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문헌★
김성곤, 『J.D. 샐린저와 호밀밭의 파수꾼』, 살림
(ISBN 89-522-0349-6, ISBN 89-522-0096-9)
- 재밌는 부분이 많아서 전범위에 걸쳐 조금씩 옮겨적었다. 책마다 같은 내용을 다르게 설명하기도 하고, 자세하게 여기는 내용이 다르기도 해서 주로 그런 부분만 뽑았다.


은둔의 작가 샐린저

(앞부분 생략)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샐린저는 홀든 콜필드(Holden Caulfield)의 입을 빌어, "정말로 내가 감동하는 책은 말이야. 다 읽고 난 뒤에 그걸 쓴 작가가 친구가 되어, 언제라도 전화를 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책이란다. 하지만 그런 기분을 주는 책은 좀처럼 없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그 어느 독자의 접근도 철저히 차단하고 있는 패러독스를 보여주고 있다.
(이하 생략)


샐린저 현상

『호밀밭의 파수꾼』이 등장한 시대적 배경
  미국의 1950년대는 흔히 '정치적 보수주의, 경제적 호황, 그리고 사회적 순응'의 시대로 기억된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인들은 평화와 안정을 선택했고 1952년에 '평화와 번영'을 약속한 공화당의 아이젠하워를 대통령으로 선출했으며,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이 주도한 좌파색출 마녀사냥인 매카시즘의 횡포에 순응했다. (중략)
  1950년대에 중산층들은 교외로 이사 가기 시작했으며, 잔디밭에서 바베큐 파티를 열고, 세탁기와 텔레비전 수상기를 들여놓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은 가정과 교회와 커뮤니티의 미덕을 존중했고, 정원에는 동양의 약초를 심었으며, 애국심과 건전한 정신을 숭상했다. (중략)
  1950년대는 또 미국인들의 이혼율이 최저로 떨어지고 가족이 중시되었으며 출산율이 높아지던 시대였다. 텔레비전 드라마 역시 가족을 중시하는 홈드라마들이 주종을 이루었으며(예컨대 인기드라마 「비버에게 맞겨줘 Leave It to Beaver」),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과 품위가 리바이벌되던 시대였다. 심지어는 오늘날 범죄의 온상으로 여겨지는 뉴욕의 센트럴 파크조차 당시는 가족들이 놀러가는 평화로운 곳의 상징이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홀든이 센트럴 파크를 자주 거니는 것도 바로 그런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한 장치라고 보아 틀림이 없다.(중략)
  그러나 평온한 외관과는 달리, 1950년대의 그러한 모노크롬적 분위기를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매카시즘의 철저한 반공이데올로기로 정치적 우파만을 허용했고, 소위 정상적인 그룹이나 커뮤니티에서 일탈하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억압했다. 당시 미국인들은 경제적 풍요 대신 다양성이 결여된 단일문화와 보이지 않는 정신적 통제를 그 대가로 치르고 있었다. 그래서 고백파 시인들(Confessional Poets)은 내면 속의 문제점들을 천착하기 시작했고, 로버트 로월 같은 시인은 「스컹크들의 시간」이라는 시에서 "시대는 병들고 내 정신도 정상이 아니다."라고 노래했으며, 비평가 어빙 하우는 당시를 "순응의 시대(This Age of Conformity)"라고 불렀다.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은 바로 그러한 시대에 정면으로 도전했던 신선하고 도발적인 작품이었으며, 1950년대 초반, 물질적 풍요의 시대에 정신적 빈곤을 고발한 반문화(反文化)의 원조가 되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가 프렙 스쿨(Preparatory School : 아이비리그에 진학하기 위해 부자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사립 고등학교)에서 낙제해서 자랑스럽게 학교를 떠나는 설정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 위선으로 위장한 점잔은 사회에 대한 저항의 상징처럼 보인다.
  (생략)

