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문헌★
김소희 김진경 편저,『20세기 미국소설의 이해2』, 동인 (ISBN 9788955062861)
- p.93-105 영국의 랜덤하우스의 이언 해밀턴과의 재판사건은 아예 뺐음..-ㅅ-ㅋ

1. 샐린저: 참전작가에서 은둔작가로

Jerome David Salinger, 1919-
(생략)아버지는 아들에게 의욕과 야심을 심어줘야 할 필요성을 느껴 여러 학교를 문의한 끝에 체벌과 규율이 엄한 밸리 포지 군사학교에 입학시킨다. 아버지의 기대대로 상당한 규율이 체득되어 학교를 졸업한 뒤 뉴욕대학에 입학하나 마찬가지로 학업에 대한 동기부여나 성취감이 없어 휴학한다. 그는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는 수업의 일환으로 유럽을 동행하며 낙농품 무역에 대해 견학하지만 도살장을 경험한 후 아머지의 사업을 계승하지 않겠다는 것 한가지만은 확실해져 돌아온다.
  (중략)
  스물두 살 때 이미 작가로 문단에 등단하여 유수한 저널에 작품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던 샐린저는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자 그 무엇보다도 현재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입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첫 신검에서는 건강상의 이유로 입대를 거부당했다가 미국이 이차대전에 참전하면서 군대를 재정비할 때 다시 지원하여 1942년 4월에 참전하게 되고 그 뒤 무려 5년여를 영국 프랑스 독일의 전투에 투입된다. 처음 미국 내에 머무를 때나 영국에 파견되어 복무할 때까지는 그의 편지에는 유머스런 톤이 유지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종군작가로 활약하던 유명한 작가 헤밍웨이를 만나 상당히 친밀한 관계를 지속한다. 하지만 전쟁이 계속 끌면서 연합군은 영국해협을 통해 당시 독일군에 점령된 프랑스로 이백 만의 군대를 투입하여 이차대전을 결말짓기로 한다. 1944년 6월 6일 D-Day에 샐린저도 투입되어 무려 네 달 동안 지속되는 지옥의 전투를 수행한다. D-Day전투 후 샐린저의 편지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암울한 톤과 장엄함이 지배한다. D-Day전투 후 샐린저의 편지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암울한 톤과 장엄함이 지배한다. 버넷교수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자기가 목격한 것은 끔찍해서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고 씌여 있다. 「에스메를 위하여-사랑과 비열함으로」("For Esme-with Love and Squalor")에서 X 상사가 D-Day 작전 후 정신신경이 손상된 사람으로 등장하듯 샐린저의 작품에는 전쟁이 인간정신 파괴의 결정인자로서 자주 등장한다. 샐린저가 아직도 대처해야만 하는 또 다른 참혹함이 남아 있었는데 이는 패배한 후에도 게릴라전을 계속하과 있는 독일군을 섬멸하기 위해 그가 속한 4대대가 독일의 산악지대에 공수된 것이다. 이차대전 중 가장 야만적인 전장에 투입된 샐린저는 매일 4대대에서만 6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전투를 네 달 동안 치러내었고 더욱 분노할 일은 그 군사작전은 전혀 불필요한 작전이었다는 소식이었다.
  샐린저는 전쟁 중에도 열편 이상의 단편을 계속 쓰며 잡지에 기고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작전 이전까지는 전쟁에 대해 아직도 환상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들이 등장하기도 했으나, 이 참혹한 전투 후 전쟁에 대해 그의 낭만적 환상은 무너지고 비열하고 잔인한 살상에 대한 분노와 절망이 평생 그림자로 마음에 새겨진다. 이차대전은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샐린저는 신경쇠약으로 일상생활을 지탱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독일의 군인병원에 몇 달 동안 입원한다.(중략)
1931년에 <뉴요커>New Yorker지에 발표한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은 샐린저가 이차대전에 참전하고 있던 동안부터 내내 긴 기간을 두고 씌여진 작품이다. 홀든이 기성사회와 인간들에게 품는 위선과 거짓에 대한 혐오나 심지어는 선행에 대해서까지도 의도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경향은 바로 샐린저의 참전경험의 환멸에서 나왔다. 직접적으로 자신의 일이 아니더라도 정의의 편에 참여하고 싶고 중대한 역사의 현장에 서고 싶다는 낭만적 환상을 가지고 스물세 살 청년 샐린저는 전투에 자원했다가 전쟁의 황당하고 참혹한 소용돌이에 휘말려 하나의 병기나사로 사용되고 폐기되는 경험을 한다. (중략)
  『호밀밭의 파수꾼』이 출판되자마자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몇 달째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자 샐린저는 대중의 환호를 피해 영국여행을 떠나버리고 2쇄 출판 이후부터 책표지에서 자신의 사진을 삭제하게 한다. 그는 그러한 환영에 대해 "약간만 좋았을 분이고 대체로 지나치게 열광적인 듯하고 점차 개인적으로는 부도덕한 느낌이 들었다"고 소감을 표현했다. (중략) 이 열광을 피해 34살 청년 샐린저는 동부 끝에 위치한 뉴햄프셔 주의 숲 속에 집을 마련하여 그곳에서 작품만을 쓰기로 결심한다. (중략)
  그의 괴팍스런 고집스러움은 문단에 등단하면서 부터 마지막까지 자신의 작품을 항상 <뉴요커>지에만 게제하고 완성한 소설을 잡지에 맞는 분량으로 수정하는 수고를 감내하면서까지 자신의 동의 없이는 함부로 수정하지 않는 <뉴요커>지와만 거레한데서도 보인다. 또한 잡지에 기고한 소설을 다시 책으로 출판할 때는 겉표지는 최대한 수수하게 아무런 장식이나 사진 없이 작가소개나 평론도 없이 페이퍼백으로 출판하기를 평생 고집한다. 그나마 그러한 출판도 1970년에는 거부하여 "소설을 쓰기 위하여 자신은 사는 것"이므로 계속 쓰기는 하되 "출판은 프라이버시를 심각하게 침해하므로"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뜻을 출판사에 밝혔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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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붉게 표시한 부분,
호밀밭의 파수꾼 책을 찾았을때 유독 '민음사'에서 나온 책만,
그리고 민음사에서 나온 책들중에서 유독 호밀밭의 파수꾼만 앞에 그림이 없었다.
또 작품해설이 없어서 다른 출판사 책을 빌렸었는데,
민음사, 이 먼 타국에서 작가의 소원을 들어주는...... 좀 멋진데?ㅋ

암튼 야구 금메달 웬걸.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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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호밀밭의 파수꾼』: 대열이탈자의 현실비판

  이 소설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조숙한 열일곱 살 소년 홀든이 캘리포니아의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지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일어난 퇴학의 경험담을 일인칭 독백으로 서술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중략)
70년대에는 가수 존 레논을 암살한 범인이 너덜너덜해진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권총을 싸고 있었고, 80년대에는 연설을 마치고 호텔을 나서는 레이건대통령을 암살 시도한 현장에서도 범인이 이 책을 소중히 소지하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중략)
  『호밀밭의 파수꾼』이 이같이 가장 광범위하게 읽히는 책이면서 동시에 가장 금기시되는 책이 된 이유는 1950년대의 상황과 연관지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차대전으로 강력한 승전국으로 부각된 미국의 1950년대는 정치적 보수주의와 경제호황, 그리고 사회적 순응의 시대로 특징지어진다. 전쟁 후 평화와 번영을 약속한 아이젠하워 대통령 체제에서 미국인들은 현대문명의 특혜를 점차 누리면서 경제성장을 실감한다. 세계대전 후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로 이분된 세계구도가 확립되면서 공산주의자를 색출하자는 매카시즘 광풍이 한바탕 휩쓸면서 미국인들은 경제적 풍요에 대한 댓가로 획일화와 정신적 순응을 내주고 있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바로 그런 시대에 도전했던 신선하고 도발적인 작품이다. 이미 세계대전의 가장 치열한 전투에서 가까스로 살아남는 경험으로 이데올로기의 허상과 전쟁명분의 허울과 인간의 야수성을 체험한 샐린저는 침묵하고 있는 50년대 벽두에 반문화의 원조를 창조한 것이다. (중략) 학교를 떠나 뉴욕거리를 방황하는 홀든의 체제 저항적 태도는 젊은이들의 가슴에 반항의 불을 지피는 기폭제가 된다. 냉전시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으로 젊은이들의 충정과 현실동참을 무조건적으로 요구하는 시대에 반발과 분노를 느끼던 젊은이들은 홀든의 심리에 깊이 동조하며 비트운동, 히피문화라는 반체제 문화현상을 파급시킨다.
  이 책이 미국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데는 이같은 당대의 시사성뿐 아니라 미국문학 전통을 잇는 공시성에서도 기인한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서구문학의 중대한 전통인 추구의 주제를 따르기 때문이다. (중략) 이 추구의 주제가 특히 미국문학에서는 가정의 충실성이나 성공과 신분상승에의 추구처럼 기존의 안정체제로 들어가는 형태가 아니라, 그러한 기존의 틀을 깨고 자신의 자유나 자아에의 충실성을 추구하는 형태로 표출된다. 이러한 주인공들은 자아실현의 추구자이며 다른 시각으로 보면 현실낙오자나 대열이탈자의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미국문학은 자신이 믿는 어떤 순박한 깨달음이나 어떤 개인적인 충실성에 도달하기 위하여 전통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매료되는 특징을 보인다. (중략)
  학교생활에서 정해준 규정대로 따르기에는 고집과 감수성이 강한 홀든은 도시문명과 성인의 세계를 바라볼 때 순응하는 태도가 아닌 의문과 비판이 반사적으로 터져 나온다. 그는 자기 주변의 선배들이 다니는 아이비리그생들의 획일화되고 자만하는 모습을 비판하며 자신은 정해진 목표를 무비판적으로 따르지 않고 거리를 두고 본다. 자신의 아버지같은 변호사는 일한 댓가로 부와 풍족함을 누리는 직업인데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일하는지 아니면 재판에 승소하여 축하받고 명예를 누리는 것이 좋아서 일하는지" 그 의도가 중요하다는 매우 엄정한 기준을 제시한다. 자선활동을 하는 사람이 화려한 외모로 치장하고 할 때 그 본심을 의심하게 되듯이 설령 좋은 일을 하더라도 명성이나 칭송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순수함과 선량한 의도로 해야 한다는 건설적인 비판을 한다. (중략)
소설 중반을 넘어서면서 그의 피로가 누적되고 외로움이 가중되며 뭔가 공포스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더해가면서부터는 "예수의 제자는 짜증난다"라든가 알지도 못한 손님을 위선자라고 부르는 등 일관성 없는 화풀이성 비판경향을 보인다. 계속해서 몇 학교에서 낙제당하고 문제아로 지목된 자신에 대한 원망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으로 자살충동을 강하게 느끼는 시절의 경험인 만큼 어떤 비판은 정당하지 않고 지나쳐서 병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중략) 공간적 이동이 더 이상 해결방식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순전히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겠다고 말하는 데에서는 홀든의 패배주의적 성향이 절정에 이른다. 이처럼 대오이탈자의 두려움을 체험하고 있는 홀든이기에 호밀밭에 서서 아이들이 놀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지키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는 그의 말은 진심으로 받아들여진다.
  (중략) 이것은 현실의 끈을 놓아버리고 자살해 버릴 것 같은 자신의 절절한 경험에 비추어 어린이들이 추락하거나 타락하는 것을 어떻게든 막고 싶어하는 본능적인 꿈이다. 하지만 순진한 동생 포비의 애정에 힘을 얻어 현실을 대면할 용기를 얻게 되면서는 추락에 대한 강박관념이 사라진다. (중략) 추락에 대한 강박적인 두려움이 차츰 완화되고 오히려 실패의 경험까지도 중요하다는 경험의 의미를 깨닫고 외면적으로는 잃어도 내면적으로는 얻는 것의 비중을 측정할 줄 알게 된 것이다.
  (중략) 홀든은 한길로 매진하는 사회의 모습을 거리를 두고 보면서 상당부분 정당한 비판을 하고 대열이탈자로서의 극심한 긴장과 절망을 솔직하게 토로하며 사회인습의 나쁜 면이 자신에게도 존재하고 있음이 과정 중 저절로 드러나게 하는 아이러닉한 태도를 견지한다. 샐린저는 현대문명의 상당 부분이 허위의 가치 위에 기초해 있다는 사실을 도식적인 사회분석이나 개인의 자기변호 방식에 기대지 않고 한 소년의 성장기중 어떤 위기의 와중에 겪은 경험을 매개로 하여 그려내는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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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림

