고 같이 서부로 도망가자고 제안하지만, 샐리는 홀든이 싫어하는 거의 모든 것을 갖춘 여자다. 그러므로 같이 도망가자는 홀든의 제안을 샐리가 거절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반면, 홀든의 여동생 피비는 속물적인 샐리와는 정반대의 인물로서 순수한 어린아이의 상징이고, 따라서 기꺼이 홀든과 같이 서부로 떠나겠다고 따라나선다. (이하 생략)
Posted by Hyos :
★참고문헌★
김욱동, 『미국소설의 이해』, 조합공동체 소나무
(ISBN 9788971396063)
- p.313-323에서 맘에 드는 부분~ ⓐ글이 이탈자(?)에 관한 해설이었다면 이 책에서는 15번 전화했다는 둥 소통의 문제에서 다뤘다. 마치 누군가가 호밀밭의 파수꾼으로쓴 논문을 보는 듯했는데, 뭐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다는 거지 꼭 이렇다는건 아니니까... 곧 ⓒ에서 쓸 해설은 '순수'에 관한 건데, 나는 그게더 마음에 든다.


J. D. 샐린저: 『호밀 밭의 파수꾼』

  (앞에 많이 생략) 주인공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위선과 기만과 가식이 없는 정직하고 성실한 세계이다. 다시 말해서 주인공은 겉모습과 실제 모습 사이에 괴리가 없는 세계를 갈구 한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위선과 기만과 가식을 발견하게 되며, 그럴 때마다 적잖이 메스꺼움과 구토를 느낀다. 홀든은 어른들의 세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이러한 위선과 기만의 세계를 두고 '사이비'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이 '사이비' 세계를 끔찍이 싫어하는 그는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홀든이 메스꺼움을 느끼는 이 '사이비' 세계는 무엇보다도 개인적인 인간 관계에서 잘 나타난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겉으로는 번지르르한 말로 상대방을 속이기 일쑤이다. 예를 들어 홀든이 염증을 느끼는 표현은 '행운을 빕니다!'라든지, '만나서 반갑습니다!'라든지 하는 겉치레 인사말이다.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행운을 빌기는커녕 오히려 저주를 빌면서도, 또는 상대방을 만난 것이 전혀 반갑지 않으면서도 내용이 텅 빈 이러한 인사말을 입버릇처럼 서로 주고받는다. 예를 들어 펜시 예비학교의 역사 선생 스펜서 씨가 이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어디로 발길을 돌려야 할지 모르는 홀든에게 "행운을 빈다!"라고 말할 때 그는 적잖이 구토증을 느낀다. 우연히 어느 술집에서 만난 형 D. B.의 옛 애인 릴리언 시먼스가 그에게 "만나서 반갑구나!"라고 인사를 할 때에도, 그리고 옛날 학교의 영어 선생인 안톨로니 씨 부인이 전혀 마음에 없으면서도 어머니의 안부를 물어올 때에도 그는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는 것은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러한 겉치레 인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사실이다.
  (중략)
  인간의 위선과 기만이 가득 차 있는 이 '사이비' 세계는 인간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종교의 영역에서도 나타난다. 홀든은 장의사 사업으로 성공한 펜시 예비학교의 한 졸업생이 모교로 돌아와 후배들에게 강연하는 것을 듣고는 적잖이 메스꺼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자신의 모든 성공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리고 있지만 홀든이 보기에는 위선자 가운데서도 위선자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형식적이고 제도화된 기독교에 대한 주인공의 혐오감은 그가 호텔 침대에 누워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한 가롯 유다를 두고 퀘이커 교도인 옛 친구와 논쟁을 벌이던 일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잘 나타난다. 자신의 부모는 서로 종교가 다르며 자신은 아예 무신론자라고 드러내 놓고 밝히는 홀든은 목사가 설교할 때 본래의 목소리를 버리고 이상한 목소리로 바꾸어 회중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태도에 대해서도 적잖이 메스꺼움을 느낀다.
  홀든이 느끼는 인간의 위선과 기만은 예술의 영역에서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는 서머셋 몸과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작품,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인간의 굴레』(1915)와 『무기여 잘 있거라』(1929)를 싫어한다. 왜냐하면 이 작품들이 삶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솔직히 그리지 않고 오히려 그것은 기만하거나 왜곡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략)
그런데 위선과 기만과 가짜가 가져다주는 피치 못할 결과는 바로 인간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신뢰감의 상실과 정신적 교섭이나 교감의 실패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통하여 작가가 끊임없이 강조하는 문제는 바로 현대인이 맞부딪혀 있는 의사소통의 어려움이다. (중략)
  주인공 홀든은 학교 친구들은 물론이고 교사 그리고 심지어는 부모와도 참다운 의미의 의사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직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남동생 앨리와 여동생 피비와 어느 정도의 정신적 교섭을 맺고 있을 뿐이다. 주인공이 사회 곳곳에서 발견하고 또한 그것으로부터 크게 절망하는 의사 소통의 상실이나 부재는 전화를 걸려고 하지만 제대로 걸리지 않는다든지, 어쩌다 전화가 연결되어도 도중에 자주 끊긴다든지, 또는 메시지를 보내지만 좀처럼 수신인에게 배달되지 않는다든지 하는 상징적인 사건을 통하여 잘 드러난다. 예를 들어 누구에게 전화를 걸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끼는 홀든은 이 작품 전체를 통하여 무려 열다섯 번이나 전화를 건다. 그러나 이 가운데에서 오직 네 번밖에 성공하지 못하며, 그것마저도 대개의 경우 불발로 끝난다. 마찬가지로 그는 여러 번 입으로나 편지로 남에게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나고 만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찬찬히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그나마 의사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사람은 하나같이 나이 어린 소녀이거나 소년이라는 점이다. 어른들과는 좀처럼 의사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나이 어린 소녀나 소년과 의사 소통이 가능한 것은 그들이 아직 성인 세계의 허위나 기만에 물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어른들의 세계에서 크게 실망을 느끼는 홀든은 차라리 뉴욕 같은 대도시를 벗어나 서부 지방의 시골로 도피하기로 결심한다. '양지 바른' 곳에 조그만 오두막을 짓고 귀머거리와 벙어리로 행세하며 외부세계와 모든 교통을 차단한 채 홀로 조용히 살고 싶어한다. 그가 그토록 갈구하는 이 '양지 바른' 세계는 위선과 기만이 그리고 가식이 없는 곳, 즉 개인이 사회의 그릇된 가치관에서 벗어나 참다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곳이다. 결국 홀든은 '아름답고 평화스런' 이러한 이상향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만 그 이상향에 대한 향수를 끝내 버리지 못한다.
  (중략)샐린저의 대부분의 작중인물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얼마 되지 않는 사랑마저도 인간이 아니라 사물에 쏟는다. 물질주의가 사랑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용 가치보다는 교환 가치가, 본질적이고 내재적인 가치보다는 상품 가치가 오히려 잣대가 된다. 이것이 1950년대에 널리 퍼져 있는 미국 중산층의 가치관이었고, 홀든 코울필드는 바로 이러한 기성 세대의 가치관에 가차없는 조롱과 경멸을 보낸다.
  기성 세대에게는 누가 더 좋은 집과 직장과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성공의 척도가 된다. (중략) 자동차보다는 차라리 말을 갖고 싶다는 홀든의 절규는 물질주의 가치관으로 잃어버린 인간애에 대한 뜨거운 정열과 신뢰를 표현하는 말이다.
  (이하 생략)
Posted by Hyos :
★참고문헌★
김소희 김진경 편저,『20세기 미국소설의 이해2』, 동인 (ISBN 9788955062861)
- p.93-105 영국의 랜덤하우스의 이언 해밀턴과의 재판사건은 아예 뺐음..-ㅅ-ㅋ

1. 샐린저: 참전작가에서 은둔작가로

Jerome David Salinger, 1919-
(생략)아버지는 아들에게 의욕과 야심을 심어줘야 할 필요성을 느껴 여러 학교를 문의한 끝에 체벌과 규율이 엄한 밸리 포지 군사학교에 입학시킨다. 아버지의 기대대로 상당한 규율이 체득되어 학교를 졸업한 뒤 뉴욕대학에 입학하나 마찬가지로 학업에 대한 동기부여나 성취감이 없어 휴학한다. 그는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는 수업의 일환으로 유럽을 동행하며 낙농품 무역에 대해 견학하지만 도살장을 경험한 후 아머지의 사업을 계승하지 않겠다는 것 한가지만은 확실해져 돌아온다.
  (중략)
  스물두 살 때 이미 작가로 문단에 등단하여 유수한 저널에 작품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던 샐린저는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자 그 무엇보다도 현재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입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첫 신검에서는 건강상의 이유로 입대를 거부당했다가 미국이 이차대전에 참전하면서 군대를 재정비할 때 다시 지원하여 1942년 4월에 참전하게 되고 그 뒤 무려 5년여를 영국 프랑스 독일의 전투에 투입된다. 처음 미국 내에 머무를 때나 영국에 파견되어 복무할 때까지는 그의 편지에는 유머스런 톤이 유지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종군작가로 활약하던 유명한 작가 헤밍웨이를 만나 상당히 친밀한 관계를 지속한다. 하지만 전쟁이 계속 끌면서 연합군은 영국해협을 통해 당시 독일군에 점령된 프랑스로 이백 만의 군대를 투입하여 이차대전을 결말짓기로 한다. 1944년 6월 6일 D-Day에 샐린저도 투입되어 무려 네 달 동안 지속되는 지옥의 전투를 수행한다. D-Day전투 후 샐린저의 편지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암울한 톤과 장엄함이 지배한다. D-Day전투 후 샐린저의 편지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암울한 톤과 장엄함이 지배한다. 버넷교수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자기가 목격한 것은 끔찍해서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고 씌여 있다. 「에스메를 위하여-사랑과 비열함으로」("For Esme-with Love and Squalor")에서 X 상사가 D-Day 작전 후 정신신경이 손상된 사람으로 등장하듯 샐린저의 작품에는 전쟁이 인간정신 파괴의 결정인자로서 자주 등장한다. 샐린저가 아직도 대처해야만 하는 또 다른 참혹함이 남아 있었는데 이는 패배한 후에도 게릴라전을 계속하과 있는 독일군을 섬멸하기 위해 그가 속한 4대대가 독일의 산악지대에 공수된 것이다. 이차대전 중 가장 야만적인 전장에 투입된 샐린저는 매일 4대대에서만 6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전투를 네 달 동안 치러내었고 더욱 분노할 일은 그 군사작전은 전혀 불필요한 작전이었다는 소식이었다.
  샐린저는 전쟁 중에도 열편 이상의 단편을 계속 쓰며 잡지에 기고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작전 이전까지는 전쟁에 대해 아직도 환상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들이 등장하기도 했으나, 이 참혹한 전투 후 전쟁에 대해 그의 낭만적 환상은 무너지고 비열하고 잔인한 살상에 대한 분노와 절망이 평생 그림자로 마음에 새겨진다. 이차대전은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샐린저는 신경쇠약으로 일상생활을 지탱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독일의 군인병원에 몇 달 동안 입원한다.(중략)
1931년에 <뉴요커>New Yorker지에 발표한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은 샐린저가 이차대전에 참전하고 있던 동안부터 내내 긴 기간을 두고 씌여진 작품이다. 홀든이 기성사회와 인간들에게 품는 위선과 거짓에 대한 혐오나 심지어는 선행에 대해서까지도 의도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경향은 바로 샐린저의 참전경험의 환멸에서 나왔다. 직접적으로 자신의 일이 아니더라도 정의의 편에 참여하고 싶고 중대한 역사의 현장에 서고 싶다는 낭만적 환상을 가지고 스물세 살 청년 샐린저는 전투에 자원했다가 전쟁의 황당하고 참혹한 소용돌이에 휘말려 하나의 병기나사로 사용되고 폐기되는 경험을 한다. (중략)
  『호밀밭의 파수꾼』이 출판되자마자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몇 달째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자 샐린저는 대중의 환호를 피해 영국여행을 떠나버리고 2쇄 출판 이후부터 책표지에서 자신의 사진을 삭제하게 한다. 그는 그러한 환영에 대해 "약간만 좋았을 분이고 대체로 지나치게 열광적인 듯하고 점차 개인적으로는 부도덕한 느낌이 들었다"고 소감을 표현했다. (중략) 이 열광을 피해 34살 청년 샐린저는 동부 끝에 위치한 뉴햄프셔 주의 숲 속에 집을 마련하여 그곳에서 작품만을 쓰기로 결심한다. (중략)
  그의 괴팍스런 고집스러움은 문단에 등단하면서 부터 마지막까지 자신의 작품을 항상 <뉴요커>지에만 게제하고 완성한 소설을 잡지에 맞는 분량으로 수정하는 수고를 감내하면서까지 자신의 동의 없이는 함부로 수정하지 않는 <뉴요커>지와만 거레한데서도 보인다. 또한 잡지에 기고한 소설을 다시 책으로 출판할 때는 겉표지는 최대한 수수하게 아무런 장식이나 사진 없이 작가소개나 평론도 없이 페이퍼백으로 출판하기를 평생 고집한다. 그나마 그러한 출판도 1970년에는 거부하여 "소설을 쓰기 위하여 자신은 사는 것"이므로 계속 쓰기는 하되 "출판은 프라이버시를 심각하게 침해하므로"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뜻을 출판사에 밝혔다. (이하 생략)