'샐린저 현상'은 왜 일어났는가?
  (생략)지금 읽어도 『호밀밭의 파수꾼』의 구어체 문체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또 강한 마력으로 독자들을 끌어당긴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독자들은 이 소설이 당대에 누렸던 그처럼 폭발적 인기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인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1950년대를 전후한 미국사회의 분위기를 알아야만 한다. 1930년대 좌파 진보주의 시대를 겪은 미국사회는 제2차세계대전을 지나 전후사회로 접어든 1940년대 후반부터는 차츰 우파 보수주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파괴적 전쟁을 겪은 제대군인들과 그 가족들은 평화와 안정을 원했고, 그 결과 미국은 1957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의 애들라이 스티븐스 대신 또 다시 공화당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를 선택했으며,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이 주도해 현대판 좌파 마녀사냥을 주도한 극우 매카시즘이 사회전반에 걸쳐 횡행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몸을 사렸고, 작가들은 비정치적인 작품들을 썼으며, 사회는 점잖음과 안정을 내세워 보수로 회귀하고 있었다.
  가장 비정치적인 작가로 알려진 헨리 제임스와 윌리엄 포크너가 재발견되어 재평가된 것도 바로 이때였고, 솔 벨로 같은 작가들이 정치적 이슈 대신 산업사회에서의 개인의 소외를 주제로 질서를 추구하며 인간의 내면세계를 탐구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또 엘리아 카잔 같은 유능한 감독이 미의회에 불려가 영화계의 좌파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바로 그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정면 도전하는 도발적인 작품이었다. 학교라는 제도로 표상되는 보수적 기성세대의 위선과 허위를 고발하며, 분연히 학교를 떠나 뉴욕의 거리를 방황하는 홀든 콜필드의 체제 저항적 태도는 당시 억눌려있던 젊은이들의 가슴에 반항의 불을 지피는 기폭제가 되었다. 홀든 콜필드의 거칠 것 없는 언사, 당시로서는 사회적 터부였던 적나라한 욕설, 그리고 시원하게만 느껴지는 그의 저항적 태도는 점잖음을 추구하던 미국문단에도 충격적이었지만, 허위와 기만 속에 안정을 추구하며 살고 있었던 기성세대에도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더욱 놀라운 것은 『호밀밭의 파수꾼』이 아직은 아무런 체제 저항이 시작되기도 전인 1951년에 발표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곧 샐린저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가는 혜안의 작가였다는 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기념비적 소설은 이후 시작된 일련의 체제저항운동의 시발점이자 기폭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학사적 의의를 갖는다고 알려져 있다. 예컨대 『호밀밭의 파수꾼』은 1950년대 중반과 후반에 일어난 반체제 움직임인 미국의 '비트운동(The Beat Movement)'과 전후 영국의 진보주의 그룹인 '성난 젊은이들(The Angry Young Men)'의 시효가 되었으며, 1960년대를 풍미했던 히피문화와 젊은이들의 반문화(counter culture)의 원조가 되었다.
  (생략)


샐린저의 삶과 문학적 여정

은둔하기 전의 샐린저
  (생략)
  전쟁이 발발하자 샐린저는 군에 입대하려 하지만 심장에 약간의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징집을 거부당한다. 후에 신체 검사 기준이 약화되자, 샐린저는 드디어 부사관으로 입대해 통신부대에 근무하다가, 1943년에는 정부보대에 근무하게 된다.(중략)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그때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종군작가로 샐린저의 부대에 왔다가 독일제 루거 권총의 성능을 시험해본다는 이유로 닭의 머리를 날려 보내자 샐린저는 이후 헤밍웨이를 싫어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헤밍웨이에게 있어서 용기를 획득하고 성인으로 입문하는 과정은 늘 사자나 투우(죽음)와 대면해서 그 짐승을 죽임(두려움의 극복)으로써 이루어진다. 반면 윌리엄 포크너에게 있어서 순진성으로부터 벗어나 경험의 세계로 들어가는 성인의식은 언제나 동물(사슴이나 곰)과 대면했을 때 그 동물을 차마 죽이지 못하는 보다 더 고양된 감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헤밍웨이의 문제점은 그러다보니 닭처럼 위협이 되지 않는 짐승도 별 생각 없이 죽이게 된다는 데 있고, 샐린저는 바로 그 점에 혐오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샐린저는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홀든의 입을 빌어,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있거라』를 '가짜 책(phony book)'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중략)
  당시만 해도 샐린저는 사람들과 잘 어울렸고, 한때는 사라로런스 칼리지의 단편 강좌에 가서 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곧 대중 앞에서 말을 한다는 것과, 강연 중에는 작가들을 범주화하게 된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껴, 이후 공적 행사에는 일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게 되었다.
  (중략)
  1953년까지만 해도 샐린저는 사람들과 자주 만나 사교를 했다. 그가 셜리 블레이니에게 유일한 인터뷰를 허용한 것도 이때였는데,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샐린저는 점차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그들이 자기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착취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점차 사람들을 피하게 되고, 그 결과 1954년에는 샐린저에 대한 기록이 아무것도 남아있기 않게 되었다.
  (중략)
  샐린저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들로 릴케, 카프카, 프루스트, 플로베르, 랭보, 도스토예프스키, 체홉, 톨스토이, 제인 오스틴, 에밀리 브론테, 윌리엄 블레이크, 콜리지, 헨리 제임스 등을 꼽았다. 미국작가로는 피츠제럴드와 링 라드너를 특히 좋아해서, 샐린저의 작품 속에서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와 라드너의 소설들을 자주 칭찬하곤 했다. 그는 또 「두이노의 비가(悲歌」를 쓸 때 칩거했던 릴케의 성(城)을 본받아 자신도 일종의 성채에 칩거하는 것처럼 보인다.
 