2008. 8. 14. 21:54 from 서재/접어둔 페이지

  그때 창밖에 연붉은 스웨터를 입은 누나가 어른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시집을 덮고 누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모르고 있었으나 누나는 책을 읽고 있는 나를 한참동안이나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무슨 책 읽노?"
  창이 닫혀 있어 무슨말인지는 잘 들리지 않았으나 누나의 입모양으로 봐서 그런말인 것 같았다.
  "시집 읽는다."
  나도 소리를 내지 않고 입만 벙긋거리는 말을 했다.
... 정호승 <나의 첫키스> p.12



  사람에겐 누구나 도저히 객관화되지 않는 자기만의 열등감이나 외로움이 있을 것이다. 홀로 있는 시간, 정신이 아파 울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리라. 그것은 가진 게 부족하여 욕심에 겨운 비명도 아니요, 진짜 불행이 뭔지도 모르는 배부른 투정도 아닐 것이며, 말 그대로 정신이 아파 죽고 싶을 만큼 꺽꺽 우는 울음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기쁨과 위안이 되길 늘 소원의 첫째 자리에서 기도해왔으면서도 어찌 보면 나는 내게 기쁨이 되고 위안이 되는 사람을 기다려온 건 아닌가 생각해본다.
  (중략)
  나이가 드는 건지 이제야 철이 드는 건지 내가 가진 그릇이 너무 작고도 가볍다는 사실이 문득문득 깨달아지고 그럴 때마다 아직도 그걸 인정하기 싫어 마음으로 비명을 질러보기도 한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내게 주어진 시간과 사람을 사랑하며 살았다고 내가 나에게 큰소리로 또박또박 말해보기도 하지만 이 거대한 세상 속에서 나는 무엇을 얼마만큼 이루어냈을까? 내 체온으로 한 사람의 어깨라도 데웠을까?
  바늘 같은 감정은 하루에도 수천 번씩 나를 찌르고 그 속에서 악악대며 내 아픔만 누구에게 호소하진 않았는지, 그러면서 나를 쉬게 해줄 그 어떤 포근함과 너그러움만 자꾸자꾸 달라고 조르진 않았는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절대의 사람이 되고 싶다는 기도가 결국은 내 얇은 허영은 아니었는지.
... 서석화 <그 사람은 내 귀 안에 산다> p.137-138



-김용택 정호승 도종환 안도현 외, 『떨림』, 랜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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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8)
  지나가던 고양이 그림자가 달빛에 어른거리는 것이 눈에 띄자 자세히 보려고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50피트 떨어진 곳에 또 한사람의 모습이 이웃집의 그림자 속에서 나타나 두 손을 호주머니에 찌른 채 서서 은빛 후춧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별들을 바라보고 잇었다. 한가로워 보이는 동작과 잔디를 굳게 딛고 선 안정된 자세로 미뤄 보아, 바로 어디까지가 자기 몫의 하늘인지 살펴보려고 나온 개츠비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를 부르려고 마음먹었다. 베이커 양이 저녁을 먹으면서 그에 관해 얘기했던 것으로 소개는 충분할 것 같았다. 그러나 갑자기 그가 혼자 있고 싶다는 암시를 보냈기 때문에 나는 그를 부르지 않았다. 그는 두 팔을 어두운 바다를 향해 뻗었는데, 나는 멀리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 그가 부르르 몸을 떨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무의식중에 나도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조그맣게 반짝이는, 부두의 맨 끝자락에 있는 것이 틀림없는 단 하나의 초록색 불빛을 빼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다시 개츠비를 쳐다보았을 때 그는 그 자리에 없었고, 나는 어수선한 어둠 속에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p.133~134)
  집 안을 구경한 뒤 우리는 저택의 대지와 수영장 그리고 수상 비행기와 한여름의 꽃들을 둘러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개츠비 저택의 창밖으로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우리는 나란히 서서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안개만 끼지 않았더라면 만 건너에 있는 당신 집이 보였을 겁니다." 개츠비가 말했다. "그곳의 부두 끝에는 항상 초록빛 불이 켜져 있더군요."
  데이지는 느닷없이 개츠비에게 팔짱을 끼었지만 그는 자기가 방금 한 말에 대해 정신이 팔려 있는 것 같았다. 아마 그 불빛이 지니고 있던 엄청난 의미가 이제 영원히 사라졌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그를 데이지와 갈라놓았던 머나먼 거리와 비교해 보면 그 불빛은 그녀와 아주 가까이, 거의 손으로 만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는것 같았다. 달 가까이 있는 별처럼 그렇게 가깝게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다시 부두에 켜져 있는 초록 불빛에 지나지 않았다. 그에게 마법을 부렸던 물건들 중 하나가 줄어든 것이다.




(p.255)
  나는 그곳에 앉아 그 오랜 미지의 세계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개츠비가 부두 끝에 있는 데이지의 초록색 불빛을 처음 찾아냈을 때 느꼈을 경이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는 이 푸른 잔디밭을 향해 머나먼 길을 달려왔고, 그의 꿈은 너무 가까이 있어 금방이라도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았으리라. 그 꿈이 이미 그의 뒤쪽에, 공화국의 어두운 벌판이 밤 아래 두루마리처럼 펼쳐져 있는 도시 저쪽의 광막하고 어두운 곳에 가 있다는 사실을 그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김욱동 옮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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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와 π와 i 를 곱한 수로 거듭제곱하여 1을 더하면 0이 된다.
  나는 다시 한 번 박사의 메모를 쳐다보았다. 한없이 순환하는 수와, 절대로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수가 간결한 궤적을 그리며 한 점에 착지한다. 어디에도 원은 없는데 하늘에서 π가 e 곁으로 내려와 수줍음 많은 i 와 악수를 한다. 그들은 서로 몸을 마주 기대로 숨죽이고 있는데, 한 인간이 1을 더하는 순간 세계가 전환된다. 모든 것이 0으로 규합된다.
  오일러의 공식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한 줄기 유성의 빛이었다. 어둠의 동굴에 새겨진 시 한 줄이었다. 거기에 담긴 아름다움에 감동하면서 나는 메모지를 다시 정액권 지갑에 넣었다.


-오가와 요코, 『박사가 사랑한 수식』, 김난주 옮김, 이레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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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이주영, 『세계 각국사 시리즈 미국사』, 대한교과서 주식회사 (ISBN 89-378-3080-9, ISBN 89-378-3060-4(세트))
이주영 외 4명, 『미국 현대사 - 진주만 기습에서 클링턴 정부까지』, 비봉출판사 (ISBN 89-376-0182-6)
유종선, 『주머니 속의 미국사 - 신대륙발견에서 9·11테러까지』, 가람기획 (ISBN 978-89-8435-167-7)
앨런 브링클리,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 3』, 휴머니스트 (ISBN 978-89-5862-081-0, ISBN 978-89-5862-032-7(세트))
 - 세계 각국사 시리즈 미국사 p.262~273 적색, 미국 현대사 p.13~20 녹색, 주머니 속의 미국사 p.220~227 청색,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3 p.60~97 자색으로 표시하고 생략과 중략표시는 하지 않았다.