-----------------------------
마지막에 붉게 표시한 부분,
호밀밭의 파수꾼 책을 찾았을때 유독 '민음사'에서 나온 책만,
그리고 민음사에서 나온 책들중에서 유독 호밀밭의 파수꾼만 앞에 그림이 없었다.
또 작품해설이 없어서 다른 출판사 책을 빌렸었는데,
민음사, 이 먼 타국에서 작가의 소원을 들어주는...... 좀 멋진데?ㅋ

암튼 야구 금메달 웬걸.ㅋㅋ
------------------------------


2. 『호밀밭의 파수꾼』: 대열이탈자의 현실비판

  이 소설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조숙한 열일곱 살 소년 홀든이 캘리포니아의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지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일어난 퇴학의 경험담을 일인칭 독백으로 서술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중략)
70년대에는 가수 존 레논을 암살한 범인이 너덜너덜해진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권총을 싸고 있었고, 80년대에는 연설을 마치고 호텔을 나서는 레이건대통령을 암살 시도한 현장에서도 범인이 이 책을 소중히 소지하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중략)
  『호밀밭의 파수꾼』이 이같이 가장 광범위하게 읽히는 책이면서 동시에 가장 금기시되는 책이 된 이유는 1950년대의 상황과 연관지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차대전으로 강력한 승전국으로 부각된 미국의 1950년대는 정치적 보수주의와 경제호황, 그리고 사회적 순응의 시대로 특징지어진다. 전쟁 후 평화와 번영을 약속한 아이젠하워 대통령 체제에서 미국인들은 현대문명의 특혜를 점차 누리면서 경제성장을 실감한다. 세계대전 후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로 이분된 세계구도가 확립되면서 공산주의자를 색출하자는 매카시즘 광풍이 한바탕 휩쓸면서 미국인들은 경제적 풍요에 대한 댓가로 획일화와 정신적 순응을 내주고 있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바로 그런 시대에 도전했던 신선하고 도발적인 작품이다. 이미 세계대전의 가장 치열한 전투에서 가까스로 살아남는 경험으로 이데올로기의 허상과 전쟁명분의 허울과 인간의 야수성을 체험한 샐린저는 침묵하고 있는 50년대 벽두에 반문화의 원조를 창조한 것이다. (중략) 학교를 떠나 뉴욕거리를 방황하는 홀든의 체제 저항적 태도는 젊은이들의 가슴에 반항의 불을 지피는 기폭제가 된다. 냉전시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으로 젊은이들의 충정과 현실동참을 무조건적으로 요구하는 시대에 반발과 분노를 느끼던 젊은이들은 홀든의 심리에 깊이 동조하며 비트운동, 히피문화라는 반체제 문화현상을 파급시킨다.
  이 책이 미국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데는 이같은 당대의 시사성뿐 아니라 미국문학 전통을 잇는 공시성에서도 기인한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서구문학의 중대한 전통인 추구의 주제를 따르기 때문이다. (중략) 이 추구의 주제가 특히 미국문학에서는 가정의 충실성이나 성공과 신분상승에의 추구처럼 기존의 안정체제로 들어가는 형태가 아니라, 그러한 기존의 틀을 깨고 자신의 자유나 자아에의 충실성을 추구하는 형태로 표출된다. 이러한 주인공들은 자아실현의 추구자이며 다른 시각으로 보면 현실낙오자나 대열이탈자의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미국문학은 자신이 믿는 어떤 순박한 깨달음이나 어떤 개인적인 충실성에 도달하기 위하여 전통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매료되는 특징을 보인다. (중략)
  학교생활에서 정해준 규정대로 따르기에는 고집과 감수성이 강한 홀든은 도시문명과 성인의 세계를 바라볼 때 순응하는 태도가 아닌 의문과 비판이 반사적으로 터져 나온다. 그는 자기 주변의 선배들이 다니는 아이비리그생들의 획일화되고 자만하는 모습을 비판하며 자신은 정해진 목표를 무비판적으로 따르지 않고 거리를 두고 본다. 자신의 아버지같은 변호사는 일한 댓가로 부와 풍족함을 누리는 직업인데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일하는지 아니면 재판에 승소하여 축하받고 명예를 누리는 것이 좋아서 일하는지" 그 의도가 중요하다는 매우 엄정한 기준을 제시한다. 자선활동을 하는 사람이 화려한 외모로 치장하고 할 때 그 본심을 의심하게 되듯이 설령 좋은 일을 하더라도 명성이나 칭송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순수함과 선량한 의도로 해야 한다는 건설적인 비판을 한다. (중략)
소설 중반을 넘어서면서 그의 피로가 누적되고 외로움이 가중되며 뭔가 공포스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더해가면서부터는 "예수의 제자는 짜증난다"라든가 알지도 못한 손님을 위선자라고 부르는 등 일관성 없는 화풀이성 비판경향을 보인다. 계속해서 몇 학교에서 낙제당하고 문제아로 지목된 자신에 대한 원망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으로 자살충동을 강하게 느끼는 시절의 경험인 만큼 어떤 비판은 정당하지 않고 지나쳐서 병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중략) 공간적 이동이 더 이상 해결방식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순전히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겠다고 말하는 데에서는 홀든의 패배주의적 성향이 절정에 이른다. 이처럼 대오이탈자의 두려움을 체험하고 있는 홀든이기에 호밀밭에 서서 아이들이 놀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지키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는 그의 말은 진심으로 받아들여진다.
  (중략) 이것은 현실의 끈을 놓아버리고 자살해 버릴 것 같은 자신의 절절한 경험에 비추어 어린이들이 추락하거나 타락하는 것을 어떻게든 막고 싶어하는 본능적인 꿈이다. 하지만 순진한 동생 포비의 애정에 힘을 얻어 현실을 대면할 용기를 얻게 되면서는 추락에 대한 강박관념이 사라진다. (중략) 추락에 대한 강박적인 두려움이 차츰 완화되고 오히려 실패의 경험까지도 중요하다는 경험의 의미를 깨닫고 외면적으로는 잃어도 내면적으로는 얻는 것의 비중을 측정할 줄 알게 된 것이다.
  (중략) 홀든은 한길로 매진하는 사회의 모습을 거리를 두고 보면서 상당부분 정당한 비판을 하고 대열이탈자로서의 극심한 긴장과 절망을 솔직하게 토로하며 사회인습의 나쁜 면이 자신에게도 존재하고 있음이 과정 중 저절로 드러나게 하는 아이러닉한 태도를 견지한다. 샐린저는 현대문명의 상당 부분이 허위의 가치 위에 기초해 있다는 사실을 도식적인 사회분석이나 개인의 자기변호 방식에 기대지 않고 한 소년의 성장기중 어떤 위기의 와중에 겪은 경험을 매개로 하여 그려내는데 성공한다.
 
Posted by Hyos :

★참고문헌★
이주영, 『세계 각국사 시리즈 미국사』, 대한교과서 주식회사 (ISBN 89-378-3080-9, ISBN 89-378-3060-4(세트))
이주영 외 4명, 『미국 현대사 - 진주만 기습에서 클링턴 정부까지』, 비봉출판사 (ISBN 89-376-0182-6)
유종선, 『주머니 속의 미국사 - 신대륙발견에서 9·11테러까지』, 가람기획 (ISBN 978-89-8435-167-7)
앨런 브링클리,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 3』, 휴머니스트 (ISBN 978-89-5862-081-0, ISBN 978-89-5862-032-7(세트))
 - 세계 각국사 시리즈 미국사 p.262~273 적색, 미국 현대사 p.13~20 녹색, 주머니 속의 미국사 p.220~227 청색,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3 p.60~97 자색으로 표시하고 생략과 중략표시는 하지 않았다.


1920년대 번영기와 유산
  1920년에 대공황이 일어나기 전까지 미국은 근본적으로 자유방임주의 이론에 토대를 둔 자유기업(free enterprise) 체제의 나라였다.
  1920년대의 미국은 지상에 최초로 나타난 진정한 소비 사회(consumer society)였다. 그것은 부자들뿐만 아니라 평민들까지도 단순한 필요를 넘어 쾌락을 목적으로 물건을 살 수 있게 된 사회였다. 웬만한 중산계급 가정이면 냉장고, 세탁기, 진공청소기를 보유하였다. 새로운 소비지상주의(consumerism)는 자동차의 보급에서 가장 잘 나타났다.
  이처럼 미국 사회를 번영시킨 데 대한 공로(功勞)는 기업가들과 기술자들의 천재성으로 돌아갔다. 그러므로 1920년대는 기업가와 기술자들에 대한 존경심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였다.

기술, 조직, 경제적 성장
  경제적 호황은 많은 요인들이 종합적으로 이루어낸 결과였으나,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기술력이었다. 일관 작업 라인(assembly line)과 그 외 기술이 발전한 결과, 자동차 산업은 이제 미국의 가장 중요한 산업 중 하나가 되었다. 자동차 산업이 발달하자 다른 관련 산업도 활기를 띠게 되었다. 자동차 제조업자들은 철, 고무, 유리 제품과 공구 회사를 사들였다. 자동차 소유자는 정유 회사에서 가솔린을 구매했고, 도로 건설이 중요한 산업이 되었다. 자동차로 인해 이동성이 증가하자 교외 주택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고, 이에 따라 건설업이 번성했다.
  기술 혁신의 혜택을 입은 또다른 산업들도 경제 성장에 기여했다. 라디오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초기 라디오는 펄스(pulses)를 통해서만 방송할 수 있었다. 모스 부호(Morse code)를 써야만 라디오 방송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캐나다의 과학자 레지널 페선든(Reginal Fessenden)이 최초로 변조(modulation) 이론을 발견함으로써 음성과 음악을 전파를 통해 전송할 수 있게 되었다. 1925년까지 미국 가정에 200만대의 라디오 세트가 보급되었고, 1920년대 말까지 거의 모든 가정이 라디오 세트 하나씩은 다 보유하게 되었다.
  비행기가 우편물을 배달하는 데 이용되면서, 1920년대에 상업 비행은 서서히 발전했다. 기차는 디젤-전기 엔진의 개발로 더욱 빨라지고 효율적이 되었다. 전자, 가전, 플라스틱, 나일론과 같은 인조 섬유, 알루미늄, 마그네슘, 석유, 전기, 그리고 다른 산업들이 기술의 진전에 힘입어 급속하게 성장했다. 전화도 계속 급격히 늘어갔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미래의 산업을 혁신시킬 싹이 보였다. 영국과 미국, 양국에서 과학자와 공학자들을 원시적인 계산기를 좀더 복잡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구로 변환시키려는 연구를 계속했다. 1930년대 초, 베너바 부시(Vannervar Bush)가 이끌던 MIT의 연구자들은 다양한 복합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구, 즉 최초의 아날로그 컴퓨터를 발명했다.