은둔한 후의 샐린저
  샐린저 vs. 해밀턴 저작권 법정사건
  (생략)해밀턴은 자신이 그렇게 존경했고 관심을 가졌던 작가가 자신의 전기를 쓰는 전기 작가를 고발해 서로 적이 되었고, 앞으로 법전과 문학사에 '샐린저 대 해밀턴 사건'이라는 영원히 바람직하지 않은 사례로 남게 된 것은 말할 수 없이 큰 손실이자 유감이라고 자신의 소감을 밝히고 있다.
  (생략)


『호밀밭의 파수꾼』은 어떤 작품인가

  (생략) 홀든은 서부로 갈 생각을 하게 되고, 피비의 학교로 가서 떠나기 전 작별인사를 하고 싶다며 오후에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으로 나오라는 메모를 남겨놓는다. 피비의 학교의 벽에 외설스러운 욕이 써 있는 것을 본 홀든은 그걸 쓴 자를 붙잡아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그 낙서를 지운다. 그러나 홀든은 곧 다른 곳에도 그런 상스러운 욕이 씌어 있으며, 어떤 것들은 칼로 새겨져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절망하게 된다.
  (중략)
  오후에 박물관에서 피비를 기다리는 동안, 홀든은 이집트 무덤을 구경다가 다시 거기에서도 외설스러운 낙서를 발견하고 경악한다. 이는 비단 현대문명뿐 아니라, 인류역사 내내 순수성을 오염시키는 저급한 요소들이 상존해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중략)
  서른 다섯 살쯤 되면 돌아올는지도 모르지, 누군가가 병에 걸려서, 죽기 전에 나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을 경우에 말이야. 하지만 그런 일이 없는 한, 나는 오두막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단다.
  서른다섯 살이라는 나이가 미국에서는 중년의 시작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홀든ㅇ은 청년기의 순수성을 간직한 채 현실 세계에서 멀리 떠나 살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략)
  이윽고 나타난 피비는 짐을 들고 와서 자기도 같이 서부로 가겠다고 조르지만 홀든은 거절한다. 두 남매는 동물원으로 들어가 잠시 곰을 보다가 피비는 회전목마를 탄다. 그녀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홀든은 이름 모를 행복감 속에서 서부로 달아나지 않고 남아야겠다고 결심한다. 홀든은 다시 한번 이 거친 세상에 순진한 아이들을 지키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기로 결심한다.
  (중략)
  홀든은 자연사 박물관을 특히 좋아하는데, 그 이유를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그대로 보존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자연의 역사는 유리로 된 창 안에 오염되지 않고 순수를 간직하며, 언제 찾아오더라도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순수의 보존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마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처럼, 시간이 흐르면 피비도 순수성을 잃게 될 것이고 타락한 어른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속하는 순수란 없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순수를 상실하고 타락하며,결국 허위와 가식 속에 살게 된다. 홀든의 고뇌는 바로 그러한 필연적 사실의 슬픔을 인식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중략)
  홀든 콜필드가 정신적 편력을 선택하는 두 번째 이유는, 사회제도 속에서 길들여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ㅣ 기성세대로 편입되는 것을 거부하기 위해서다. 우선 홀든은 자신이 다니던 고등학교에서도 기성세대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속물들을 발견하고 좌절한다. (중략)
  홀든의 방랑과 탐색의 또 다른 목적은 자신의 정체성 탐색이다. (중략)사실 그가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밤거리의 방황을 통해 추구하고탐색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이다. 정체성은 물론 타자와의 만남과 연관 속에서 형성되고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한 타자와의 만남에는 언제나 진정한 교류와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문제는 홀든과 그가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 진정한 교류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래서 홀든은 늘 외롭고 고독하다. 그가 보는 성인들의 세상은 모두 허위와 가짜(phony)로 되어 있고, 그는 거기에 혐오감을 느낀다. 홀든이 자주 현기증과 구토증을 느끼는 이유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중략)
『호밀밭의 파수꾼』은 겨울인 크리스마스에 시작된다. 겨울은 모든 것이 죽어가는 계절의 종말이지만, 크리스마스는 새롭게 태어나는 재생을 상징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의 계절적 배경은 순수의 종말과 경험의 탄생을 상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순수성을 지키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비전은 사라졌는지 모르지만, 홀든은 지나간 것들을 그리워하며 회전목마를 타고 있는 어린시절 피비의 환영을 본다. 작품의 마지막에 홀든은 예전에 알고 지냈고 한대는 경멸했던 속물들까지도 보고 싶다고 말하며 그들을 포용하는 제스처를 보여준다.