1920년대 번영기와 유산
  1920년에 대공황이 일어나기 전까지 미국은 근본적으로 자유방임주의 이론에 토대를 둔 자유기업(free enterprise) 체제의 나라였다.
  1920년대의 미국은 지상에 최초로 나타난 진정한 소비 사회(consumer society)였다. 그것은 부자들뿐만 아니라 평민들까지도 단순한 필요를 넘어 쾌락을 목적으로 물건을 살 수 있게 된 사회였다. 웬만한 중산계급 가정이면 냉장고, 세탁기, 진공청소기를 보유하였다. 새로운 소비지상주의(consumerism)는 자동차의 보급에서 가장 잘 나타났다.
  이처럼 미국 사회를 번영시킨 데 대한 공로(功勞)는 기업가들과 기술자들의 천재성으로 돌아갔다. 그러므로 1920년대는 기업가와 기술자들에 대한 존경심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였다.

기술, 조직, 경제적 성장
  경제적 호황은 많은 요인들이 종합적으로 이루어낸 결과였으나,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기술력이었다. 일관 작업 라인(assembly line)과 그 외 기술이 발전한 결과, 자동차 산업은 이제 미국의 가장 중요한 산업 중 하나가 되었다. 자동차 산업이 발달하자 다른 관련 산업도 활기를 띠게 되었다. 자동차 제조업자들은 철, 고무, 유리 제품과 공구 회사를 사들였다. 자동차 소유자는 정유 회사에서 가솔린을 구매했고, 도로 건설이 중요한 산업이 되었다. 자동차로 인해 이동성이 증가하자 교외 주택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고, 이에 따라 건설업이 번성했다.
  기술 혁신의 혜택을 입은 또다른 산업들도 경제 성장에 기여했다. 라디오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초기 라디오는 펄스(pulses)를 통해서만 방송할 수 있었다. 모스 부호(Morse code)를 써야만 라디오 방송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캐나다의 과학자 레지널 페선든(Reginal Fessenden)이 최초로 변조(modulation) 이론을 발견함으로써 음성과 음악을 전파를 통해 전송할 수 있게 되었다. 1925년까지 미국 가정에 200만대의 라디오 세트가 보급되었고, 1920년대 말까지 거의 모든 가정이 라디오 세트 하나씩은 다 보유하게 되었다.
  비행기가 우편물을 배달하는 데 이용되면서, 1920년대에 상업 비행은 서서히 발전했다. 기차는 디젤-전기 엔진의 개발로 더욱 빨라지고 효율적이 되었다. 전자, 가전, 플라스틱, 나일론과 같은 인조 섬유, 알루미늄, 마그네슘, 석유, 전기, 그리고 다른 산업들이 기술의 진전에 힘입어 급속하게 성장했다. 전화도 계속 급격히 늘어갔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미래의 산업을 혁신시킬 싹이 보였다. 영국과 미국, 양국에서 과학자와 공학자들을 원시적인 계산기를 좀더 복잡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구로 변환시키려는 연구를 계속했다. 1930년대 초, 베너바 부시(Vannervar Bush)가 이끌던 MIT의 연구자들은 다양한 복합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구, 즉 최초의 아날로그 컴퓨터를 발명했다.

소비주의와 대중매체
  1920년대의 미국은 소비 사회였다.
  광고 산업계는 소비주의의 등장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광고 산업이 수비주의를 창조하는 데 큰 역할한 것일 수도 있다.) 1920년대에 들어와 광고의 시대가 도래했는데, 이는 전시(戰時) 선전술의 발달에 힘입은 면이 있다. 광고업자들은 단순히 정보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을 특정 생활 양식과 동일화하려 했다. 이들은 또한 대중이 광고와 세일즈맨의 가치를 알고, 효과적인 광고와 광고인을 높이 평가하도록 부추겼다. 1920년대에 가장 성공한 책 중 하나는 광고 회사의 간부 브루스 바튼(Bruce Barton)이 지은 『아무도 모르는 사람(The Man Nobody Knou's)』이었다. 이 책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종교적 선지자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세일즈맨(super salesman)'이라고 그리고 있다. 바튼의 메시지는 새로운 소비 문화 정신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예수는 현세에서 완전하고도 보상받는 삶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며, 20세기 인들은 예수처럼 현세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광고 산업은 다수의 청중에게 빠르고도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대중 매체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없었을 것이다. 신문은 전국적 유통망을 통해 보급되었고, 잡지는 대량 유통되어 전국의 독자를 매혹시켰다. 영화는 좀더 대중적이며 강력한 대중 정보 전달의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대중 매체는 라디오였다.

심리학과 정신 의학
  1920년대에 점점 풍요해지고 소비주의가 성장하면서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새로운 위기를 느끼게 되었다. 소비 시대의 특징적 병증으로서 '불안'과 '소외'가 생겼고, 이와 동시에 심리학과 정신 의학에서 신이론이 등장했다. '불안'과 '소외' 두 가지 현상 공히 의학과 과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새로이 등장한 신이론은 강화시키고 확산시켰다.
  20세기 초 이래, 미국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Siegmund Freud)와 칼 융(Carl Jung)의 이론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데 일부 힘입어 정신 의학이 확산되고 있었다. 프로이트와 융은 여러 면에서 매우 이질적이었으나, 이들은 정신적 문제의 뿌리를 찾아 내는 한 방법으로 무의식의 탐구가 합리적인 것이 되도록 지원했다. 프로이트가 개척하고 융이 발전시킨 정신 분석은 1912년 초 미국의 동조자들을 매혹시켰고, 1920년대에 널리 보급되었다.

전후의 번영
  이 시기에는 경제발전과 더불어 기업운영과 체제에 있어서도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 주식시장을 통한 주식의 분산, 소유와 경영의 분리 현상이 보편화되었다. 사주나 대주주가 아닌 전문경영인들이 실질적으로 기업을 이끌었고, 주식 배당금을 늘려 받기를 원하는 주주들과 배당금을 신규투자로 돌리려는 경영자들 사이에서 회사경영을 둘러싼 마찰이 심심찮게 일어났다.
  그러나 경제성장이 모든 면에서 좋은 결과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빈부격차의 심화였다. 1920년대 절정을 이룬 자유시장경쟁의 경제성장의 과실이 기업가와 일부 부유층에 주로 돌아가도록 함으로써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낳았다. 연수입이 최저생계비인 1,500달러에 미치지 못하는 가구 수가 전체의 40퍼센트나 되었다. 반면 소득면에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던 가구는 전체의 30퍼센트 정도에 불과했다.
  부품 표준화와 공장 자동화, 분업에 의한 조립라인의 일련 공정화 등으로 기업가들은 물건을 보다 싼 값에 대규모로 생산할 수 있었지만, 노동자들은 단순작업을 되풀이하는 '기계'로 전락했고 그나마도 기계에 밀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모든 분야에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거대기업이 들어서면서 소규모 자영업자들도 파산을 면할 도리가 없었다. 1920년대 말에 이르러 산업성장의 그늘진 구석에는 구조를 갈망하는 거대한 실업자군이 늘어갔다.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실업자들이 늘어나면서 당연히 사회적 구매력은 급속히 저하되었다. 대량생산으로 상점마다 물건이 넘쳐나는데 구경꾼들은 이를 살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마르크스가 예언한 것처럼 과잉생산과 유효수요 부족이라는 자본주의의 병폐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경제성장과 풍요의 환상에 젖어 있을 때 미국의 경제는 조용히 파국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개인주의와 번영의 약속
  1920년대의 기업 문명의 공식 철학은 자유방임주의, 즉 개인들 사이의 자유로운 경쟁의 원리였고, 바로 그 원리 위에 미국적인 체제(American System)가 놓여 있었다. 미국적 체제는 오랫동안 미국인의 국민적 특성이었던 개인주의 철학이 구현된 상태였다.
  그러므로 1920년대초에 공화당 행정부를 이끌었던 워렌 하딩(Warren Harding) 대통령은, "모든 인간의 문제가 법(法) 제정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전세계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창의력, 근면성, 도덕성을 가지고 있으면 재부(財富)와 명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개인주의자들의 근본생각이었다.
  이와 같은 자수성가인(self-made man)의 이상은 미국 역사에서 항상 존재해 왔다. 그리고 그러한 신화는 1920년대에도 상당한 현실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거은 세 명의 시대적 영웅을 통해 사실임이 입증되었다.
  첫번째 영웅은 전등과 수많은 가전 제품들을 발명한 토마스 에디슨(Thomas Edison)이었다. 두번째 영웅은 자동차 왕이며 이동조립 공정의 창시자인 헨리 포드(Henry Ford)였다. 그리고 세번째 영웅은 작은 비행기로 대서양을 단독 비행한 모험가 찰스 린드버그(Charles A. Lindbergh)였다.
  그들은 모두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자수성가인이었다. 그러면서도 현대적인 기술을 체득한 선각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각 개긴으로 하여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가고 싶은 대로 두라"는 자유방임주의의 신봉자들이었다.

공화당과 자유방임주의
  이러한 국민 철학을 정치적으로 표현한 정당이 공화당이었다. 그러므로 번영의 1920년대를 전후한 12년 동안 공화당이 집권했던 사실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공화당 행정부의 자유방임주의는 주로 빈민에 대한 정부 지원을 없애기 위해 정부 예산의 삭감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것은 노동자나 농민과 같은 불만 세력을 억제함으로써 기업가의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하는 친기업(親企業)정책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재무 장관 앤드루 멜론(Andrew Mellon)은 부자에게 부과된 개인소득세와 상속세를 줄여 줌으로써 기업의 이윤을 크게 해주었다.
  대법원장 윌리암 태프트(William Howard Taft)가 이끄는 법원도 연방 정부의 친기업적 성향을 더욱더 강화해 주었다. 그리하여 대법원은 소년 노동을 규제하고 여성에게 최저 임금을 보장하려는 진보적인 법을 무효화시킴으로써 기업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제거하려고 하였다.