소비주의와 대중매체
  1920년대의 미국은 소비 사회였다.
  광고 산업계는 소비주의의 등장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광고 산업이 수비주의를 창조하는 데 큰 역할한 것일 수도 있다.) 1920년대에 들어와 광고의 시대가 도래했는데, 이는 전시(戰時) 선전술의 발달에 힘입은 면이 있다. 광고업자들은 단순히 정보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을 특정 생활 양식과 동일화하려 했다. 이들은 또한 대중이 광고와 세일즈맨의 가치를 알고, 효과적인 광고와 광고인을 높이 평가하도록 부추겼다. 1920년대에 가장 성공한 책 중 하나는 광고 회사의 간부 브루스 바튼(Bruce Barton)이 지은 『아무도 모르는 사람(The Man Nobody Knou's)』이었다. 이 책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종교적 선지자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세일즈맨(super salesman)'이라고 그리고 있다. 바튼의 메시지는 새로운 소비 문화 정신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예수는 현세에서 완전하고도 보상받는 삶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며, 20세기 인들은 예수처럼 현세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광고 산업은 다수의 청중에게 빠르고도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대중 매체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없었을 것이다. 신문은 전국적 유통망을 통해 보급되었고, 잡지는 대량 유통되어 전국의 독자를 매혹시켰다. 영화는 좀더 대중적이며 강력한 대중 정보 전달의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대중 매체는 라디오였다.

심리학과 정신 의학
  1920년대에 점점 풍요해지고 소비주의가 성장하면서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새로운 위기를 느끼게 되었다. 소비 시대의 특징적 병증으로서 '불안'과 '소외'가 생겼고, 이와 동시에 심리학과 정신 의학에서 신이론이 등장했다. '불안'과 '소외' 두 가지 현상 공히 의학과 과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새로이 등장한 신이론은 강화시키고 확산시켰다.
  20세기 초 이래, 미국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Siegmund Freud)와 칼 융(Carl Jung)의 이론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데 일부 힘입어 정신 의학이 확산되고 있었다. 프로이트와 융은 여러 면에서 매우 이질적이었으나, 이들은 정신적 문제의 뿌리를 찾아 내는 한 방법으로 무의식의 탐구가 합리적인 것이 되도록 지원했다. 프로이트가 개척하고 융이 발전시킨 정신 분석은 1912년 초 미국의 동조자들을 매혹시켰고, 1920년대에 널리 보급되었다.

전후의 번영
  이 시기에는 경제발전과 더불어 기업운영과 체제에 있어서도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 주식시장을 통한 주식의 분산, 소유와 경영의 분리 현상이 보편화되었다. 사주나 대주주가 아닌 전문경영인들이 실질적으로 기업을 이끌었고, 주식 배당금을 늘려 받기를 원하는 주주들과 배당금을 신규투자로 돌리려는 경영자들 사이에서 회사경영을 둘러싼 마찰이 심심찮게 일어났다.
  그러나 경제성장이 모든 면에서 좋은 결과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빈부격차의 심화였다. 1920년대 절정을 이룬 자유시장경쟁의 경제성장의 과실이 기업가와 일부 부유층에 주로 돌아가도록 함으로써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낳았다. 연수입이 최저생계비인 1,500달러에 미치지 못하는 가구 수가 전체의 40퍼센트나 되었다. 반면 소득면에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던 가구는 전체의 30퍼센트 정도에 불과했다.
  부품 표준화와 공장 자동화, 분업에 의한 조립라인의 일련 공정화 등으로 기업가들은 물건을 보다 싼 값에 대규모로 생산할 수 있었지만, 노동자들은 단순작업을 되풀이하는 '기계'로 전락했고 그나마도 기계에 밀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모든 분야에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거대기업이 들어서면서 소규모 자영업자들도 파산을 면할 도리가 없었다. 1920년대 말에 이르러 산업성장의 그늘진 구석에는 구조를 갈망하는 거대한 실업자군이 늘어갔다.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실업자들이 늘어나면서 당연히 사회적 구매력은 급속히 저하되었다. 대량생산으로 상점마다 물건이 넘쳐나는데 구경꾼들은 이를 살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마르크스가 예언한 것처럼 과잉생산과 유효수요 부족이라는 자본주의의 병폐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경제성장과 풍요의 환상에 젖어 있을 때 미국의 경제는 조용히 파국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개인주의와 번영의 약속
  1920년대의 기업 문명의 공식 철학은 자유방임주의, 즉 개인들 사이의 자유로운 경쟁의 원리였고, 바로 그 원리 위에 미국적인 체제(American System)가 놓여 있었다. 미국적 체제는 오랫동안 미국인의 국민적 특성이었던 개인주의 철학이 구현된 상태였다.
  그러므로 1920년대초에 공화당 행정부를 이끌었던 워렌 하딩(Warren Harding) 대통령은, "모든 인간의 문제가 법(法) 제정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전세계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창의력, 근면성, 도덕성을 가지고 있으면 재부(財富)와 명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개인주의자들의 근본생각이었다.
  이와 같은 자수성가인(self-made man)의 이상은 미국 역사에서 항상 존재해 왔다. 그리고 그러한 신화는 1920년대에도 상당한 현실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거은 세 명의 시대적 영웅을 통해 사실임이 입증되었다.
  첫번째 영웅은 전등과 수많은 가전 제품들을 발명한 토마스 에디슨(Thomas Edison)이었다. 두번째 영웅은 자동차 왕이며 이동조립 공정의 창시자인 헨리 포드(Henry Ford)였다. 그리고 세번째 영웅은 작은 비행기로 대서양을 단독 비행한 모험가 찰스 린드버그(Charles A. Lindbergh)였다.
  그들은 모두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자수성가인이었다. 그러면서도 현대적인 기술을 체득한 선각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각 개긴으로 하여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가고 싶은 대로 두라"는 자유방임주의의 신봉자들이었다.

공화당과 자유방임주의
  이러한 국민 철학을 정치적으로 표현한 정당이 공화당이었다. 그러므로 번영의 1920년대를 전후한 12년 동안 공화당이 집권했던 사실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공화당 행정부의 자유방임주의는 주로 빈민에 대한 정부 지원을 없애기 위해 정부 예산의 삭감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것은 노동자나 농민과 같은 불만 세력을 억제함으로써 기업가의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하는 친기업(親企業)정책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재무 장관 앤드루 멜론(Andrew Mellon)은 부자에게 부과된 개인소득세와 상속세를 줄여 줌으로써 기업의 이윤을 크게 해주었다.
  대법원장 윌리암 태프트(William Howard Taft)가 이끄는 법원도 연방 정부의 친기업적 성향을 더욱더 강화해 주었다. 그리하여 대법원은 소년 노동을 규제하고 여성에게 최저 임금을 보장하려는 진보적인 법을 무효화시킴으로써 기업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제거하려고 하였다.

노동운동에 대한 적대감
  자유방임주의는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으로 나타났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1919년의 대파업이 공산주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 기업가들은 노조 운동이 근본적으로 미국의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음모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노동운동은 그 자체가 비미국적(un-American)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미국적 체제를 유지하는 방법은 노동자의 노동조합 강제 가입이 허용되지 않은 개방 공장(open shop)제도의 확대뿐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때문에 전국제조업자협회는 개방공장제도를 가리켜 "미국적 계획"(American Plan)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에 대한 복지는 고용주들의 자발적인 협력으로 이루어져야만 했다. 실제로 1920년대에 기업가들은 국가를 대신해서 노동자들을 달래기 위한 복지 혜택을 마련하였다. 그것은 당근과 채찍(carrot and stick)의 방법에서 당근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와 같은 후견주의적인 방법은 복지자본주의(welfare capitalism)라고 불리었다.
  따라서 헨리 포드와 같은 대담한 기업가들은 고용인의 작업 시간을 파격적으로 줄이고 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한편, 유급 휴가 제도를 도입하였다.
  따라서 복지자본주의는 근로자들로 하여금 기성체제를 받아 들이게 하는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지식인과 대중의 간격
  기업적 가치관이 지배하게 됨에 따라, 1920년대의 미국 사회는 그것에 적응하려는 순응(conformity)의 정신이 우세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에 대해 지식인들은 반발하였다. 그 때문에 지식인들은 기업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는 대중과 멀어지게 되었다. 지식인들은 H.L 멘켄처럼 근검, 절약, 성공을 강조하는 청교도적인 가치관을 따르는 대중을 경멸하였다. 그리고 대중에 토대를 두고 있는 민주주의 제도를 조롱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지식인들이 기성 체제를 바꿀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기존의 사회로부터 스스로 격리되고 소외되었다. 그들은 갈길을 모르는 '방황하는 세대(Lost Generation)'가 되었다.
  그리하여 지식인들은 물질주의, 소비주의, 청교주의가 지배하는 답답한 사회 분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뉴욕시의 그리니치빌리치 같은 곳으로 도피하였다. 그리고 멀리 대서양 건너편의 유럽으로 도피하여 중세적인 분위기에서 안도감을 찾으려고 하였다.
  이러한 지식인들은 대부분 문인이었으므로, 소설을 통해 미국의 기업 문명을 비판하였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라는 소설에서 지식인들에게 환멸을 가져다 준 사회 모습을 그리고,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는 지식인들의 환멸과 냉소주의의 뿌리가 제1차 세계 대전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시어도어 드라이저는 『아메리카의 비극』에서 성공 만능주의 때문에 한 청년이 당하고 있는 혼란을 고발하였다. 싱클레어 루이스는 『메인 스트리트』에서 우둔함이 판치는 도시 생활을 조롱하고, 『배빗』에서는 기업가들이 획일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인 것을 조롱하였다.
  F. 스콧 피츠제럴드는 『낙원의 이쪽』과 『위대한 개츠비』에서 미국의 상류 계급이 얼마나 속물적인지를 보여주었다. 존 도스 페이소스는 『세 병사』에서 자본주의 자체를 공격하였다.

공화당과 청교도적 가치관
  미국의 자유방임적 체제를 지지한 사람들은 단순히 부유한 기업가들과 보수적인 공화당 정치가들만이 아니었다. 지지자들 가운데 문화적인 전통주의자(cultural traditionalist)로 불리는 농촌지역의 백인 중산계급들도 있었다. 그들은 대체로 프로테스탄트 교도로서 개인주의 정신과 칼빈주의 신앙(Calvinism)의 가치관을 숭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러한 전통적인 중산계급의 가치가 외국으로부터 들어 온 이질적(異質的)인 요소들에 의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고 두려워하였다. 그러한 위험한 요소는 그릇된 사고방식을 가진 카톨릭교도, 유대인, 흑인, 공산주의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외래적(外來的)인 요소는 도시에서 우세했기 때문에 특히 그들은 도시가 농촌지역의 전통적인 프로테스탄티즘의 도덕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분개하였다. 따라서 문화적 갈등은 농촌과 도시의 대립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들 백인 중산계급의 분노는 1920년에 술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하는 금주법(Prohibition)을 시행하도록 하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음주는 매음, 조직범죄와 같은 전반적인 사회적 타락의 원인이었다. 그들은 미국의 도시들이 외국에서 새로운 들어 온 이방인들로 들끓고 있는 데 대해 불안감을 느꼈다. 외국의 낯선 언어, 낯선 복장, 낯선 습관, 낯선 종교 행사를 보면서, 그들은 미국이 외국인들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음을 느꼈다.
  특히 그들은 이탈리아를 비롯한 남(南)유럽의 카톨릭 국가들에서 쏟아져 들어 오는 수준 낮은 이민들과 그들의 알콜 문화에 대해 경계하였다. 그리고 독특한 문화를 고수하는 유대인들에 대해 증오심을 느꼈다. 그러므로 금주(禁酒) 운동은 단순한 음주 문제를 초월하여 변화하고 있는 미국 사회 안에서 옛날의 미국을 지키려는 노력을 의미하였다.

금주법
  1920년 1월에 주류 판매와 제조를 금지하는 법안이 발표되자, 중간 계급과 혁신주의자로 자처하던 이들의 대다수는 이를 지지했다. 그러나 1년도 못 되어, 금주론자들이 지칭했던 '고상한 실험(noble experiment)'이 잘 되지 않고 있음이 명백해졌다. 금주법이 시행되자 미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음주가 상당히 줄어들긴 했으나, 그와 함께 위법 사태도 속출했다. 오래지 않아, 과거에 합법적으로 주류를 구매했던 것처럼, 미국의 많은 곳에서 불법 주류를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합법적 기업가들이 거대하고 이윤이 많은 주류 사업을 할 수 없게 되자, 범죄 조직들이 그 사업을 인수했다.
  처음에 금주를 지지했던 많은 중간 계급의 혁신주의자들은 곧 이 실험에 시들해졌다. 그러나 지방의 농촌 지역에 주로 거주하는 개신교도 미국인인 많은 유권자들은 금주를 열성적으로 지지했다. 그들에게 있어 금주는 미국의 전통적 도덕관과 윤리를 수호하려는 노력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음주는 현대 도시와 가톨릭 교도 이민자들과 결부되어져, 전통적 미국을 대치하려고 한다고 그들이 생각한 새로운 문화의 상징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금주 반대자(또는 '음주자')는 서서히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1933년, 대공황이 일어나 금주 반대자의 주장이 힘을 얻게 되자, 마침내 '금주론자(drys)'를 효과적으로 공격하고, 헌법 수정 조항 18조를 폐지할 수도 있었다.