홀든 콜필드를 위한 변명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한 비판과 옹호
  (생략)
  비판자들은 『호밀밭의 파수꾼』의 언어가 "거칠고 세속적이고 외설적이며, 세상을 가짜라고 비난하는 홀든이야말로 가짜"라고 비난한다. (중략) 그러나 『호밀밭의 파수꾼』의 비판자들이 화를 내는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이 소설이 기성세대의 치부를 과감히 드러내 고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그렇게 인기 있었던 이유는, 당시 전후 젊은 세대가 느꼈던 좌절과 분노를 이 소설이 정확하고도 시원하게 드러내 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의 젊은이들은 그런 '가짜' 세상으로부터 도망침으로써 현실을 개선하고 자신을 향상시키며 순수성을 보존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잇었다. 홀든 역시 끊임없이 서부로 도망치려고 하지만, 결국 이 소설의 메시지는 "우리는 도망칠 수 없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휴 맥리언 같은 사람은 『호밀밭의 파수꾼』을 "출구가 없는 보수주의적 소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부조리한 사회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

  홀든 콜필드는 단순히 성장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성장에 수반되는 고통으로 인해 고뇌하는 젊은이라고 보는 편이 보다 더 정확할 것이다. 예리한 감각과 지각력을 가진 홀든은 진정한 교류와 상호이해가 불가능하며 위선과 허위로 점철되어 있는 성인세계와 기성사회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좌절하며, 구토증을 느끼고 고뇌하는 현대인의 전형이다. 홀든이 단순히 막나가는 반항아가 아니라, 비인간저깅고 허무주의적인 세상에서 윤리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젊은이라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는 그러한 부조리한 상황을 블랙 유머로 시니컬하게 묘사해 독자들을 즐겁게 해준다.
  (중략)
  『호밀밭의 파수꾼』은 그래서 좌절과 부패로 오염되어 있는 어른 세계 속에서 유일한 보람 있는 일은 순수한 어린아이들을 붙잡아 그러한 파괴적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이 소설은 그러한 작업이 사실은 불가능하다는 것, 어린이들의 성장은 멈출 수 없으며 결국 아이들은 순수성을 상실하고 성인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을 인식하고 슬퍼하고 있다. (중략)
  홀든이 뉴욕에서 만나는 옛 애인 샐리는 홀든이 혐오감을 느끼고 도망치려는 맨해튼과 브로드웨이와 록펠러 센터로 표상되는 동부의 상징이다. 비록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에 이끌려 홀든이 혼란을 느끼고 착각을 일으켜 청혼까지 하고 같이 서부로 도망가자고 제안하지만, 샐리는 홀든이 싫어하는 거의 모든 것을 갖춘 여자다. 그러므로 같이 도망가자는 홀든의 제안을 샐리가 거절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반면, 홀든의 여동생 피비는 속물적인 샐리와는 정반대의 인물로서 순수한 어린아이의 상징이고, 따라서 기꺼이 홀든과 같이 서부로 떠나겠다고 따라나선다. (이하 생략)
Posted by Hyo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