노동운동에 대한 적대감
  자유방임주의는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으로 나타났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1919년의 대파업이 공산주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 기업가들은 노조 운동이 근본적으로 미국의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음모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노동운동은 그 자체가 비미국적(un-American)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미국적 체제를 유지하는 방법은 노동자의 노동조합 강제 가입이 허용되지 않은 개방 공장(open shop)제도의 확대뿐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때문에 전국제조업자협회는 개방공장제도를 가리켜 "미국적 계획"(American Plan)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에 대한 복지는 고용주들의 자발적인 협력으로 이루어져야만 했다. 실제로 1920년대에 기업가들은 국가를 대신해서 노동자들을 달래기 위한 복지 혜택을 마련하였다. 그것은 당근과 채찍(carrot and stick)의 방법에서 당근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와 같은 후견주의적인 방법은 복지자본주의(welfare capitalism)라고 불리었다.
  따라서 헨리 포드와 같은 대담한 기업가들은 고용인의 작업 시간을 파격적으로 줄이고 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한편, 유급 휴가 제도를 도입하였다.
  따라서 복지자본주의는 근로자들로 하여금 기성체제를 받아 들이게 하는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지식인과 대중의 간격
  기업적 가치관이 지배하게 됨에 따라, 1920년대의 미국 사회는 그것에 적응하려는 순응(conformity)의 정신이 우세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에 대해 지식인들은 반발하였다. 그 때문에 지식인들은 기업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는 대중과 멀어지게 되었다. 지식인들은 H.L 멘켄처럼 근검, 절약, 성공을 강조하는 청교도적인 가치관을 따르는 대중을 경멸하였다. 그리고 대중에 토대를 두고 있는 민주주의 제도를 조롱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지식인들이 기성 체제를 바꿀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기존의 사회로부터 스스로 격리되고 소외되었다. 그들은 갈길을 모르는 '방황하는 세대(Lost Generation)'가 되었다.
  그리하여 지식인들은 물질주의, 소비주의, 청교주의가 지배하는 답답한 사회 분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뉴욕시의 그리니치빌리치 같은 곳으로 도피하였다. 그리고 멀리 대서양 건너편의 유럽으로 도피하여 중세적인 분위기에서 안도감을 찾으려고 하였다.
  이러한 지식인들은 대부분 문인이었으므로, 소설을 통해 미국의 기업 문명을 비판하였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라는 소설에서 지식인들에게 환멸을 가져다 준 사회 모습을 그리고,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는 지식인들의 환멸과 냉소주의의 뿌리가 제1차 세계 대전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시어도어 드라이저는 『아메리카의 비극』에서 성공 만능주의 때문에 한 청년이 당하고 있는 혼란을 고발하였다. 싱클레어 루이스는 『메인 스트리트』에서 우둔함이 판치는 도시 생활을 조롱하고, 『배빗』에서는 기업가들이 획일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인 것을 조롱하였다.
  F. 스콧 피츠제럴드는 『낙원의 이쪽』과 『위대한 개츠비』에서 미국의 상류 계급이 얼마나 속물적인지를 보여주었다. 존 도스 페이소스는 『세 병사』에서 자본주의 자체를 공격하였다.

공화당과 청교도적 가치관
  미국의 자유방임적 체제를 지지한 사람들은 단순히 부유한 기업가들과 보수적인 공화당 정치가들만이 아니었다. 지지자들 가운데 문화적인 전통주의자(cultural traditionalist)로 불리는 농촌지역의 백인 중산계급들도 있었다. 그들은 대체로 프로테스탄트 교도로서 개인주의 정신과 칼빈주의 신앙(Calvinism)의 가치관을 숭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러한 전통적인 중산계급의 가치가 외국으로부터 들어 온 이질적(異質的)인 요소들에 의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고 두려워하였다. 그러한 위험한 요소는 그릇된 사고방식을 가진 카톨릭교도, 유대인, 흑인, 공산주의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외래적(外來的)인 요소는 도시에서 우세했기 때문에 특히 그들은 도시가 농촌지역의 전통적인 프로테스탄티즘의 도덕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분개하였다. 따라서 문화적 갈등은 농촌과 도시의 대립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들 백인 중산계급의 분노는 1920년에 술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하는 금주법(Prohibition)을 시행하도록 하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음주는 매음, 조직범죄와 같은 전반적인 사회적 타락의 원인이었다. 그들은 미국의 도시들이 외국에서 새로운 들어 온 이방인들로 들끓고 있는 데 대해 불안감을 느꼈다. 외국의 낯선 언어, 낯선 복장, 낯선 습관, 낯선 종교 행사를 보면서, 그들은 미국이 외국인들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음을 느꼈다.
  특히 그들은 이탈리아를 비롯한 남(南)유럽의 카톨릭 국가들에서 쏟아져 들어 오는 수준 낮은 이민들과 그들의 알콜 문화에 대해 경계하였다. 그리고 독특한 문화를 고수하는 유대인들에 대해 증오심을 느꼈다. 그러므로 금주(禁酒) 운동은 단순한 음주 문제를 초월하여 변화하고 있는 미국 사회 안에서 옛날의 미국을 지키려는 노력을 의미하였다.

금주법
  1920년 1월에 주류 판매와 제조를 금지하는 법안이 발표되자, 중간 계급과 혁신주의자로 자처하던 이들의 대다수는 이를 지지했다. 그러나 1년도 못 되어, 금주론자들이 지칭했던 '고상한 실험(noble experiment)'이 잘 되지 않고 있음이 명백해졌다. 금주법이 시행되자 미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음주가 상당히 줄어들긴 했으나, 그와 함께 위법 사태도 속출했다. 오래지 않아, 과거에 합법적으로 주류를 구매했던 것처럼, 미국의 많은 곳에서 불법 주류를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합법적 기업가들이 거대하고 이윤이 많은 주류 사업을 할 수 없게 되자, 범죄 조직들이 그 사업을 인수했다.
  처음에 금주를 지지했던 많은 중간 계급의 혁신주의자들은 곧 이 실험에 시들해졌다. 그러나 지방의 농촌 지역에 주로 거주하는 개신교도 미국인인 많은 유권자들은 금주를 열성적으로 지지했다. 그들에게 있어 금주는 미국의 전통적 도덕관과 윤리를 수호하려는 노력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음주는 현대 도시와 가톨릭 교도 이민자들과 결부되어져, 전통적 미국을 대치하려고 한다고 그들이 생각한 새로운 문화의 상징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금주 반대자(또는 '음주자')는 서서히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1933년, 대공황이 일어나 금주 반대자의 주장이 힘을 얻게 되자, 마침내 '금주론자(drys)'를 효과적으로 공격하고, 헌법 수정 조항 18조를 폐지할 수도 있었다.

공화당과 토착주의
  이러한 토착주의(nativism)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났는 데, 가장 두드러졌던 것이 "큐클럭스클랜"(Ku Klux Klan)조직이었다. 그들은 미국적 생활속에서 외래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려고 하였다.
  외래적인 요소에 대한 두려움은 종교적인 극단주의의 형태를 띄기도 하였다.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은 지방적, 농촌적인 사람들로서 도시인들과 지식인들이 과학화와 현대화의 이름으로 미국의 전통적인 신념들을 말살하는 데 대해 분개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창세기>의 천지 창조 내용을 부정하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반대하고, 그 대신 성경이 문자 그대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근본주의(fundamentalism)의 신앙을 내세웠다.
  따라서 문화적 전통주의자들은 정치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하고 민주당에 반대하였다. 그들은 도시의 노동자, 카톨릭, 이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민주당은 비미국적(非美國的)인 정당으로 불신하였다.

'악의 꽃'- 대공황
  국내적으로 1922년부터 신흥공업과 새로운 생산기술의 급격한 발달이 이루어졌고, 산업 전반에 걸친 기계화, 기업조직의 거대화, 새로운 기업경영 방식의 도입, 그리고 신용제도의 정비로 미국 자본주의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1927년에 이르러 미국 경제는 사상 최대의 호황을 맞는다.
  하지만 이러한 번영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는 구조적으로 심각한 문제점들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장 심각한 것이 계층간 소득의 불균등 분배였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일부 계층에만 국한되어 국민의 5퍼센트에 해당하는 상류 부유층이 소득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대다수 국민의 구매력은 별로 늘어나지 않았고, 이에 따라 공장 창고들에는 소비되지 못한 물건들이 쌓여갔다.
  1920년대의 번영으로 전체 소득도 늘어나고 저축도 증가했으나 성장이 정체되면서 돈을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고 점차 증권 등 투기시장으로 몰려들었다. 물론 증권을 사는 것 자체가 투기라고 볼 수 없지만 문제는 증권시장을 통해 기업으로 흘러들어간 엄청난 규모의 자금이 투자로 전환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한편 여유자금이 과도하게 증권시장으로 몰려들면서 주가가 기업체의 실질가치 이상으로 올라가는 이른바 주식시장의 거품현상이 나타났다. 주가가 계속해서 상승하면서 더 많은 돈이 증권시장으로 몰리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결국 1929년 들어 주가폭락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나 증권투자의 열기는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러한 우려는 드디어 1929년 10월,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주가가 폭락하는 '파탄(The Crash)'으로 이러졌다. 주가의 폭락으로 기업들은 엄청난 자산손실을 입었고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해 파산하는 기업들이 속출했다. 기업들의 연쇄파탄으로 경제 전체가 붕괴하는 대공황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주식시장의 파탄이 대공황의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주식시장의 파탄은 대공황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에 불과할 뿐, 공황의 직접적 원인은 그 동안 경제성장의 모순이 누적되어온 데 있었다. 소비가 따라가지 못할 만큼 늘어난 과잉생산, 또는 생산을 따라갈 만한 유효수요의 부족이 대공황의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이유였다.