공화당과 토착주의
  이러한 토착주의(nativism)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났는 데, 가장 두드러졌던 것이 "큐클럭스클랜"(Ku Klux Klan)조직이었다. 그들은 미국적 생활속에서 외래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려고 하였다.
  외래적인 요소에 대한 두려움은 종교적인 극단주의의 형태를 띄기도 하였다.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은 지방적, 농촌적인 사람들로서 도시인들과 지식인들이 과학화와 현대화의 이름으로 미국의 전통적인 신념들을 말살하는 데 대해 분개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창세기>의 천지 창조 내용을 부정하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반대하고, 그 대신 성경이 문자 그대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근본주의(fundamentalism)의 신앙을 내세웠다.
  따라서 문화적 전통주의자들은 정치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하고 민주당에 반대하였다. 그들은 도시의 노동자, 카톨릭, 이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민주당은 비미국적(非美國的)인 정당으로 불신하였다.

'악의 꽃'- 대공황
  국내적으로 1922년부터 신흥공업과 새로운 생산기술의 급격한 발달이 이루어졌고, 산업 전반에 걸친 기계화, 기업조직의 거대화, 새로운 기업경영 방식의 도입, 그리고 신용제도의 정비로 미국 자본주의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1927년에 이르러 미국 경제는 사상 최대의 호황을 맞는다.
  하지만 이러한 번영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는 구조적으로 심각한 문제점들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장 심각한 것이 계층간 소득의 불균등 분배였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일부 계층에만 국한되어 국민의 5퍼센트에 해당하는 상류 부유층이 소득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대다수 국민의 구매력은 별로 늘어나지 않았고, 이에 따라 공장 창고들에는 소비되지 못한 물건들이 쌓여갔다.
  1920년대의 번영으로 전체 소득도 늘어나고 저축도 증가했으나 성장이 정체되면서 돈을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고 점차 증권 등 투기시장으로 몰려들었다. 물론 증권을 사는 것 자체가 투기라고 볼 수 없지만 문제는 증권시장을 통해 기업으로 흘러들어간 엄청난 규모의 자금이 투자로 전환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한편 여유자금이 과도하게 증권시장으로 몰려들면서 주가가 기업체의 실질가치 이상으로 올라가는 이른바 주식시장의 거품현상이 나타났다. 주가가 계속해서 상승하면서 더 많은 돈이 증권시장으로 몰리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결국 1929년 들어 주가폭락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나 증권투자의 열기는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러한 우려는 드디어 1929년 10월,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주가가 폭락하는 '파탄(The Crash)'으로 이러졌다. 주가의 폭락으로 기업들은 엄청난 자산손실을 입었고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해 파산하는 기업들이 속출했다. 기업들의 연쇄파탄으로 경제 전체가 붕괴하는 대공황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주식시장의 파탄이 대공황의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주식시장의 파탄은 대공황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에 불과할 뿐, 공황의 직접적 원인은 그 동안 경제성장의 모순이 누적되어온 데 있었다. 소비가 따라가지 못할 만큼 늘어난 과잉생산, 또는 생산을 따라갈 만한 유효수요의 부족이 대공황의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이유였다.

결론
  1920년대의 괄목할 만한 번영은 활기 넘치던 당대인들이 '새로운 시대'라 칭하던 것의 많은 부분을 만들어 냈다. 1차 세계 대전 이후에 미국은 활력 있는 전국적 문화를 만들어 냈다. 중간 계급은 성장하는 소비 문화에 젖어 갔다. 정치는 호황을 이루던 상호 의존적 산업 경제의 필요에 부응하여 재조직되었으며, 전(前) 세대의 개혁을 위한 많은 시도들을 거부했고, 새로운 기구들을 창설하여 경제 성장과 안정을 증진하는 데 지원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의 화려한 겉모습 이면에는 상당한 논란과 불평등이 있었다. 미국 산업사에 있어 1920년대의 번영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널리 확산되었지만, 인구의 절반 이상이 성장의 진정한 혜택을 조금도 맛볼 수 없었다. 수백만의 도시 중간 계급은 새롭고 낙관적이며 세속적인 문화에 매혹되었다. 그러나 다른 많은 미국인들은 새로운 문화에 경악했으며, 대단한 열정으로 그에 맞서 싸웠다. 이 시대의 매력 없는 보수적 성향의 대통령들은 안정의 시대를 제시했으나, 실제로는 현대 미국의 역사에서 1920년대만큼 정치, 문화적 갈등이 많았던 시기도 없었다.
  1920년대는 파멸적인 붕괴로 막을 내렸고, 그 후 경제 붕괴는 이 시대의 대한 이미지를 고착시켰다. 1930년대의 위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에 이루어낸 경제적 성과를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1920년대의 번영에만 주목하여, 그 이후 고통을 시대를 산출하는 데 일조한 이 시대의 불평등과 불안정을 간과해서도 안 될 것이다.

Posted by Hyos :
★참고문헌★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김욱동 옮김, 민음사
(ISBN 978-89-374-6075-3, ISBN 978-89-374-6000-5(세트))
-p.257-277  대충 시대적, 지리적, 보편적, 국가적(종교적), 형식적 특징에 대해 순서대로 나열되어있는 듯 하다. 파란색 굵은 글씨로 어림잡아 구분해 놓았다. 컹=ㅅ=


작품해설

  (앞부분 생략) 1920년, 그러니까 겨우 스물세 살의 젊은 나이로 문명(文名)을 떨치던 무렵 그는 "모든 작가는 자기 세대의 젊은이들, 다음 세대의 비평가들, 그리고 그 뒤의 영원한 미래 세대의 교육자들을 위하여 작품을 써야 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일반 독자에서 비평가를 거쳐 교육자에 이르기까지 그가 예상했던 독자의 폭이 꽤 넓다는 데 새삼 놀라게 된다.
  (중략) 포크너와 헤밍웨이와 더불어 그는 20세기 미국 소설의 삼총사로서 좁게는 현대 미국 소설, 넓게는 미국 문학, 그리고 더 넓게는 세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그 위치를 굳혔던 것이다.
  (중략)

  피츠 제럴드의 작품이 으레 그렇듯이 『위대한 개츠비』에도 작가가 살아온 고단한 삶의 궤적이 깊이 새겨져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작품은 작가의 정신적 편력을 기록해 놓은 자서전이나 전기로도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작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사랑과 젊음, 재산과 그것이 가져다주는 안일과 여유는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중요한 주제이다. 작가는 짧다면 짧은 생애 동안 물질적 성공을 이룩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작가의 이러한 태도는 주인공 제이 개츠비를 통하여 그대로 나타난다. 작가와 개츠비는 물질적 성공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만큼 그들이 느끼는 실망과 좌절도 무척 컸다. 그리고 개츠비가 가지고 있던 무한한 꿈과 이상의 상징이라고 할 데이지 뷰캐넌은 여러모로 작가의 아내 젤더 세이어와 비슷하다. 결국 개츠비와 피츠제럴드에게 데이지와 젤더는 하늘에 걸린 무지개처럼 한낱 이룰 수 없는 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피츠제럴드는 작품의 주제가 지나치게 남녀의 애정과 물질적 성공에 국한되어 있다는 비판을 자주 받았다. (중략) 소설가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소재를 다루느냐가 아니라 그 소재를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삶에서 가장 깊은 관심을 기울여온 소재를 택하여 그것을 설득력 있게 소설 작품으로 형상화하였던 것이다.
  한편 『위대한 개츠비』는 시대 의상처럼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미국의 사회상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중략) 피츠제럴드만큼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의 삶을 실감나게 표현한 작가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 무렵에 활약한 어느 작가보다도 그는 미국 사회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그를 두고 흔히 '재즈 시대의 왕자'라고 일컫는 것도 그렇게 무리는 아닌 듯하다. 재즈 시대란 바로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세계대전을 겪은 뒤 서구 문명 자체에 깊은 회의를 보이면서 재즈에 심취하던 미국의 1920년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재즈 시대와 관련하여 피츠제럴드는 어느 작품에서 "그것은 기적의 시대였고, 예술의 시대였고, 과도의 시대였으며, 풍자의 시대였다."고 밝힌 적이 있다.
  1910년대 미국의 삶을 이해하려면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시스터 캐리』(1900)를 읽어야 하고 1930년대 미국의 삶을 이해하려면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1939)를 읽어야 하듯이, 1920년대 미국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야 한다. 재즈와 찰스턴 춤과 자동차가 상징하는 1920년대 미국의 사회 현실이 이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은 유럽과는 달리 경제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특히 상류 계층에게는 재산을 늘릴 수 있는 최적의 시대였다. 이 무렵에 나온 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1922년부터 1929년 사이에 주식의 수익 증가율은 무려 108퍼센트에 달하였다. 기업은 이익이 76퍼센트 증가하였으며 개인의 수입도 33퍼센트나 늘어났다. 이 소설의 화자인 닉 캐러웨이가 증권업에 종사하기 위하여 뉴욕에 온 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경제적 붐은 마침내 1929년에 월스트리트의 증권 시장이 몰락하면서 경제 대공황을 가져오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 성장의 그늘에는 도덕적 타락과 부패가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었다. 톰 뷰캐넌과 개츠비가 타고 다니는 번쩍거리는 고급 승용차, 개츠비가 주말마다 벌이는 사치스러운 파티와 마치 '불빛을 쫓는 부나비처럼' 환락과 쾌락을 찾아 헤매는 젊은이들, 톰과 데이지가 보여주는 도덕적 혼란과 무질서와 무책임은 바로 전쟁이 끝난 뒤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방황하던 이 무렵의 시대적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피츠제럴드의 한 단편 소설의 제목을 그대로 이 무렵의 미국은 말하자면 '현대판 바빌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톰의 저택이나 개츠비의 파티처럼 겉으로는 우아하고 고상하며 화려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놓고 보면 탐욕과 이기와 정신적 공허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도덕적 타락은 닉 캐러웨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인물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도덕적 타락과 부패 그리고 무책임성은 톰 뷰캐넌과 데이지를 비롯하여 개츠비의 친구요 후견인인 마이어 울프심, 데이지의 친구이자 프로 골프 선수인 조던 베이커에게서도 잘 드러난다. 톰과 데이지는 여러모로 도덕적 마비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울프심은 1919년 월드 시리즈를 조작할 만큼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조직 폭력계의 거물이다. 닉과 잠시 사귀는 조던은 골프 시합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경기를 하는 등 닉의 말대로 "구제할 수 없을 만큼 부정직한" 인물로 밝혀진다. 작품의 첫머리에서 닉이 이 세계가 제복을 입고 '도덕적인 차렷' 자세를 하고 있기를 바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미국 역사를 통틀어 이 무렵만큼 도덕적 재무장이 절실히 요구되던 때도 일찍이 없었던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에서는 시간적 배경 못지않게 공간적 배경도 자못 큰 의미를 지닌다. 이 작품은 뉴욕 시 근교의 롱아일랜드 마을을 지리적 배경으로 삼는다. 웨스트에그와 이스트에그는 피츠제럴드가 한때 살았던 그레이트넥과 그 근처 맷해싯넥을 모델로 삼은 곳이다. 그런데 달걀 모양을 하고 있는 이 두 지역은 단순히 지리적 배경에 그치지 않고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을 잘 보여준다. 대서양 쪼으로 좀 더 멀리 자리 잡고 있는 이스트에그는 톰과 같이 재산을 세습받은 부유한 귀족들이 살고 있는 곳인 반면, 뉴욕 시 쪽에 좀 더 가까운 웨스트에그는 개츠비처럼 갑자기 떼돈을 번 신흥 부자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조지 왕조 시대의 식민지풍으로 지은 톰의 저택과 노르망디 시청을 본떠 지은 개츠비의 저택은 집주인의 사회적 신분과 가치관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스트에그와 웨스트에그의 대조는 더 나아가 미국 동부지역과 중서부 지역의 차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동부와 중서부의 대조는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뉴욕을 중심으로 한 동부 사람들은 흔히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퇴폐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동부 사람들은 물질적 부(富)와 세련미와 교양을 갖추고 있지만 도덕적, 윤리적으로는 거의 무정부 상태에 있으며 부주의하고 무책임한 행동 양식을 보인다. 한편 닉 캐러웨이가 대변하는 중서부 지방 사람들은 비록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는 못할망정 아직 타락하지 않은 도덕적 순수성과 청교도주의의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 또한 닉의 집안 식구들에게서도 볼 수 있듯이 가족 간의 유대나 결속이 아직도 끈끈하게 남아 있다. 동부의 물질적 가치관과 중서부의 정신적 가치관은 어쩔 수 없이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으며, 제이 개츠비의 파멸은 바로 이러한 충돌이 빚어낸 결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소설의 화자는 "이제 나는 그것이 결국 서부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톰과 개츠비, 데이지와 조던과 나는 모두 서부 사람이어쏙, 어쩌면 우리는 동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결함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화자의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문제가 없지 않다. 물론 작가가 동부와 중서부의 지리적 차이에서 어떤 가치관의 차이를 찾아내려고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 지역을 일대일의 관계로 상응시키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개츠비의 파티에 참석하는 손님들을 빼놓고 나면 실제로 동부 출신이라고 할 인물은 이 작품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톰과 닉은 몰라도 데이지와 조던은 중서부 출신이 아니라 남부 출신이다. 톰은 비록 중서부 출신이지만 동부의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러한 사정은 남부 출신인 데이지와 조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작중 인물의 분포로 보면 동부와 중서부에 남부 출신까지 합세하여 가희 미국 전역을 아우르고 있다.
  『위대한 개츠비』가 특정한 역사적 인간과 지리적 공간에 국한된 문제만을 다루고 있다면 해묵은 달력처럼 지금은 빛바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중략) 이 소설은 시대적 분위기를 성공적으로 표현해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삶의 보편적 진리를 형상화 하는 데에도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중략)
  (중략) 또한 비교적 '단순한' 스토리로 되어 있으면서도 수채화 한 점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고 애틋한 느낌을 준다. 그런가 하면 일인칭 화자를 등장시켜 플롯을 그의 말대로 '정교하게 도안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위대한 개츠비』는 그 제목이 말해 주듯이 제이 개츠비라는 한 젊은이의 낭만적인 삶을 다룬다. 가난한 중서부 출신인 그는 켄터키 주 캠프 테일러에서 장교로 근무하던 중 미모의 여성 데이지 페이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미국이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그는 유럽 전선으로 떠나고 데이지는 연인을 떠나보낸 슬픔도 잠시, 곧 시카고 출신의 돈 많은 톰 뷰캐넌과 결혼한다. 그로부터 오년 뒤 전쟁이 끝나 귀국한 개츠비는 데이지가 이미 남의 아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첫사랑을 다시 찾기 위하여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많은 재산을 모은다. 여성 편력이 많은 톰에게는 머틀 윌슨이라는 정부가 있었고 데이지는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물질적 풍요와 안락함 때문에 톰의 곁을 떠나지 못한다. 머틀(Ms.윌슨)은 데이지가 운전하는 자동차에 치여 사망하고 아내의 외도를 알아차린 윌슨(Mr.윌슨)은 아내를 죽인 사람을 찾아 나선다. 머틀을 죽게 한 것이 개츠비라고 착각하고 있는 톰은 윌슨(Mr.윌슨)에게 개츠비의 집을 가르쳐줌으로써 연적(戀敵)을 제거할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기회로 삼는다.
  이 작품에서 피츠제럴드는 무엇보다도 환상과 이상의 중요성을 가장 핵심적인 주제로 다룬다. 개츠비의 삶을 통하여 작가는 이상이나 환상을 지니는 데 바로 삶의 비결이 있으며 오직 이러한 이상이나 환상만이 부조리하고 무의미한 삶에 의미와 질서를 부여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개츠비에게 부조리한 세계에서 삶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오직 이상과 환상뿐이다. 그런데 그 이상과 환상은 데이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작품 첫 부분에서 닉은 개츠비가 조그만 만(灣) 건너편 데이지네 선착장에 켜져 있는 초록색 불빛을 응시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개츠비에게 이 초록색 불빛은 그의 삶에 의미와 질서를 부여해 주는 낭만적 환상이요 이상이다. 그는 질퍽하고 누추한 대지보다는 천상의 아름다운 별을 좇는 인물이다. 닉이 처음 개츠비를 보았을 때 개츠비는 잔디밭에서 서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있다. 개츠비는 "두 손을 호주머니에 찌른 채 서서 은빛 후춧가루를 뿌려 놓은 듯한 별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개츠비의 꿈과 환상은 지나간 시간을 다시 돌려놓으려고 하는 데에서 잘 드러난다. (중략) 데이지가 톰과 함께 개츠비의 파티에 참석한 날 밤 개츠비는 닉에게 시계 바퀴를 오 년 전의 과거로 다시 돌려놓을 것이라고 밝힌다.

