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문헌★
조정래, 『프란츠 카프카(읽기의 즐거움)』, 살림

-p.64-96

종말 또는 새로운 탄생 -「변신」론
동물 모티프와 메타포
 (생략)
  「변신」을 구성하고 있는 세 개의 장에는 일상적인 삶에서 비일상적이며 비현실적인 상황에 처한 주인공의 행위와 그에 대한 가족의 반응이 집중적으로 묘사된다. 주인공에게 익숙했던 일상적인 것 속에서 낯설고 비일상적인 것이 갑자기 개입하게 된 상황은 작품에서 구체적으로 '불안한'이나 '무시무시한' 또는 '벌레' 등의 단어로 제시된다. 작품의 첫 문장이 동화적인 서술 방식이 아니라 무섭고도 혐오스러운 사실성에 토대를 둔 반동화적 방식으로 시작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독자는 이 작품이 우화도 동화도 아니라는 관점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독자로서는 벌레로의 변신을 우선 인간 본질의 상실과 연결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은 작품 진행 과정에서 빗나가고 만다. 처음에는 비록 주인공이 공동생활을 함께 할 수 없을 정도로 흉한 모습을 하고는 있기만 가족에게는 그가 여전히 책임져야 할 아들이자 오빠로 남아 있다. 작품의 후반부로 가서야 비로소 이러한 생각은 사라지게 된다. 마침내 가족은 아들의 존재를 부정한다. 그러나 동물적인 방식으로의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자아동일성은 손상되지 않는다. 변신 후에도 주인공이 여전히 그레고르로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작품의 모순적 상황이야말로 카프카적 우화의 특징이 된다. 그러니까 인간과 동물의 인류학적인 분류를 토대를 두고 있는 전통적인 우화나 동화의 개념은 카프카의 시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일상적인 것과 비일상적인 것과의 갈등이란 측면에서 볼 때, 이 이 작품은 '음식'과 '음악'이라는 두 개의 중요한 메타포를 내포하고 있다. 누이동생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면서 주인공은 "이처럼 음식 소리에 감동을 받는데도 내가 벌레란 말인가?"라고 생각한다. 음악 소리에 의해 내적으로 감동된 비일상성은 가족과 하숙인들의 세계와 같이 보편적이며 규범적인 일상성에 의해 축출된다.
  변신 이후 점점 축소되긴 했지만 그나마 유지되왔던 주인공과 가족간의 인간적인 관계는 작품 후반부에 와서는 완전히 단절된다. 주인공을 돌보는 일은 전적으로 늙은 청소부 할멈의 손에 맡겨진다. 카프카는 백발이 성성한데도 뼈대가 굵은 큰 몸집 덕에 자신의 긴 인생에서 온갖 궂은일을 극복해온 청소부 할멈을 주인공과 대조되는 인물로 설정한다. 일상적인 것의 중심에 활기차고 굳건하게 서 있는 할멈은 비일상적인 것 속에 방치되어 있는 주인공을 두려워하지 않고 "늙은 말똥벌레"라고 지칭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비일상적인 것은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라져야만 한다는 일상성의 법칙에 따라 주인공의 시체는 결국 할멈의 손에의해 한낱 쓰레기로 처리된다.