결론
  1920년대의 괄목할 만한 번영은 활기 넘치던 당대인들이 '새로운 시대'라 칭하던 것의 많은 부분을 만들어 냈다. 1차 세계 대전 이후에 미국은 활력 있는 전국적 문화를 만들어 냈다. 중간 계급은 성장하는 소비 문화에 젖어 갔다. 정치는 호황을 이루던 상호 의존적 산업 경제의 필요에 부응하여 재조직되었으며, 전(前) 세대의 개혁을 위한 많은 시도들을 거부했고, 새로운 기구들을 창설하여 경제 성장과 안정을 증진하는 데 지원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의 화려한 겉모습 이면에는 상당한 논란과 불평등이 있었다. 미국 산업사에 있어 1920년대의 번영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널리 확산되었지만, 인구의 절반 이상이 성장의 진정한 혜택을 조금도 맛볼 수 없었다. 수백만의 도시 중간 계급은 새롭고 낙관적이며 세속적인 문화에 매혹되었다. 그러나 다른 많은 미국인들은 새로운 문화에 경악했으며, 대단한 열정으로 그에 맞서 싸웠다. 이 시대의 매력 없는 보수적 성향의 대통령들은 안정의 시대를 제시했으나, 실제로는 현대 미국의 역사에서 1920년대만큼 정치, 문화적 갈등이 많았던 시기도 없었다.
  1920년대는 파멸적인 붕괴로 막을 내렸고, 그 후 경제 붕괴는 이 시대의 대한 이미지를 고착시켰다. 1930년대의 위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에 이루어낸 경제적 성과를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1920년대의 번영에만 주목하여, 그 이후 고통을 시대를 산출하는 데 일조한 이 시대의 불평등과 불안정을 간과해서도 안 될 것이다.

Posted by Hyos :
★참고문헌★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김욱동 옮김, 민음사
(ISBN 978-89-374-6075-3, ISBN 978-89-374-6000-5(세트))
-p.257-277  대충 시대적, 지리적, 보편적, 국가적(종교적), 형식적 특징에 대해 순서대로 나열되어있는 듯 하다. 파란색 굵은 글씨로 어림잡아 구분해 놓았다. 컹=ㅅ=


작품해설

  (앞부분 생략) 1920년, 그러니까 겨우 스물세 살의 젊은 나이로 문명(文名)을 떨치던 무렵 그는 "모든 작가는 자기 세대의 젊은이들, 다음 세대의 비평가들, 그리고 그 뒤의 영원한 미래 세대의 교육자들을 위하여 작품을 써야 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일반 독자에서 비평가를 거쳐 교육자에 이르기까지 그가 예상했던 독자의 폭이 꽤 넓다는 데 새삼 놀라게 된다.
  (중략) 포크너와 헤밍웨이와 더불어 그는 20세기 미국 소설의 삼총사로서 좁게는 현대 미국 소설, 넓게는 미국 문학, 그리고 더 넓게는 세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그 위치를 굳혔던 것이다.
  (중략)

  피츠 제럴드의 작품이 으레 그렇듯이 『위대한 개츠비』에도 작가가 살아온 고단한 삶의 궤적이 깊이 새겨져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작품은 작가의 정신적 편력을 기록해 놓은 자서전이나 전기로도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작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사랑과 젊음, 재산과 그것이 가져다주는 안일과 여유는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중요한 주제이다. 작가는 짧다면 짧은 생애 동안 물질적 성공을 이룩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작가의 이러한 태도는 주인공 제이 개츠비를 통하여 그대로 나타난다. 작가와 개츠비는 물질적 성공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만큼 그들이 느끼는 실망과 좌절도 무척 컸다. 그리고 개츠비가 가지고 있던 무한한 꿈과 이상의 상징이라고 할 데이지 뷰캐넌은 여러모로 작가의 아내 젤더 세이어와 비슷하다. 결국 개츠비와 피츠제럴드에게 데이지와 젤더는 하늘에 걸린 무지개처럼 한낱 이룰 수 없는 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피츠제럴드는 작품의 주제가 지나치게 남녀의 애정과 물질적 성공에 국한되어 있다는 비판을 자주 받았다. (중략) 소설가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소재를 다루느냐가 아니라 그 소재를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삶에서 가장 깊은 관심을 기울여온 소재를 택하여 그것을 설득력 있게 소설 작품으로 형상화하였던 것이다.
  한편 『위대한 개츠비』는 시대 의상처럼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미국의 사회상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중략) 피츠제럴드만큼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의 삶을 실감나게 표현한 작가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 무렵에 활약한 어느 작가보다도 그는 미국 사회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그를 두고 흔히 '재즈 시대의 왕자'라고 일컫는 것도 그렇게 무리는 아닌 듯하다. 재즈 시대란 바로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세계대전을 겪은 뒤 서구 문명 자체에 깊은 회의를 보이면서 재즈에 심취하던 미국의 1920년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재즈 시대와 관련하여 피츠제럴드는 어느 작품에서 "그것은 기적의 시대였고, 예술의 시대였고, 과도의 시대였으며, 풍자의 시대였다."고 밝힌 적이 있다.
  1910년대 미국의 삶을 이해하려면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시스터 캐리』(1900)를 읽어야 하고 1930년대 미국의 삶을 이해하려면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1939)를 읽어야 하듯이, 1920년대 미국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야 한다. 재즈와 찰스턴 춤과 자동차가 상징하는 1920년대 미국의 사회 현실이 이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은 유럽과는 달리 경제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특히 상류 계층에게는 재산을 늘릴 수 있는 최적의 시대였다. 이 무렵에 나온 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1922년부터 1929년 사이에 주식의 수익 증가율은 무려 108퍼센트에 달하였다. 기업은 이익이 76퍼센트 증가하였으며 개인의 수입도 33퍼센트나 늘어났다. 이 소설의 화자인 닉 캐러웨이가 증권업에 종사하기 위하여 뉴욕에 온 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경제적 붐은 마침내 1929년에 월스트리트의 증권 시장이 몰락하면서 경제 대공황을 가져오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 성장의 그늘에는 도덕적 타락과 부패가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었다. 톰 뷰캐넌과 개츠비가 타고 다니는 번쩍거리는 고급 승용차, 개츠비가 주말마다 벌이는 사치스러운 파티와 마치 '불빛을 쫓는 부나비처럼' 환락과 쾌락을 찾아 헤매는 젊은이들, 톰과 데이지가 보여주는 도덕적 혼란과 무질서와 무책임은 바로 전쟁이 끝난 뒤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방황하던 이 무렵의 시대적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피츠제럴드의 한 단편 소설의 제목을 그대로 이 무렵의 미국은 말하자면 '현대판 바빌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톰의 저택이나 개츠비의 파티처럼 겉으로는 우아하고 고상하며 화려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놓고 보면 탐욕과 이기와 정신적 공허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도덕적 타락은 닉 캐러웨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인물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도덕적 타락과 부패 그리고 무책임성은 톰 뷰캐넌과 데이지를 비롯하여 개츠비의 친구요 후견인인 마이어 울프심, 데이지의 친구이자 프로 골프 선수인 조던 베이커에게서도 잘 드러난다. 톰과 데이지는 여러모로 도덕적 마비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울프심은 1919년 월드 시리즈를 조작할 만큼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조직 폭력계의 거물이다. 닉과 잠시 사귀는 조던은 골프 시합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경기를 하는 등 닉의 말대로 "구제할 수 없을 만큼 부정직한" 인물로 밝혀진다. 작품의 첫머리에서 닉이 이 세계가 제복을 입고 '도덕적인 차렷' 자세를 하고 있기를 바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미국 역사를 통틀어 이 무렵만큼 도덕적 재무장이 절실히 요구되던 때도 일찍이 없었던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에서는 시간적 배경 못지않게 공간적 배경도 자못 큰 의미를 지닌다. 이 작품은 뉴욕 시 근교의 롱아일랜드 마을을 지리적 배경으로 삼는다. 웨스트에그와 이스트에그는 피츠제럴드가 한때 살았던 그레이트넥과 그 근처 맷해싯넥을 모델로 삼은 곳이다. 그런데 달걀 모양을 하고 있는 이 두 지역은 단순히 지리적 배경에 그치지 않고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을 잘 보여준다. 대서양 쪼으로 좀 더 멀리 자리 잡고 있는 이스트에그는 톰과 같이 재산을 세습받은 부유한 귀족들이 살고 있는 곳인 반면, 뉴욕 시 쪽에 좀 더 가까운 웨스트에그는 개츠비처럼 갑자기 떼돈을 번 신흥 부자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조지 왕조 시대의 식민지풍으로 지은 톰의 저택과 노르망디 시청을 본떠 지은 개츠비의 저택은 집주인의 사회적 신분과 가치관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스트에그와 웨스트에그의 대조는 더 나아가 미국 동부지역과 중서부 지역의 차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동부와 중서부의 대조는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뉴욕을 중심으로 한 동부 사람들은 흔히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퇴폐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동부 사람들은 물질적 부(富)와 세련미와 교양을 갖추고 있지만 도덕적, 윤리적으로는 거의 무정부 상태에 있으며 부주의하고 무책임한 행동 양식을 보인다. 한편 닉 캐러웨이가 대변하는 중서부 지방 사람들은 비록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는 못할망정 아직 타락하지 않은 도덕적 순수성과 청교도주의의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 또한 닉의 집안 식구들에게서도 볼 수 있듯이 가족 간의 유대나 결속이 아직도 끈끈하게 남아 있다. 동부의 물질적 가치관과 중서부의 정신적 가치관은 어쩔 수 없이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으며, 제이 개츠비의 파멸은 바로 이러한 충돌이 빚어낸 결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소설의 화자는 "이제 나는 그것이 결국 서부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톰과 개츠비, 데이지와 조던과 나는 모두 서부 사람이어쏙, 어쩌면 우리는 동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결함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화자의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문제가 없지 않다. 물론 작가가 동부와 중서부의 지리적 차이에서 어떤 가치관의 차이를 찾아내려고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 지역을 일대일의 관계로 상응시키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개츠비의 파티에 참석하는 손님들을 빼놓고 나면 실제로 동부 출신이라고 할 인물은 이 작품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톰과 닉은 몰라도 데이지와 조던은 중서부 출신이 아니라 남부 출신이다. 톰은 비록 중서부 출신이지만 동부의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러한 사정은 남부 출신인 데이지와 조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작중 인물의 분포로 보면 동부와 중서부에 남부 출신까지 합세하여 가희 미국 전역을 아우르고 있다.
  『위대한 개츠비』가 특정한 역사적 인간과 지리적 공간에 국한된 문제만을 다루고 있다면 해묵은 달력처럼 지금은 빛바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중략) 이 소설은 시대적 분위기를 성공적으로 표현해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삶의 보편적 진리를 형상화 하는 데에도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중략)
  (중략) 또한 비교적 '단순한' 스토리로 되어 있으면서도 수채화 한 점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고 애틋한 느낌을 준다. 그런가 하면 일인칭 화자를 등장시켜 플롯을 그의 말대로 '정교하게 도안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위대한 개츠비』는 그 제목이 말해 주듯이 제이 개츠비라는 한 젊은이의 낭만적인 삶을 다룬다. 가난한 중서부 출신인 그는 켄터키 주 캠프 테일러에서 장교로 근무하던 중 미모의 여성 데이지 페이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미국이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그는 유럽 전선으로 떠나고 데이지는 연인을 떠나보낸 슬픔도 잠시, 곧 시카고 출신의 돈 많은 톰 뷰캐넌과 결혼한다. 그로부터 오년 뒤 전쟁이 끝나 귀국한 개츠비는 데이지가 이미 남의 아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첫사랑을 다시 찾기 위하여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많은 재산을 모은다. 여성 편력이 많은 톰에게는 머틀 윌슨이라는 정부가 있었고 데이지는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물질적 풍요와 안락함 때문에 톰의 곁을 떠나지 못한다. 머틀(Ms.윌슨)은 데이지가 운전하는 자동차에 치여 사망하고 아내의 외도를 알아차린 윌슨(Mr.윌슨)은 아내를 죽인 사람을 찾아 나선다. 머틀을 죽게 한 것이 개츠비라고 착각하고 있는 톰은 윌슨(Mr.윌슨)에게 개츠비의 집을 가르쳐줌으로써 연적(戀敵)을 제거할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기회로 삼는다.
  이 작품에서 피츠제럴드는 무엇보다도 환상과 이상의 중요성을 가장 핵심적인 주제로 다룬다. 개츠비의 삶을 통하여 작가는 이상이나 환상을 지니는 데 바로 삶의 비결이 있으며 오직 이러한 이상이나 환상만이 부조리하고 무의미한 삶에 의미와 질서를 부여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개츠비에게 부조리한 세계에서 삶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오직 이상과 환상뿐이다. 그런데 그 이상과 환상은 데이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작품 첫 부분에서 닉은 개츠비가 조그만 만(灣) 건너편 데이지네 선착장에 켜져 있는 초록색 불빛을 응시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개츠비에게 이 초록색 불빛은 그의 삶에 의미와 질서를 부여해 주는 낭만적 환상이요 이상이다. 그는 질퍽하고 누추한 대지보다는 천상의 아름다운 별을 좇는 인물이다. 닉이 처음 개츠비를 보았을 때 개츠비는 잔디밭에서 서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있다. 개츠비는 "두 손을 호주머니에 찌른 채 서서 은빛 후춧가루를 뿌려 놓은 듯한 별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개츠비의 꿈과 환상은 지나간 시간을 다시 돌려놓으려고 하는 데에서 잘 드러난다. (중략) 데이지가 톰과 함께 개츠비의 파티에 참석한 날 밤 개츠비는 닉에게 시계 바퀴를 오 년 전의 과거로 다시 돌려놓을 것이라고 밝힌다.