  "나 같으면 그녀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는 않을 겁니다." 내가 불쑥 말했다. "과거는 반복할 수 없지 않습니까."
  "과거를 반복할 수 없다고요?" 그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아뇨 , 그럴 수 있고말고요!"
  그는 마치 과거가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집 앞 그늘진 구석에 숨어 있기라도 하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전 모든 것을 옛날과 똑같이 돌려놓을 생각입니다." 그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녀도 알게 될 겁니다."


  환상과 이상에 젖어 있는 개츠비에게 지나간 과거는 다시 졸이길 수 없다는 닉의 말은 좀처럼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렇게 과거를 반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는 점에서 개츠비를 낭만적 이상주의자로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닉이 그를 적잖이 경멸하면서도 깊이 동정할 뿐만 아니라 유대감을 느끼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개츠비는 '삶의 가능성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과 '희망에 대한 탁월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 비록 그의 이상은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일는지 모르지만 그 꿈을 성취시키기 위한 헌신적 노력은 톰과 데이지를 비롯한 다른 인물들의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행동과 비교해 볼 때 차라리 숭고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닉은 머틀이 사망한 다음날 아침 그를 향하여 "그 인간들은 썩어빠진 족속이오. 당신 한 사람이 그들을 모두 합쳐놓은 것만큼이나 훌륭합니다."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 것에 대해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힌다.
  (중략) '위대한 개츠비'라는 제목이 시사하는 바는 자못 크다. 작가는 주인공에게 '위대한'이라는 관용어를 붙여주었다. 물론 이 형용사를 반어적으로 해석하려는 비평가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쪽이 더 옳을 듯하다. 적어도 꿈과 환상을 간직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온갖 희생을 무릅쓴다는 점에서 개츠비는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중략)
  피츠제럴드는 언젠가 자신의 인생관과 관련하여 시어도어 드라이저와 조셉 콘래드의 그것과 같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 두 선배 작가는 '삶이 인간에게 너무 거세고 무자비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삶을 축제처럼 살려고 했던 사람답지 않게 피츠제럴드는 삶의 비극적 의미를 깊이 깨닫고 있었다. 그러니 만약 이 세 작가에게서 두루 찾아볼 수 있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낭만적 환상을 통하여 삶의 비극적 의미를 극복하려고 하는 태도일 것이다. (중략)
  이렇게 개츠비가 보여주는 낭만적 환상이나 이상주의는 미국인들의 의식에 깊은 흔적을 남겻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상상력이나 문화의 일부가 되다시피 하였다. (중략)
  개츠비가 지니고 있는 꿈이나 환상은 개인적 차원을 뛰어넘어 좀 더 넓게 국가적 의미를 지닌다. 다시 말해서 그의 꿈과 이상은 상징적으로 '미국의 꿈'으로 이어진다. 개츠비의 장례를 치른 뒤 닉은 동부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는 그러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개츠비의 집 앞 해변에 앉아 삼백여 년 전 부푼 가슴을 안고 미국 땅에 처음 도착한 네덜란드 상인들의 눈에 비쳤을 '신세계의 싱그러운 초록빛 가슴'을 떠올린다. 소설의 처음과 끝에 나오는 초록빛은 작품의 통일성에 이바지할 뿐만 아니라 미국의 꿈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이렇게 물질적 풍요와 안락을 찾아 초록의 꿈을 간직하고 신대륙에 도착한 사람들은 비단 네덜란드 상인들만이 아니었다. 오늘날의 버지니아 주 제임스타운에 최초로 식민지를 개척했던 영국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실채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제임스타운 식민지는 그 후 미국 중부와 남부 식민지 개척에 첫 길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신대륙에 '새로운 가나안 땅'이나 '새로운 예루살렘'을 건설하려던 청교도들은 네덜란드 상인이나 영국의 개척자들과는 크게 달랐다. 보스턴 근교의 뉴잉글랜드에 정작한 청교도들이 찾던 초록의 꿈은 물질적 풍요와 안락보다는 오히려 간섭받지 않고 마음껏 자신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종교적 자유에 있었다. (중략)
  뉴욕에 식민지를 개척한 네덜란드 상인이나 제임스타운 식민지의 영국 개척자들에게서도 잘 드러나듯이 '미국의 꿈'은 자칫 물질적인 것으로만 인식되기 쉽다. 심지어는 뉴잉글랜드에 정착한 청교도 들도 정신적인 것에 못지않게 물질적인 것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중략) 실제로 청교도들 사이에는 부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가난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중략) 막스 베버를 비롯한 몇몇 사회학자들이 미국이 이백 년도 채 되기 전에 자본주의 사회로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다름 아닌 청교도 윤리에서 찾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물질적 성공과 관련한 '미국의 꿈'은 청교도 정신이 점점 빛을 잃게 되면서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중략) 미국에서는 근면하고 성실하고 정직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신앙처럼 널리 퍼져 있었다. 개츠비가 어렸을 적에 프랭클린의 삶의 방식을 따르려고 한 것은 당연하다. (중략)
  그러나 물질적 성공은 어디까지나 변질된 '미국의 꿈'이거나 기껏해야 그 꿈의 작은 한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참다운 '미국의 꿈'은 뭐니 뭐니 해도 다분히 정신적인 것이었다. (중략)
  이 소설의 주인공 제이 개츠비는 바로 변질된 '미국의 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데이지의 사랑을 되찾으려는 그의 꿈은 참으로 순수하고 낭만적이며 이상적이다. 비록 톰에게 데이지를 빼앗기고 말았지만 그는 지금이라도 그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개츠비가 데이지를 되찾기 위하여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느냐에 있다. 그는 금주법이 시행되던 시기에 불법으로 밀주를 판매하거나 훔친 증권을 불법으로 판매하거나 도박을 하는 방법으로 막대한 재산을 모은다. 전쟁이 끝난 뒤 빈털터리이던 그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재산을 모을 수 있었던 것도 마이어 울프심 같은 조직 폭력계 두목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낭만적 이상주의에 가려 자칫 놓쳐버리기 쉽지만 개츠비가 실정법을 어긴 엄연한 범법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개츠비의 이상주의가 물질주의를 그 수단으로 삼으면서 변질되고 타락한 것처럼 청교도들이 가슴에 품고 있던 '미국의 꿈'도 물질주의와 손을 잡으면서 점점 변질되고 타락할 수밖에 없었다. (중략)
  피츠제럴드는 그 빛바랜 '미국의 꿈'을 좀 더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이 작품에서 세 가지 상징적 이미지를 구사한다. 하나는 껍질만 남은 과일이고, 다른 하나는 조지 윌슨의 자동차 정비소 근처에 있는 재의 골짜기이며, 또 다른 하나는 재의 골짜기 근처에 서 있는 T. J. 에클버크 안과 의사의 광고탑이다. 개츠비는 주말마다 저택에서 화려한 파티를 벌이기 위하여 뉴욕 과일 가게에서 싱싱한 오렌지와 레몬을 몇 상자씩이나 들여온다. 그러나 파티가 모두 끝난 월요일 아침이면 그 싱싱하던 과일은 과육이 모두 사라진 채 앙상한 껍질만 남아 뒷문을 통하여 쓰레기장으로 버려진다. 윌슨의 자동차 정비소 근처의 재의 골짜기는 T. S. 엘리엇이 『황무지』(1922)에서 말하는 불모의 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패와 죽음의 개고인 이곳은 뽀얀 먼지가 그 근처를 뒤덮고 있고 온갖 악취가 코를 찌른다. 에클버그라는 한 안과 의사가 세워놓은 광고탑은 전통적인 신(神)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현대인들은 전통적인 종교를 밀어내고 바로 그자리에 자본주의와 상업주의라는 새로운 신을 세워놓았다. 한때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그 '미국의 꿈'은 이제 과육을 빼낸 오렌지나 레몬처럼 껍질만 남은 채 재의 골짜기처럼 악취를 풍기고 있으며 안과 의사의 광고탑처럼 상있주의로 변질되었던 것이다.
  (중략) 개츠비는 '미국의 꿈'이라는 결코 뜨지 않는 달을 기다리다가 좌절을 겪었고, 삶의 연극에서 미처 2막이 시작되기도 전에 종말을 맞이하였다. 마찬가지로 청교도들이나 초기 국부(國父)들이 꿈꾸던 희망은 21세기를 맞이한 지금까지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피츠제럴드는 이 작품의 제목을 두고 무척이나 고심하였다. (중략) 작가가 이 소설을 어떤 식으로든지 미국과 관련시키려고 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위대한 개츠비』는 주제뿐만 아니라 그 형식과 기법에서도 눈길을 끈다. 방금 앞에서 몇 가지 예를 들었지만 피츠제럴드는 이 작품에서 상징과 이미지를 즐겨 사용한다. (중략) 세계 소설사를 샅샅이 뒤져보아도 이 작품처럼 서정적인 작품을 찾아보기는 그리 쉽지 않다. 번역하는 과정에서 상당 부분 놓치고 말았지만 원문을 읽다 보면 마치 산문시를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더구나 피츠제럴드는 서술 시점이나 관점에서도 실험을 꾀한다. 일인칭 서술 화법을 구상하면서도 전통적인 화법과는 조금 다르게 사용한다. (중략) 콘래드의 일인칭 화법에서 사건이 주로 서술자의 입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전달된다면, 피츠제럴들의 일인칭 화법에서 사건은 주로 글을 통하여 독자에게 전달된다. 다시 말해서 청각적 특성이 강한 전자의 작품이 '듣는' 소설이라면, 시각적 특성이 강한 후자는 '읽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 첫머리에 나오는 "이 책에 이름을 제공한 사람인 개츠비"라는 구절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위대한 개츠비』는 닉이 지금 집필하고 있는 책에 해당하는 셈이고, 이 작품을 읽는 독자는 동시에 닉이 쓴 책을 읽고 있는 셈이다.
  또한 닉 캐러웨이는 서술자이면서도 동시에 작중 인물의 역할을 맡는다. 한편으로는 방관자나 목격자처럼 개츠비와 관련한 사건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작중 인물로서 사건을 직접 개입하기도 한다. 작가의 말대로 닉은 '이야기의 안과 밖'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스토리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중략) 실제로 이 소설을 닉의 정신적 성장 과정을 다룬 일종의 교양 소설(Bildungsroman)로 읽으려는 비평가들도 적지 않다. (이하 생략)
 