잠자 가족과 실제 가족과의 유사성
잠자 부인과 카프카의 어머니
  (생략)
  인물의 성과 관련하여 앞에서 언급한 유사성 외에도 두 가족(카프카 가족, 잠자 가족)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다. 잠자 부인은 두 아이의 어머니이며 아들 그레고르가 변신하기 전에는 직업 활동을 하지 않다가 변신 후에 유행품 가게에서 삯바느질을 한다. 그녀는 남편의 사업은 이미 5년 전에 파산했기 때문에 남편 일에는 신경 슬 필요는 없다. 그러니까 잠자 부인은 카프카의 실제 어머니에 비해 비교적 가사에 대한 부담이 적은 편이다. 그녀는 그레고르가 갑자기 보통 때처럼 회사에 출근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자, 그 즉시 걱정을 하면서 조심조심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레고르가 출근 시간을 미루는 이유를 알아내려고 한다. 그녀는 변신 후의 그레고르와 접촉을 시도하는 한편, 아들이 변신 전에는 성실하고 바람직한 직원이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는 등 그레고르의 무성의한 태도에 화가 난 회사 지배인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는 첫 인물인 셈이다. 그레고르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아버지는 열쇠 수리공을 부르자고 주장하는 반면에 그녀는 의사를 불러오라고 한다. 이런 그녀의 배려와 부드러운 마음씨는 작품 끝부분에 가서야 비로소 과감하고 단호한 태도로 바뀐다. 전체적으로 볼 때 그녀는 그레고르와 특별히 친밀함을 유지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아머지가 그레고르에게 사과를 던지면서 공격할 때도 그녀가 자발적으로 개입하여 남편을 제지하지 않았다면 그레고르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레고르를 남편으로부터 보호해 줄 뿐만아니라 그레테 앞에서도 그의 입장을 옹호해주기도 한다. 잠자 부인은 딸의 주장에 따라 그레고르의 방에 있는 가구를 치워버린 뒤에 야기될 수 있는 불행한 결과를 통찰하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는 딸에게 맞서기에는 너무 약하고 불안정한 인물이기도 하다. 잠자 부인의 이러한 행동 방식의 원인은 그녀의 허약한 건강 상태에 있을 수 있다는 가정도 가능하다. 그녀는 자주 몸이 아픈 데다 계속 천식에 시달려왔다.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야 비로소 그녀는 건강과 활기를 되찾는다. 작품에서 종종 묘사되는 그녀의 실신과 히스테리성 발작은 남편과 아들 사이의 갈등이나 경제적인 어려움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잠자 부인의 특성은 그녀로 하여금 카프카의 어머니 율리 카프카에 비견되는 가족내의 중간자 역할을 가능하게 한다.
  아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특징으로 하는 어머니 역할에서 볼 때 잠자 부인과 율리 카프카는 거의 일치한다. 율리 카프카는 아들 프란츠 카프카에게는 그야말로 좋은 어머니이다. 카프카 부인은 객지에 나가 있는 아들에게 종종 소포를 보내주곤한다. 외적으로 볼 때 아들에 대한 두 여자의 사랑과 보살핌은 행동 방식의 공통분모가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율리 카프카의 아들에 대한 사랑은 물질적인 면에만 치우친 피상적인 성격을 벗어날 수 없다.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 밖에서 보내야 했기 때문에 아들과 내면적으로 깊은 신뢰를 형성할 만큼의 시간적인 여유를 갖지 못했다. 이런 카프카 부인과는 달리 잠자 부인은 그레고르와 진지하고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비교적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카프카 아버지, 여동생에 관한 내용 생략 )

그레고르와 카프카
(생략)
  그레고르의 외적 특성은 시간이 가면서 점점 동물적인 것으로 바뀐다. 처음에는 언어능력이, 다음에는 식욕과 시각이 상실되어간다. 이러한 과정에도 불구하고 그레고르에게는 인간적인 사고와 인식력, 그리고 가치 판단 능력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는 누이동생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면서 자신이 여전히 인간임을 스스로 확신한다. 그러나 가족은 그레고르를 더 이상 인간으로 간주하지 않고 그의 방 속에 방치할 뿐이다. 회사에 출근하는 것은 고사하고 이제는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된 그레고르는 가족에게 경제적으로 커다란 손실을 초래하는 존재가 된다. 가족은 경제적으로 쓸모없게 되어 버린 그레고르를 대신해 각자 새로운 직업을 갖는다. 그레고르의 변신을 통해 가족은 예전과는 달리 각각의 삶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특히 아버지는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활기찬 직장 생활을 다시 시작한다.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는 속담은 적어도 카프카와 그의 아버지 사이에서는 적용되지 않았다. 자기 스스로를 몸이 비쩍 마르고 연약한 체질이라고 묘사한 카프카의 눈에 아버지는 항상 강하고 힘센 모습으로 각인되었다. 아버지는 훗날 성공적으로 자신의 사업을 물려줄 튼튼한 아들을 원했지만, 카프카에게는 아버지의 그런 현실 지배욕이나 사업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카프카의 삶에서 모든 것을 의미하는 글쓰기 작업은 아버지의 눈에는 한낱 현실 도피처에 불과했다. 아버지의 강압적인 자세와 끊임없는 책망은 카프카의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았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않는 카프카적 침묵과 수줍음은 그러한 상처의 흔적일 것이다. 항상 자기 자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아들에게는 반항의 권리를 전혀 허용하지 않는 아버지 앞에서 아들이 느끼는 공포는 카프카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그 무수한 익명의 불안으로 확장되었다. 그 결과 카프카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고, 수시로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적 감정에 빠져들었다. 
  카프카는 자신의 비극적인 경험을 작중 인물 그레고르 잠자를 통해 독자에게 제시했다. 그레고르의 변신 후 그의 아버지에게서 볼 수 있는 부정적인 행동 방식은 카프카의 아버지의 것과 동일한 속성을 갖는다. 이러한 일치 역시 결코 우연이 아님은 지금까지 밝힌 바와 같다. (이하 생략)
Posted by Hyo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