  "나 같으면 그녀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는 않을 겁니다." 내가 불쑥 말했다. "과거는 반복할 수 없지 않습니까."
  "과거를 반복할 수 없다고요?" 그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아뇨 , 그럴 수 있고말고요!"
  그는 마치 과거가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집 앞 그늘진 구석에 숨어 있기라도 하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전 모든 것을 옛날과 똑같이 돌려놓을 생각입니다." 그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녀도 알게 될 겁니다."


  환상과 이상에 젖어 있는 개츠비에게 지나간 과거는 다시 졸이길 수 없다는 닉의 말은 좀처럼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렇게 과거를 반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는 점에서 개츠비를 낭만적 이상주의자로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닉이 그를 적잖이 경멸하면서도 깊이 동정할 뿐만 아니라 유대감을 느끼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개츠비는 '삶의 가능성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과 '희망에 대한 탁월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 비록 그의 이상은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일는지 모르지만 그 꿈을 성취시키기 위한 헌신적 노력은 톰과 데이지를 비롯한 다른 인물들의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행동과 비교해 볼 때 차라리 숭고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닉은 머틀이 사망한 다음날 아침 그를 향하여 "그 인간들은 썩어빠진 족속이오. 당신 한 사람이 그들을 모두 합쳐놓은 것만큼이나 훌륭합니다."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 것에 대해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힌다.
  (중략) '위대한 개츠비'라는 제목이 시사하는 바는 자못 크다. 작가는 주인공에게 '위대한'이라는 관용어를 붙여주었다. 물론 이 형용사를 반어적으로 해석하려는 비평가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쪽이 더 옳을 듯하다. 적어도 꿈과 환상을 간직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온갖 희생을 무릅쓴다는 점에서 개츠비는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중략)
  피츠제럴드는 언젠가 자신의 인생관과 관련하여 시어도어 드라이저와 조셉 콘래드의 그것과 같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 두 선배 작가는 '삶이 인간에게 너무 거세고 무자비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삶을 축제처럼 살려고 했던 사람답지 않게 피츠제럴드는 삶의 비극적 의미를 깊이 깨닫고 있었다. 그러니 만약 이 세 작가에게서 두루 찾아볼 수 있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낭만적 환상을 통하여 삶의 비극적 의미를 극복하려고 하는 태도일 것이다. (중략)
  이렇게 개츠비가 보여주는 낭만적 환상이나 이상주의는 미국인들의 의식에 깊은 흔적을 남겻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상상력이나 문화의 일부가 되다시피 하였다. (중략)
  개츠비가 지니고 있는 꿈이나 환상은 개인적 차원을 뛰어넘어 좀 더 넓게 국가적 의미를 지닌다. 다시 말해서 그의 꿈과 이상은 상징적으로 '미국의 꿈'으로 이어진다. 개츠비의 장례를 치른 뒤 닉은 동부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는 그러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개츠비의 집 앞 해변에 앉아 삼백여 년 전 부푼 가슴을 안고 미국 땅에 처음 도착한 네덜란드 상인들의 눈에 비쳤을 '신세계의 싱그러운 초록빛 가슴'을 떠올린다. 소설의 처음과 끝에 나오는 초록빛은 작품의 통일성에 이바지할 뿐만 아니라 미국의 꿈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이렇게 물질적 풍요와 안락을 찾아 초록의 꿈을 간직하고 신대륙에 도착한 사람들은 비단 네덜란드 상인들만이 아니었다. 오늘날의 버지니아 주 제임스타운에 최초로 식민지를 개척했던 영국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실채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제임스타운 식민지는 그 후 미국 중부와 남부 식민지 개척에 첫 길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신대륙에 '새로운 가나안 땅'이나 '새로운 예루살렘'을 건설하려던 청교도들은 네덜란드 상인이나 영국의 개척자들과는 크게 달랐다. 보스턴 근교의 뉴잉글랜드에 정작한 청교도들이 찾던 초록의 꿈은 물질적 풍요와 안락보다는 오히려 간섭받지 않고 마음껏 자신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종교적 자유에 있었다. (중략)
  뉴욕에 식민지를 개척한 네덜란드 상인이나 제임스타운 식민지의 영국 개척자들에게서도 잘 드러나듯이 '미국의 꿈'은 자칫 물질적인 것으로만 인식되기 쉽다. 심지어는 뉴잉글랜드에 정착한 청교도 들도 정신적인 것에 못지않게 물질적인 것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중략) 실제로 청교도들 사이에는 부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가난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중략) 막스 베버를 비롯한 몇몇 사회학자들이 미국이 이백 년도 채 되기 전에 자본주의 사회로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다름 아닌 청교도 윤리에서 찾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물질적 성공과 관련한 '미국의 꿈'은 청교도 정신이 점점 빛을 잃게 되면서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중략) 미국에서는 근면하고 성실하고 정직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신앙처럼 널리 퍼져 있었다. 개츠비가 어렸을 적에 프랭클린의 삶의 방식을 따르려고 한 것은 당연하다. (중략)
  그러나 물질적 성공은 어디까지나 변질된 '미국의 꿈'이거나 기껏해야 그 꿈의 작은 한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참다운 '미국의 꿈'은 뭐니 뭐니 해도 다분히 정신적인 것이었다. (중략)
  이 소설의 주인공 제이 개츠비는 바로 변질된 '미국의 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데이지의 사랑을 되찾으려는 그의 꿈은 참으로 순수하고 낭만적이며 이상적이다. 비록 톰에게 데이지를 빼앗기고 말았지만 그는 지금이라도 그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개츠비가 데이지를 되찾기 위하여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느냐에 있다. 그는 금주법이 시행되던 시기에 불법으로 밀주를 판매하거나 훔친 증권을 불법으로 판매하거나 도박을 하는 방법으로 막대한 재산을 모은다. 전쟁이 끝난 뒤 빈털터리이던 그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재산을 모을 수 있었던 것도 마이어 울프심 같은 조직 폭력계 두목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낭만적 이상주의에 가려 자칫 놓쳐버리기 쉽지만 개츠비가 실정법을 어긴 엄연한 범법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개츠비의 이상주의가 물질주의를 그 수단으로 삼으면서 변질되고 타락한 것처럼 청교도들이 가슴에 품고 있던 '미국의 꿈'도 물질주의와 손을 잡으면서 점점 변질되고 타락할 수밖에 없었다. (중략)
  피츠제럴드는 그 빛바랜 '미국의 꿈'을 좀 더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이 작품에서 세 가지 상징적 이미지를 구사한다. 하나는 껍질만 남은 과일이고, 다른 하나는 조지 윌슨의 자동차 정비소 근처에 있는 재의 골짜기이며, 또 다른 하나는 재의 골짜기 근처에 서 있는 T. J. 에클버크 안과 의사의 광고탑이다. 개츠비는 주말마다 저택에서 화려한 파티를 벌이기 위하여 뉴욕 과일 가게에서 싱싱한 오렌지와 레몬을 몇 상자씩이나 들여온다. 그러나 파티가 모두 끝난 월요일 아침이면 그 싱싱하던 과일은 과육이 모두 사라진 채 앙상한 껍질만 남아 뒷문을 통하여 쓰레기장으로 버려진다. 윌슨의 자동차 정비소 근처의 재의 골짜기는 T. S. 엘리엇이 『황무지』(1922)에서 말하는 불모의 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패와 죽음의 개고인 이곳은 뽀얀 먼지가 그 근처를 뒤덮고 있고 온갖 악취가 코를 찌른다. 에클버그라는 한 안과 의사가 세워놓은 광고탑은 전통적인 신(神)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현대인들은 전통적인 종교를 밀어내고 바로 그자리에 자본주의와 상업주의라는 새로운 신을 세워놓았다. 한때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그 '미국의 꿈'은 이제 과육을 빼낸 오렌지나 레몬처럼 껍질만 남은 채 재의 골짜기처럼 악취를 풍기고 있으며 안과 의사의 광고탑처럼 상있주의로 변질되었던 것이다.
  (중략) 개츠비는 '미국의 꿈'이라는 결코 뜨지 않는 달을 기다리다가 좌절을 겪었고, 삶의 연극에서 미처 2막이 시작되기도 전에 종말을 맞이하였다. 마찬가지로 청교도들이나 초기 국부(國父)들이 꿈꾸던 희망은 21세기를 맞이한 지금까지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피츠제럴드는 이 작품의 제목을 두고 무척이나 고심하였다. (중략) 작가가 이 소설을 어떤 식으로든지 미국과 관련시키려고 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위대한 개츠비』는 주제뿐만 아니라 그 형식과 기법에서도 눈길을 끈다. 방금 앞에서 몇 가지 예를 들었지만 피츠제럴드는 이 작품에서 상징과 이미지를 즐겨 사용한다. (중략) 세계 소설사를 샅샅이 뒤져보아도 이 작품처럼 서정적인 작품을 찾아보기는 그리 쉽지 않다. 번역하는 과정에서 상당 부분 놓치고 말았지만 원문을 읽다 보면 마치 산문시를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더구나 피츠제럴드는 서술 시점이나 관점에서도 실험을 꾀한다. 일인칭 서술 화법을 구상하면서도 전통적인 화법과는 조금 다르게 사용한다. (중략) 콘래드의 일인칭 화법에서 사건이 주로 서술자의 입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전달된다면, 피츠제럴들의 일인칭 화법에서 사건은 주로 글을 통하여 독자에게 전달된다. 다시 말해서 청각적 특성이 강한 전자의 작품이 '듣는' 소설이라면, 시각적 특성이 강한 후자는 '읽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 첫머리에 나오는 "이 책에 이름을 제공한 사람인 개츠비"라는 구절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위대한 개츠비』는 닉이 지금 집필하고 있는 책에 해당하는 셈이고, 이 작품을 읽는 독자는 동시에 닉이 쓴 책을 읽고 있는 셈이다.
  또한 닉 캐러웨이는 서술자이면서도 동시에 작중 인물의 역할을 맡는다. 한편으로는 방관자나 목격자처럼 개츠비와 관련한 사건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작중 인물로서 사건을 직접 개입하기도 한다. 작가의 말대로 닉은 '이야기의 안과 밖'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스토리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중략) 실제로 이 소설을 닉의 정신적 성장 과정을 다룬 일종의 교양 소설(Bildungsroman)로 읽으려는 비평가들도 적지 않다. (이하 생략)
 