Posted by Hyos :


Jazz Age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The Jazz Age describes the period from 1918-1929, the years between the end of World War I and the start of the Roaring Twenties; ending with the rise of the Great Depression, the traditional values of this age saw great decline while the American stock market soared. The focus of the elements of this age, in some contrast with the Roaring Twenties, in historical and cultural studies, are somewhat different, with a greater emphasis on all Modernism.

The age takes its name from jazz music, which saw a tremendous surge in popularity among many segments of society. Among the prominent concerns and trends of the period are the public embrace of technological developments (typically seen as progress)—cars, air travel and the telephone—as well as new modernist trends in social behavior, the arts, and culture. Central developments included Art Deco design and architecture. In addition, many amateur artists began to aspire including Duke Ellington, Picasso, etc.


The Jazz Age in literature

Perhaps one of the most representative literary works of the Jazz age is American writer F. Scott Fitzgerald's The Great Gatsby (1925), which highlighted what some describe as the corruption of the post-WW1 age, as well as new attitudes, and the growth of individualism. Fitzgerald is largely credited with coining the term, which he used in such books as his short story collection Tales of the Jazz Age. His second novel, The Beautiful and Damned (1922), also deals with the era and its effect on a young married couple. Fitzgerald's last completed novel, Tender Is the Night (1934) takes place in the same decade but is set in France and Switzerland not New York, and consequently is not widely considered a Jazz Age novel per se.

Additional works on the Jazz Age might include Thomas Wolfe's and Catarina Botto's titanic 1936 book Of Time and the River which takes its protagonist from the depths of the Carolinas to Harvard and Antarctica, and finally to New York City in the 1920s. Wolfe's You Can't Go Home Again is recommended for its party scene on the night of the 1929 stock market crash. Edith Wharton's late novel Twilight Sleep, set in New York and written in 1927, is a great example of social critiques of Jazz Age values and lifestyles. Additionally, The Rosy Crucifixion trilogy of Henry Miller -- Sexus, Plexus, and Nexus -- is set in New York during this period.


Social acceptance of minorities and homosexuals


A poster from the Jazz Age.
A poster from the Jazz Age.

In urban areas, minorities were treated with more equality than they had been accustomed to previously. This was reflected in some of the films of the decade. Redskin (1929) and Son of the Gods (1929), for instance, deal sympathetically with Native Americans and Asian Americans, openly reviling social bias. On the stage and in movies, black and white players appeared together for the first time. It became possible to go to nightclubs and see whites and minorities dancing and eating together. Even popular songs poked fun at the new social acceptance of homosexuality. One of these songs had the title "Masculine Women, Feminine Men".[1] It was released in 1926 and recorded by numerous artists of the day and included the following lyrics:

Masculine women, feminine men
Which is the rooster, which is the hen?
It's hard to tell 'em apart today! And, say!
Sister is busy learning to shave,
Brother just loves his permanent wave,
It's hard to tell 'em apart today! Hey, hey!
Girls were girls and boys were boys when I was a tot,
Now we don't know who is who, or even what's what!
Knickers and trousers, baggy and wide,
Nobody knows who's walking inside,
Those masculine women and feminine men!
—Words by Edgar Leslie[2]

Homosexuals also received a level of acceptance that was not seen again until the 1960s. Until the early 1930s, gay clubs were openly operated, commonly known as "pansy clubs". The relative liberalism of the decade is demonstrated by the fact that the actor William Haines, regularly named in newspapers and magazines as the number-one male box-office draw, openly lived in a gay relationship with his lover, Jimmy Shields.[3] Other popular gay actors/actresses of the decade included Alla Nazimova and Ramon Novarro.[4] In 1927, Mae West wrote a play about homosexuality called The Drag, and alluded to the work of Karl Heinrich Ulrichs. It was a box-office success. West regarded talking about sex as a basic human rights issue, and was also an early advocate of gay rights. With the return of conservatism in the 1930s, the public grew intolerant of homosexuality, and gay actors were forced to choose between retiring or agreeing to hide their sexuality.


References

  1. ^ The song was written by Edgar Leslie (words) and James V. Monaco (music) and featured in Hugh J. Ward's Musical Comedy "Lady Be Good."
  2. ^ A full reproduction of the original sheet music with the complete lyrics (including the amusing cover sheet) can be found at: http://nla.gov.au/nla.mus-an6301650
  3. ^ Mann, William J., Wisecracker : the life and times of William Haines, Hollywood's first openly gay star. New York, N.Y., U.S.A. : Viking, 1998: 2-6.
  4. ^ Mann, William J., Wisecracker : the life and times of William Haines, Hollywood's first openly gay star. New York, N.Y., U.S.A. : Viking, 1998: 12-13, 80-83.

Further reading

  • Allen, Frederick Lewis. Only Yesterday: An Informal History of the Nineteen-Twenties 1931.
  • Gary Dean Best. The Dollar Decade: Mammon and the Machine in 1920s America Praeger Publishers, 2003.
  • Dumenil, Lynn. The Modern Temper: American Culture and Society in the 1920s Hill and Wang, 1995
  • Fass; Paula. The Damned and the Beautiful: American Youth in the 1920’s. Oxford University Press, 1977.
  • David E. Kyvig; Daily Life in the United States, 1920-1939: Decades Promise and Pain Greenwood Press, 2002
  • Leuchtenburg, William. The Perils of Prosperity, 1914–1932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5.
  • Lynd, Robert S., and Helen Merrill Lynd. Middletown: A Study in Modern American Culture Harcourt, Brace and World, 1929. famous sociological study of Muncie, Indiana, in 1920s
  • Mowry; George E. ed. The Twenties: Fords, Flappers, & Fanatics Prentice-Hall, 1963 readings
  • Parrish, Michael E. Anxious Decades: America in Prosperity and Depression, 1920–1941 W. W. Norton, 1992
  • West, James [Carl Withers]. Plainville, U.S.A. Columbia University Press, 1945. sociology of life in a small town

External links

===================================================
사실 중요한 것은 해석이다. 찾는것은 누구나 할수 있다.
어서 해석해보자.;ㅁ;

+ 이거원, 피드백이네.ㅋㅋ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이 미국 1920년대 Jazz age라고 해서 한번 찾아봤더니,
여기서는 위대한 개츠비에 잘 드러난다고 하면... 뭥미.ㅋㅋ

Posted by Hyos :

★참고문헌★
T.J. Reed, 『19세기 유럽 문학의 정상 괴테』, 이종인 옮김, 시공사
(ISBN 89-527-1636-1, ISBN 89-527-1111-9(세트))
→ p.11~40, 아래 <베르테르>이하부터 베르테르 관련 내용~~


<참조에 관한 주석>
텍스트 속의 참조는 아래 책을 따랐다.
H : 총 14권으로 된 함부르크판 괴테 전집. 에리히 프룬츠(Erich Trunz) 편집. 원판은 함부르크, 1948~60.
E : 만년의 괴테와 나눈 대화를 그대로 받아쓴 요한 피터 에커만(Johann peter Echermann)의 대화록.
D : 1786년 칼스바드에서 로마에 이르기까지 괴테의 일기(H에 들어 있지 않음).
(이하 생략)

<들어가는 글>
(앞부분 생략)
  겉으로 드러난 그의 삶은 간략하게 요약할 수 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eothe)는 1749년 자유 제국(帝國) 도시인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법률을 전공한 자문관으로 부르주아였다. 어머니는 아주 활기차고 이지적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후일 유명해진 아들 덕분에 사귀게 된 작가와 왕자들로부터 폭넓게 존경받았다. 그녀의 편지에는 괴테를 연상시키는 자연스러운 개성이 넘쳐흐르는데, 괴테는 '낙관적인 성격'과 넘치는 상상력을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고 말했다.(H I. 320). 또한 어머니의 사랑 넘치는 자상한 성격은 괴테에게 그대로 전해져서 그의 삶은 언제나 편안했으며, 그것은 또한 괴테의 저작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중략)
  괴테 생애의 전반기는 계몽주의 후기 시대와 일치한다. 그가 계몽주의의 가담자로 평가되지는 않지만, 그의 작품에는 이 사상의 여러 원칙들이 묵시적으로 등장한다. 경험주의, 감각적인 것에 대한 애착, 인간의 본성(혹은 자기 자신의 본성)에 대한 믿음, 사상의 명료성등이 그런 원칙이다. 그는 이런 원칙들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런 것들을 언급하기보다는 직접 실천하고 또 개인적인 전망과 경험으로 그것들(원칙들)을 생기넘치게 하는 일에 바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 더하여 초기 괴테의 지적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준 또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요한 고트프리트 헤드러(Johann Gottfried Herder)와의 만남이었다. 헤르더의 문화철학은 젊은 시인(괴테)의 창조적 충동과 주제적 관심을 완벽하게 수용하고 또 확인시켜 주었다. (중략)
  그리고 중기에 실러를 만나게 된다. 실러는 위대한 시인이면서 비극 작가였고 또 탁월한 미학 이론가이면서 비평가였다. 이런 실러가 괴테의 시를 높이 평가하고 유럽 문학에서의 가치를 인정해 주자, 괴테의 문학 감각은 더욱 고양되었고 새로운 창조성의 활기를 띠게 되었다. 1794년에서 1895년(실러 사망 연도)까지 두 사람의 생산적인 우정은 독일에 때늦은 고전주의 붐을 일으켰고, 사상 처음으로 바이마르를 독일 문학의 요람으로 만들었다. (이하 생략)