Posted by Hyos :


(p.159-160)
  "하밀 할아버지, 하밀 할아버지!"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할아버지에게 이 세상에는 아직도 할아버지를 사랑하고, 할아버지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또 할아버지에게도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였다.
  나는 한동안 할아버지와 함께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은 천천히 가고 있었고 프랑스 것이 아니었다. 하밀 할아버지는 때때로 시간이란 것은 사막에서부터 낙타 대상 무리와 함께 천천히 온 것이며, 또 시간은 영원이라는 짐을 운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두를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매일 조금씩 조금씩 도둑맞고 있는 늙은이의 얼굴에서 시간을 보는 것보다는 그런 이야기 속에서 시간을 보는 것이 언제나 훨씬 아름다웠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시간을 찾는 데 있어서는 도둑맞은 쪽에서가 아니라 도둑질 하는 쪽에서 찾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KBS라디오 장진의 '라디오 북클럽'에서 낭독했던 부분, 이 부분이 맘에 들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내가 감동받은 부분은 또 따로 있다.
 

+
(p.121)

그리고 다음에 멋진 장면이 일어난다. 모두가 다 뒷걸음질하기 시작한다. 죽은 사람들도 다시 살아나서는 뒷걸음질해서 사회 속 제자리로 돌아간다. 어느 누가 단추를 누르자 모든 것이 달라진다. 자동차들은 뒤로 굴러가고, 개들도 뒤로 뛰어가고, 산산조각이 났던 짐들이 다시 모아져 대번에 눈앞에서 다시 지어지는 것이다. 시체에서는 총알들이 나와서 기관총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살인자들은 뒤로 물러서서는 창을 통해 뛰어서 물러가버린다. 그리고 쏟아진 물은 다시 일어나 잔을 채운다. 흐르던 피는 시체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그리고 핏자국은 아무 데도 없고 상처는 아문다. 침을 뱉은 사람의 입에는 다시 침이 들어간다. 말들은 뒤로 달리고, 8층에서 떨어진 사람도 살아나서 창문으로 다시 들어온다. 그것은 정말로 거꾸로 된 세계였다. 그리고 그것은 내 거지 같은 생애에서 본 것 중 가장 멋진 것이었다. 한순간 나는 젊고 생기 있는 로자 아줌마의 튼튼한 다리를 보았다. 그리고 로자 아줌마를 보다 뒤로 가게 하여 더욱더 예쁘게 만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눈물이 나왔다.


-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지정숙 옮김, 문예출판사

Posted by Hyos :


Jazz Age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The Jazz Age describes the period from 1918-1929, the years between the end of World War I and the start of the Roaring Twenties; ending with the rise of the Great Depression, the traditional values of this age saw great decline while the American stock market soared. The focus of the elements of this age, in some contrast with the Roaring Twenties, in historical and cultural studies, are somewhat different, with a greater emphasis on all Modernism.

The age takes its name from jazz music, which saw a tremendous surge in popularity among many segments of society. Among the prominent concerns and trends of the period are the public embrace of technological developments (typically seen as progress)—cars, air travel and the telephone—as well as new modernist trends in social behavior, the arts, and culture. Central developments included Art Deco design and architecture. In addition, many amateur artists began to aspire including Duke Ellington, Picasso, etc.


The Jazz Age in literature

Perhaps one of the most representative literary works of the Jazz age is American writer F. Scott Fitzgerald's The Great Gatsby (1925), which highlighted what some describe as the corruption of the post-WW1 age, as well as new attitudes, and the growth of individualism. Fitzgerald is largely credited with coining the term, which he used in such books as his short story collection Tales of the Jazz Age. His second novel, The Beautiful and Damned (1922), also deals with the era and its effect on a young married couple. Fitzgerald's last completed novel, Tender Is the Night (1934) takes place in the same decade but is set in France and Switzerland not New York, and consequently is not widely considered a Jazz Age novel per se.

Additional works on the Jazz Age might include Thomas Wolfe's and Catarina Botto's titanic 1936 book Of Time and the River which takes its protagonist from the depths of the Carolinas to Harvard and Antarctica, and finally to New York City in the 1920s. Wolfe's You Can't Go Home Again is recommended for its party scene on the night of the 1929 stock market crash. Edith Wharton's late novel Twilight Sleep, set in New York and written in 1927, is a great example of social critiques of Jazz Age values and lifestyles. Additionally, The Rosy Crucifixion trilogy of Henry Miller -- Sexus, Plexus, and Nexus -- is set in New York during this period.


Social acceptance of minorities and homosexuals


A poster from the Jazz Age.
A poster from the Jazz Age.

In urban areas, minorities were treated with more equality than they had been accustomed to previously. This was reflected in some of the films of the decade. Redskin (1929) and Son of the Gods (1929), for instance, deal sympathetically with Native Americans and Asian Americans, openly reviling social bias. On the stage and in movies, black and white players appeared together for the first time. It became possible to go to nightclubs and see whites and minorities dancing and eating together. Even popular songs poked fun at the new social acceptance of homosexuality. One of these songs had the title "Masculine Women, Feminine Men".[1] It was released in 1926 and recorded by numerous artists of the day and included the following lyrics:

Masculine women, feminine men
Which is the rooster, which is the hen?
It's hard to tell 'em apart today! And, say!
Sister is busy learning to shave,
Brother just loves his permanent wave,
It's hard to tell 'em apart today! Hey, hey!
Girls were girls and boys were boys when I was a tot,
Now we don't know who is who, or even what's what!
Knickers and trousers, baggy and wide,
Nobody knows who's walking inside,
Those masculine women and feminine men!
—Words by Edgar Leslie[2]

Homosexuals also received a level of acceptance that was not seen again until the 1960s. Until the early 1930s, gay clubs were openly operated, commonly known as "pansy clubs". The relative liberalism of the decade is demonstrated by the fact that the actor William Haines, regularly named in newspapers and magazines as the number-one male box-office draw, openly lived in a gay relationship with his lover, Jimmy Shields.[3] Other popular gay actors/actresses of the decade included Alla Nazimova and Ramon Novarro.[4] In 1927, Mae West wrote a play about homosexuality called The Drag, and alluded to the work of Karl Heinrich Ulrichs. It was a box-office success. West regarded talking about sex as a basic human rights issue, and was also an early advocate of gay rights. With the return of conservatism in the 1930s, the public grew intolerant of homosexuality, and gay actors were forced to choose between retiring or agreeing to hide their sexuality.