1. 바이마르의 방랑자 시인
  - 괴테, 그 사람
<시가>
(앞부분 생략)
  괴테 이전의 18세기 시들은 사교 모임장이나 기존의 교설만 인정하는 교실 속에 갇혀 잇었다. 설혹 그런 갇힌 공간 밖을 내다본다 하더라도 아주 잘 가꾸어진 정원 속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순치된 자연이 고작이었다. 그 시들의 형태적인 양식도 마찬가지로 제약을 받고 있었다. '서정적' 연(聯)은 운율을 맞추고, 무언가 진지하게 탐구하는 듯하며, 사이사이 우화도 등장하지만, 그 시들은 이미 결론이 정해진 방향으로 내달렸다. 그런 중에도 초창기의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고틀리프 클롭슈토크(Friedrich Gottlieb Klopstock)는 장대한 언어·운율적 제스처로써 자기 자신을 해방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의 시들은 위대한 비평가 고흐홀트 에프라임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이 지적한 것처럼 너무 감정이 충만해 있기 때문에, 막상 읽어보면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다. 너무 노골적으로 정서를 유도하는 수사(修辭)가 읽는 이에게 부담을 주는 탓이다. 그 감정은 종종 종교 감정으로 바뀌는데, 아주 오랫동안 시적 표현에 한계를 부과해온 기독교 정통 교리의 '숭고한' 되풀이에 불과하다. 그리하여 클롭슈토크가 노리는 해방은 의심스러운 해방이 되고 말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괴테는 자기 주위의 실제 세계로 파고 들어갔다. (중략)
  괴테는 소심한 선배 시인들이 할 수 없었던 것을 해냈다. 그는 '방랑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괴테 자신이 말했던 '자유로운 세상', '충만한 세상', '열린 세상'을 마음껏 거닐었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억수 같은 빗줄기 속에서 진흙 위를 터벅터벅 걸어 가는 사람, 애인과 약속한 장소에 맞춰 가기 위해 알자스의 전원을 말 달리는 사람, 취리히 호반에서 노 젓는 사람등 자연스러운 사람들의 움직임이 직접 느껴진다. 괴테처럼 구체적인 경험을 제시하면서 정서적인 것과 신체적인 것을 강력하게 융합한 시인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괴테는 자연 속에 놓여 있는 진실한 인간이다. (중략)
  괴테의 시는 엄청난 힘, 신선함, 시적 정밀성을 갖고 있다. 그리하여 독일 문학에서는 괴테의 선배는 물론 후배 중에서도 그에게 필적할 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 괴테의 문학에 도움을 준 사람들이 있기는 했다. 괴테가 스트라스부르 시절(1771)에 만났던 헤르더는 원시인들의 노래가 갖고 있는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면서 호메로스(Homeros), 오시안(Ossian), 셰익스피어의 원초적 힘을 칭찬했다.
  (중략) 괴테는 헤르더를 알기 오래 전부터 이미 셰익스피어를 읽고 있었다. 또 핀다로스(Pindaros)를 읽고 그의 복잡한 운율이 랩소디적 융합의 결과라고 오해하기도 했으며 당시로서는 신선하고 영감 넘치는 것으로 보였던 클롭슈토크도 읽고 있었다.
  (중략)
 
[감정의 오류는 영국의 문학비평가 존 러스킨이 『근대화가론』(1856)에서 처음 만들어낸 말이다. 시인이나 화가들은 자연에 인간의 감정을 투사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이 감정의 오류이다. 이러한 오류는 흥분된 느낌 때문에 발생하는데, 그 결과 인간은 잠시 비이성적으로 된다. 인간의 마음이 정서에 의해 크게 자극을 받으면 이런 '오류'가 발생한다. 말하자면 외부의 사물에 대한 인간의 인상에 오류가 생기는 것이다. 러스킨은 자신의 정의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킹즐리의 시행을 인용한다.
  그들은 노호하는 포말(泡沫) 사이로 배를 저어갔다.
  저 잔인하고 기어가는 포말.
  "포말은 잔인하지도 기어가지도 않는다. 인간의 이러한 특성을 포말에 적용시킨 것은 인간의 마음 상태이며, 그 상태가 슬픔에 의해 잠시 이성을 잃은 것이다."(러스킨)
  그러면서 러스킨은 최상급의 창조적 시인들(호메로스, 단테, 셰익스피어)은 이런 감정상의 오류를 거의 저지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2류 시인들(워즈워스, 콜리지, 키츠, 테니슨 등)은 이런 오류를 많이 저지른다; 이상 프린스턴대학판 『시학대박과 사전』에서 인용: 역주]

<베르테르>
(앞부분 생략)
  괴테가 어떤 문학적 가능성 때문에 '인생은 비극이다'라는 주제를 탐구했던 것은 아니다. 카를 빌헬름 예루잘렘(Carl Wilhelm Jerusalem)이라는 젊은 변호사의 자살이 그에게 이 작품을 쓰도록 강요했던 것이다. 예루잘렘은 괴테가 라이프치히 시절과 베츨러의 제국(帝國) 상소법원 시절에 알았던 사람이었다. 자연사, 요절, 사고사 등은 인생의 의미를 정의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자살은 인생의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잘 알고 있던 사람의 자살은 괴테에게 충격을 주었고 그 결과 이러한 절망의 깊이를 이해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예루잘렘의 사회적 실패, 불행한 사랑, 자살 후의 형편없는 사후 처리, 검소한 장례식 등으로 괴테는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그는 18개월 동안 그 문제를 곰곰 생각하여 1774년 초 4주에 걸쳐 서한(書翰)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을 써냈다. 내적인 동요와 짝사랑의 괴로움 때문에 결국 어두운 종말을 맞게 되는 한 젊은이의 이야기였다.
  (중략) 베르테르가 편지를 쓰는 상황, 편지들의 길이와 어조, 서서히 일관성이 붕괴되어 나가는 과정 등은 정말 사실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하여 우리는 괴테의 시를 읽을 때와 똑같은 감정의 동요를 느끼게 된다. (중략) 
  괴테의 소설은 질병과 똑같은 위력으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심리 과정에 대해 깊은 통찰 혹은 공감을 제공해 준다. 베르테르 자신도 이러한 '심리적 원인도 죽음을 가져온다'는 논리를 원용하면서, 연적인 알베르트 앞에서 전통적인 자살 배척론에 맞서 자살을 옹호한다(그것은 베르테르가 자살하기 훨씬 전의 일이었다). 베르테르의 웅변은 기존의 경직된 법률과 도덕과는 뚜렷하게 대비되는 혁명적인 호소로, 흄의 논문 『자살론』(Of Suicide)과 나란히 세워놓을 만했다. 흄은 오래 전에 이 논문을 썼으나 파란을 우려해 발표하지 않다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나오고 3년이 지난 뒤에 출간했다. 흄은 추상적으로 인간의 자살 권리를 옹호하고 있는 데 반해, 괴테는 사람을 자살로 몰고 가는 고통을 구체적으로 재창조하고 있다. 철학은 일반적인 동의를 구하지만, 문학은 구체적인 공감을 강요한다. 문학은 이런 식으로 사회를 문명화시키는 작업을 해낸다.
  베르테르의 고통이 불행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물론 연애 감정이 표면적인 플롯을 지배하고 있고, 또 당시 기준으로 볼 때 그런 감정이 아주 감상적인 분위기로 강화되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베르테르는 좀더 급진적인 문제에 대한 답변 혹은 완화책으로 로테를 필요로 했다.
  베르테르의 마음은 그냥 저 혼자 내버려두면 덧없음과 죽음으로 내달리게 되는 그런 마음이었다. 로테에 대한 사랑은 이런 마음에 어느 정도 제동을 걸었다. 그는 인간의 모든 활동은 궁극적으로 무의미하다고 보았고, 그래서 사회 바깥에 있는 우울한 관찰자인 자신은 그런 제약으로부터 해방된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해방은 허무주의로 가득 찬 황야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이 그토록 경멸하는 그런 제약의 일부 형태를 동경한다. 전원 분위기가 가득한 소설의 도입부에서, 그는 농부가 되었으면 하는 동경을 내보인다. (중략) 그러나 이런 전원에 대한 동경은 산산조각나 버린다. 그런 전원생활에 딱 들어맞는 파트너 로테를 아내로 맞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략)
  인간의 마음과 정서는 이 세상과 충분한 타협을 이루어서, 이 세상의 조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사는 것을 자기의 집처럼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이 거듭하여 진지하게 제기되었기 때문에, 또 베르테르의 비극적 답변이 늘 옆에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괴테가 "비극을 피해갔다."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니까 괴테가 자기 자신과 소설 속 인물들에게 그런 문제를 제기하기만 하고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는 것은 허무맹랑하다. 괴테의 저작이 성공적인 해결책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은 '비극적 격언'(인생은 무의미하다: 역주)이 결코 상투어로 전락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1770년대 중반에 괴태는 인생의 비극적 견해를 상술하기는 했지만, 그런 견해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견해를 아주 동정감 넘치는 입장에서 기술했다. 하지만 시적 효과를 내기 위한 것이었을 뿐, 그런 주제에 탐닉하지는 않았다. 낭만적 개인주의의 애상(哀想)과 병리(病理)는 그의 규범이 될 수 없었다. 이것은 초창기의 그가 거둔 의미 있는 승리이다.

 (이하 생략)

Posted by Hyos :
★참고문헌★
안삼환 엮음, 『괴테 그리고 그의 영원한 여성들』, 서울대학교 출판부
(ISBN 89-521-0663-6)
- 이 책에서 진일상, '『젊은 베르터의 고뇌』와 청년 괴태의 사랑'(p.199-213)편을 읽고 잊어버릴까봐 배껴 적은 것.

<편지 그리고 눈물>
(앞부분 생략)
  서간체 소설은 당시에는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루소 「신엘로이즈」, 베르테르 이후 드 라클로「위험한 관계」등이 있다.
(중략)
  지금과는 시간개념이 다르고 다양한 오락 거리가 없던 그 당시의 사람들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편지를 쓰는 일에 전념했다. 하루종일 편지를 쓰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몇 주에 걸쳐 편지를 쓸 때도 있었다.
(중략)
  편지는 단순히 용건을 전달하고 의견을 나누고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의 내면 고백과 함께 글쓰기를 연습하는 습작의 성격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편지는 글을 쓰는 이의 감정이 그대로 표현되는 가장 주관적인 문학형식이다. 젊은 베르터도 친구 빌헬름을 상대로, 어떤 때에는 거의 매일, 자신에게 있었던 일이나 자신의 심리 상태와 생각들, 로테를 향한 사랑과 그에 따르는 고통과 번민들을 쏟아내고 있다.
(중략)
  이 소설은 편지라는 주관적인 형식을 취해 당시 시대적인 조류였던 감성주의의 다양한 특징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감성주의는 18세기 후반의 문화사적인 흐름으로서, 자연스러운 산물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하던 중세 사회의 신 중심의 세계관으로부터 계몽과 오성의 사용을 주창하게 되었고, 이러한 이성 만능의 분위기가 만연하자 그 자연스러운 귀결은 극단적인 감성의 해방으로 기울게 된다. 감성주의는 이러한 시대적인 분위기의 인위적인 결과로, 당시 사람들은 느낌을 극대화 시키고 느낌을 고양시킬 대상을 적극적으로 찾거나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고, 이 느낌을 통해 자신의 존재와 현실을 더 높은 단계에서 의식하고자 했다. 감성을 자극하는 것 중에서 가장 기쁨을 주는 것은 물론 고뇌나 고통이었다. 고뇌야 말로 가장 깊은 차원의 감동과 내면의 동요를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고뇌와 기쁨은 궁극적으로는 일맥상통하는 것이었고 이를 표현하는 수단은 눈물이었다. 당시에는 눈물이 없는 편지란 있을 수 없었다. 당시 사람들은 또 다시 눈물을 흘리기 위해 음악을 연주하고 시를 낭송했다고 한다.
(중략)
  괴테의 베르테르는 당시 감성주의적인 분위기에서 함께 호흡하는 인물인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도 숭고한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한 감성주의의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베르터의 편지를 펴낸 편자는 시작부분에서 자신의 역할을 설명하면서 독자들에게 "베르터의 고뇌로 부터 위안을 얻으십시오"라고 덧붙인다. 당시 감성을 자극하는 슬픔과 눈물은 곧 감성을 고양 시키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생략)


<베르터의 사랑 그리고 죽음>
(앞부분 생략) 두사람의 첫 만남은 무도회로 이어졌고, 그들은 처음으로 교감을 갖게 된다.
  로테는 팔꿈치에 기대어 차분하게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녀는 하늘을 쳐다보고, 이어서 나를 바라보았는데, 그녀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그녀는 자기손을 내 손에 포개 얹은 다음 "클롭슈톡!"이라고 말했다. 나는 곧 로테가 생각하고 있는 그 장려한 송가를 생각해 내고 그녀가 이 같은 암호로 내게 쏟아 놓은 감정의 벅찬 흐름 속에 휩쓸려 갔다. 나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몸을 구부리고 기쁨에 넘치는 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손등에 키스했다. (Goethe: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 Műnchen 1981, 27쪽 - 이하 텍스트 인용은 페이지만 기재)
  오늘날 시각에서 볼 때 이러한 장면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감성주의를 대변하는 "클롭슈톡"이란 말 한마디만으로도 서로 생각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서로 감정이 고양되는 것은 이상적인 사랑을 의미했다.
  베르터는 자신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사랑의 다양한 모습들을 전달하는데, 여기에서도 사랑이 지닌 파괴적인 힘이 그대로 드러난다. 여주인과 사랑에 빠진 한 농부는 질투심에 연적을 죽이는데, 베르터는 거칠지만,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농부의 맹목적인 사랑에 경외감을 표시한다. 교육을 받지 못했고 야만적인 계급에 속하는 농부의 솔직하고 열정적인 사랑에 비하면, 어떤 행동도 표현도 하지 못하는 자신은 정신적인 불구자에 속한다고 말하고 있다. 동시에 11월 30일자 편지에서는 로테의 아버지 밑에서 서기관으로 일하다 로테에게 사랑 고백을 한 후 파면당하고 마침내 미쳐 버린 한 젊은이, 하인리히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이에 공감을 표하기도 한다. 로테의 파괴력은 베르터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략) 그녀 앞에서는 이성을 잃고 어린애처럼 행동하게 되고, 그녀가 만진 모든 사물, 심지어 그녀가 보낸 하인에게서도 그녀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녀를 느낀다. (중략)
  베르터의 죽음은 어떻게 이해 될 수 있을까? 로테에 대한 마음이 그로 하여금 스스로 목숨을 버리게 한 이유였을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베르터의 감성은 그의 이성과는 합일되리 수 없는 것으로서, 그에게 파괴적인 힘을 발휘한다. 죽음은 초반부에 이미 그의 마음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세상을 인간의 자유의지가 속박을 받는 감옥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언제든 이 속박에서 벗어날 마음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알베르트와의 대화에서 베르터의 죽음에 대한 견해는 더욱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베르터에게는 자살은 자신을 제한하고 있는 속박에서 풀려날 수 있는 수단으로 이해된다. 자살 행위가 스스로의 나약함의 결과라고 말하는 알베르트에게 베르터는 어떠한 감정이든 견디어 낼 수 있는 한도가 잇으며, 이 한계를 넘어선 감정은 인간을 파멸로 치닫게 한다고 맞선다. 즉, 이 세상에서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사람에게 극복이니, 의지니 하는 것은 하나의 이상적인 말 뿐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이성 중심의 계몽주의적인 사고와 감성의 우위를 주장하는 감성주의적 사고를 대변한다. 죽음의 세계는 베르터의 독서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호머의 세계와 대립되는 오시언의 세계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 슬픔을 노래한 것으로, 베르터의 어둡고 절망적인 심리 상태를 그대로 대변한다. 로테를 만나기 전 인간적인 따뜻함으로 그의 마음을 채우던 호머의 세계는 로테와 만나면서 갈등하는 동안 죽음의 세계를 노래하는 오시언의 세계와 갈등하게 된다.
  (중략) 제2부에서 로테와의 재회 이후 그는 "내 마음 속에서 오시언이 호메로스를 쫓아 버렸다"고 말한다. "나도 숭고한 무사처럼 검을 뽑아들고 서서히 죽어가는 생명의 고통으로부터 영주 오시언을 단번에 해방시켜 주고 싶다. 그리고 해방된 그 반신半神의 뒤를 쫓아 내 영혼도 보내고 싶다"는 그의 말에는 죽음을 향한 강한 동경이 피력되어 있다.
  로테와의 첫 만남에서 "클롭슈톡!"이라는 말로 감정의 교감이 이루어졌다면, 절망에 지친 베르터의 마음은 오시언의 노래를 통해 로테에게 전달된다. 오시언은 호머처럼 눈먼 음유시인으로 자신의 유년기를 돌아보면서 아버지 핑갈과 일찍 죽은 아들 오스카, 그리고 일찍 세상을 떠난 영웅들을 노래하고 있다. (중략)
 
  죽기 전 로테를 마지막으로 만난 자리에서 베르터는 자신이 직접 번역한 오시언의 노래를 낭송한다. 지금까지 두 사람이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던 절망적인 감정들이 오시언을 통해 대변되는 것이다. 클롭슈톡이 자연에 대한 종교적인 감성을 표현한다면, 오시언은 비극을 대변한다. 상황은 일치하지 않지만, 두 사람의 비극적인 상황은 오시언의 노래를 통해 전이 되는 것이다.
  로테의 눈에서 눈물이 넘쳐 흘렀고, 그녀의 억눌린 가슴을 시원하게 해 주는 그 눈물은 베르터의 노래를 중단시키고 말았다. 그의 원고지를 내던지고 로테의 손을 잡고 흐느껴 울었다. 로테는 다른 쪽 손에 몸을 의지하고, 손수건으로 눈을 가렸다. 두 사람의 감동은 심각한 것이었다. 그들은 고귀한 사람들의 운명 속에서 스스로의 불행을 느끼고 또 서로 공감했기에 두 사람의 눈물은 하나로 합쳐져서 흘러내렸다. 베르터의 입술과 눈은 로테의 팔에 파묻혀 타올랐다.(114쪽)

그리고 베르터는 자신의 앞날을 예고하는 듯한 마지막 부분을 읽고 낭송을 끝맺는다. (중략)

 로테와의 열정적인 만남을 마지막으로 베르터는 로테와 작별을 고하고, 곧 알베르트의 권총을 빌려 로테가 시동에게 직접 건네준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어디에도 안식처를 찾지 못하던 베르터는 이번에는 더 이상 도피가 필요하지 않은 영원한 안식처로 떠난다. 그곳에는 더 이상의 고뇌도 갈등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로테와의 마지막 순간만을 기억하면서 자신에 대한 로테의 마음을 확인하고, 고통에 찬 생을 스스로 마감하게 되는 것이다.
  베르터는 죽음을 통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고, 괴테는 베르터라는 인물을 통해 개인적인 실연의 고통을 창작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고뇌하는 젊은 베르터는 넘쳐나는 감수성으로 사랑의 열병을 앓는 영원한 연인으로 남게 된 것이다.
Posted by Hyos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내가 읽은건 ISBN 89-8497-135-9)

2008년 7월 4일, 날씨 찜통
줄친거는 잘 모르겠는거 -///-

 참고문헌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소담출판사
(ISBN 89-7381-019-7 00850)
- 책 뒤에 작품설명나온거에서 아래꺼 다 찾음. 도서관에서 빨리 배껴적느라 흑흑.ㅠㅠㅋ


Johan Wolfgang von Goethe 또는 괴테 (1749-1832 독일)

그 당시, 귀족중심에서 시민계층의 사회로 옮겨가는 과도기적 상황!
또 영국, 프랑스에서 유래한 경험주의, 계몽사상이 독일에 퍼지고 있었던 시기.
아버지는 시민계층이라 정치 참여할수 없어 불만가득.
어머니는 시장의 딸, 감수성 예민하고 풍부함.

1766년, 최초 희곡 「애인의 변덕」
「공범자」→ 로코코풍의 서정적인 작품
↑ 자신의 세계 못찾고 방황의 시기, 계몽주의의 영향 아래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그의 작품세계는

1770년, 요때 봉건주의 퇴락의 길에 있었음. 시민 계급 전면 부상!! 이에따라 문학에서 시민계급 출신 작가 부상!
독일 문단는 합리주의에서 비합리쥬의, 질서에서 카오스, 프랑스적 고전비극에서 셰익스피어의 비극적 성격을 띠게 됨. 이것은 헤르더를 중심으로 정점에 이르게 되고 드디어 민중문학 운동!
괴테는 헤르더와 친구가 되어 새로운 문학의 전형인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등의 작가세계에 관심을 가짐.
요때 연애, 목가적 생활와 함께 본격적으로 시와 희곡

1773년, 희곡 「괴즈 폰 베를린항겐」: 당시 문학운동의 기폭제. 사회적 예술적 전통에 대한 반항. 문학 형식과 법칙 벗어나는 태도로 쓰임

1774년,「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작가적 명성 절정! 당시 젊은이들의 가슴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문제작

1775년, 바이마르로 가서 재상이 되었는데, 이후 독일 문화의 절정이 여기서 이룩됨.
그 곳에서 만난 세 아들의 어머니인 슈타인 부인은 괴테의 문학적 감수성 자극, 문학성을 높임.
이 부인은 나중에 「타소」, 「이피게니에」에서 형상화됨.
그래서 슬슬 고전주의의 작품세계로 접어듬.
이탈리아 여행으로 감성의 인간에서 이성의 인간이 됨.

1786년, 비극「이피게니에」:그의 고전주의 대표작. 형식과 제제가 그리스의 것이 였으나 괴테만의 세계관이 드러남 바로 독일 고전주의

1789년 프랑스 혁명←괴테는 '혁명'이라는 수단은 찬성하지 않음
1797년, 이러한 시대적 고뇌는 대혁명과 연관을 지닌 현실을 다루면서 고전주의의 대표적 서사시 「헤르만과 도로테아」완성. 이렇게 고전주의의 작품세계는
1796년, 소설「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도 그대로 드러남.

1809년(당시 60세), 소설「친화력」: 인간이 아무리 부정해도 사라지지 않는 삶의 절대적 긍정에 대한 꿈을 담은 걸작! 10살 아래던 실더가 죽자 정신적 충격. 그 가운데 삶의 의미를 꼐속해서 탐구. 진실된 연애를 체험.

1808년, 어머니를 잃은 괴테가 자신의 생을 회고하면서 집필하기 시작 「시와 진실」:자신을 대상으로 인간의 형성과정을 추적
시집「서동시집」:노년기 업적중 가장 높이 평가. 동양적인 정서가 담겨있다.

1816년, 아내와 사별후 19세 소녀 울리케와 사랑~ 「마리엔바트의 애가」형상화

1829년,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1831년 「파우스트」제 2부 완성 : 60여년이 걸림. 그의 전생에가 망라되어 있다.
위 둘 모두 청년 시절부터 구상하여 쓰기 시작한 것인데 여러번 중단하다가 드디어 완성된 것.

1832년 생을 마감......

-괴테에 대한 1차 조사 끝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배경

1772년..
베츨러에서 알게된 예루살렘이라는 청년이 어떤 유부녀에 대한 실연으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는다.
15세 샬로테 부흐, 5명 아이의 홀아비와 결혼한 여인과의 체험을 바탕으로 괴테가 25세때 쓴것. 젊은이로서 지닐 수 있는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주인공 베르테르의 사랑과 절망, 고뇌와 죽믕르 그린 단순한 연애수준을 넘어서서, 관습과 규범으로 억압하는 사회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한 괴테의 자유와 감정에 대한 의지 반영.
정렬과 세계와의 대립, 감각과 사랑의 도취속에서 파멸하는 베르테르의 모습 = 괴테 자신 = 당대 젊은이들의 모습
따라서 베르테르의 고뇌와 죽음은 합리주의의 사슬에 묶인 그 시대의 ㅂ ㅣ극!
그래서 당연스레 당시 젊은이들에게 커다란 충격.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배경 1차 조사 끝

Posted by Hyo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