References

  1. ^ The song was written by Edgar Leslie (words) and James V. Monaco (music) and featured in Hugh J. Ward's Musical Comedy "Lady Be Good."
  2. ^ A full reproduction of the original sheet music with the complete lyrics (including the amusing cover sheet) can be found at: http://nla.gov.au/nla.mus-an6301650
  3. ^ Mann, William J., Wisecracker : the life and times of William Haines, Hollywood's first openly gay star. New York, N.Y., U.S.A. : Viking, 1998: 2-6.
  4. ^ Mann, William J., Wisecracker : the life and times of William Haines, Hollywood's first openly gay star. New York, N.Y., U.S.A. : Viking, 1998: 12-13, 80-83.

Further reading

  • Allen, Frederick Lewis. Only Yesterday: An Informal History of the Nineteen-Twenties 1931.
  • Gary Dean Best. The Dollar Decade: Mammon and the Machine in 1920s America Praeger Publishers, 2003.
  • Dumenil, Lynn. The Modern Temper: American Culture and Society in the 1920s Hill and Wang, 1995
  • Fass; Paula. The Damned and the Beautiful: American Youth in the 1920’s. Oxford University Press, 1977.
  • David E. Kyvig; Daily Life in the United States, 1920-1939: Decades Promise and Pain Greenwood Press, 2002
  • Leuchtenburg, William. The Perils of Prosperity, 1914–1932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5.
  • Lynd, Robert S., and Helen Merrill Lynd. Middletown: A Study in Modern American Culture Harcourt, Brace and World, 1929. famous sociological study of Muncie, Indiana, in 1920s
  • Mowry; George E. ed. The Twenties: Fords, Flappers, & Fanatics Prentice-Hall, 1963 readings
  • Parrish, Michael E. Anxious Decades: America in Prosperity and Depression, 1920–1941 W. W. Norton, 1992
  • West, James [Carl Withers]. Plainville, U.S.A. Columbia University Press, 1945. sociology of life in a small town

External li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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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중요한 것은 해석이다. 찾는것은 누구나 할수 있다.
어서 해석해보자.;ㅁ;

+ 이거원, 피드백이네.ㅋㅋ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이 미국 1920년대 Jazz age라고 해서 한번 찾아봤더니,
여기서는 위대한 개츠비에 잘 드러난다고 하면... 뭥미.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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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로테를 저에게 맡겨주소서!' 하고 기도할 수는 없네. 그러나 가끔 그녀가 내 사람인 듯한 생각이 드는 걸 어쩌겠나. 그렇다고 '그녀를 제게 돌려주소서' 하고 기도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의 사람이니까.
  나는 지금 너무도 가슴이 쓰라린 나머지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거라네. 이러다간, 명제와 대립명제의 끝없는 기도가 되풀이될 걸세.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도희서 옮김, 꿈꾸는 아이들 p.196-197
Posted by Hyos :

★참고문헌★
T.J. Reed, 『19세기 유럽 문학의 정상 괴테』, 이종인 옮김, 시공사
(ISBN 89-527-1636-1, ISBN 89-527-1111-9(세트))
→ p.11~40, 아래 <베르테르>이하부터 베르테르 관련 내용~~


<참조에 관한 주석>
텍스트 속의 참조는 아래 책을 따랐다.
H : 총 14권으로 된 함부르크판 괴테 전집. 에리히 프룬츠(Erich Trunz) 편집. 원판은 함부르크, 1948~60.
E : 만년의 괴테와 나눈 대화를 그대로 받아쓴 요한 피터 에커만(Johann peter Echermann)의 대화록.
D : 1786년 칼스바드에서 로마에 이르기까지 괴테의 일기(H에 들어 있지 않음).
(이하 생략)

<들어가는 글>
(앞부분 생략)
  겉으로 드러난 그의 삶은 간략하게 요약할 수 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eothe)는 1749년 자유 제국(帝國) 도시인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법률을 전공한 자문관으로 부르주아였다. 어머니는 아주 활기차고 이지적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후일 유명해진 아들 덕분에 사귀게 된 작가와 왕자들로부터 폭넓게 존경받았다. 그녀의 편지에는 괴테를 연상시키는 자연스러운 개성이 넘쳐흐르는데, 괴테는 '낙관적인 성격'과 넘치는 상상력을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고 말했다.(H I. 320). 또한 어머니의 사랑 넘치는 자상한 성격은 괴테에게 그대로 전해져서 그의 삶은 언제나 편안했으며, 그것은 또한 괴테의 저작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중략)
  괴테 생애의 전반기는 계몽주의 후기 시대와 일치한다. 그가 계몽주의의 가담자로 평가되지는 않지만, 그의 작품에는 이 사상의 여러 원칙들이 묵시적으로 등장한다. 경험주의, 감각적인 것에 대한 애착, 인간의 본성(혹은 자기 자신의 본성)에 대한 믿음, 사상의 명료성등이 그런 원칙이다. 그는 이런 원칙들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런 것들을 언급하기보다는 직접 실천하고 또 개인적인 전망과 경험으로 그것들(원칙들)을 생기넘치게 하는 일에 바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 더하여 초기 괴테의 지적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준 또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요한 고트프리트 헤드러(Johann Gottfried Herder)와의 만남이었다. 헤르더의 문화철학은 젊은 시인(괴테)의 창조적 충동과 주제적 관심을 완벽하게 수용하고 또 확인시켜 주었다. (중략)
  그리고 중기에 실러를 만나게 된다. 실러는 위대한 시인이면서 비극 작가였고 또 탁월한 미학 이론가이면서 비평가였다. 이런 실러가 괴테의 시를 높이 평가하고 유럽 문학에서의 가치를 인정해 주자, 괴테의 문학 감각은 더욱 고양되었고 새로운 창조성의 활기를 띠게 되었다. 1794년에서 1895년(실러 사망 연도)까지 두 사람의 생산적인 우정은 독일에 때늦은 고전주의 붐을 일으켰고, 사상 처음으로 바이마르를 독일 문학의 요람으로 만들었다. (이하 생략)


1. 바이마르의 방랑자 시인
  - 괴테, 그 사람
<시가>
(앞부분 생략)
  괴테 이전의 18세기 시들은 사교 모임장이나 기존의 교설만 인정하는 교실 속에 갇혀 잇었다. 설혹 그런 갇힌 공간 밖을 내다본다 하더라도 아주 잘 가꾸어진 정원 속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순치된 자연이 고작이었다. 그 시들의 형태적인 양식도 마찬가지로 제약을 받고 있었다. '서정적' 연(聯)은 운율을 맞추고, 무언가 진지하게 탐구하는 듯하며, 사이사이 우화도 등장하지만, 그 시들은 이미 결론이 정해진 방향으로 내달렸다. 그런 중에도 초창기의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고틀리프 클롭슈토크(Friedrich Gottlieb Klopstock)는 장대한 언어·운율적 제스처로써 자기 자신을 해방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의 시들은 위대한 비평가 고흐홀트 에프라임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이 지적한 것처럼 너무 감정이 충만해 있기 때문에, 막상 읽어보면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다. 너무 노골적으로 정서를 유도하는 수사(修辭)가 읽는 이에게 부담을 주는 탓이다. 그 감정은 종종 종교 감정으로 바뀌는데, 아주 오랫동안 시적 표현에 한계를 부과해온 기독교 정통 교리의 '숭고한' 되풀이에 불과하다. 그리하여 클롭슈토크가 노리는 해방은 의심스러운 해방이 되고 말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괴테는 자기 주위의 실제 세계로 파고 들어갔다. (중략)
  괴테는 소심한 선배 시인들이 할 수 없었던 것을 해냈다. 그는 '방랑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괴테 자신이 말했던 '자유로운 세상', '충만한 세상', '열린 세상'을 마음껏 거닐었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억수 같은 빗줄기 속에서 진흙 위를 터벅터벅 걸어 가는 사람, 애인과 약속한 장소에 맞춰 가기 위해 알자스의 전원을 말 달리는 사람, 취리히 호반에서 노 젓는 사람등 자연스러운 사람들의 움직임이 직접 느껴진다. 괴테처럼 구체적인 경험을 제시하면서 정서적인 것과 신체적인 것을 강력하게 융합한 시인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괴테는 자연 속에 놓여 있는 진실한 인간이다. (중략)
  괴테의 시는 엄청난 힘, 신선함, 시적 정밀성을 갖고 있다. 그리하여 독일 문학에서는 괴테의 선배는 물론 후배 중에서도 그에게 필적할 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 괴테의 문학에 도움을 준 사람들이 있기는 했다. 괴테가 스트라스부르 시절(1771)에 만났던 헤르더는 원시인들의 노래가 갖고 있는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면서 호메로스(Homeros), 오시안(Ossian), 셰익스피어의 원초적 힘을 칭찬했다.
  (중략) 괴테는 헤르더를 알기 오래 전부터 이미 셰익스피어를 읽고 있었다. 또 핀다로스(Pindaros)를 읽고 그의 복잡한 운율이 랩소디적 융합의 결과라고 오해하기도 했으며 당시로서는 신선하고 영감 넘치는 것으로 보였던 클롭슈토크도 읽고 있었다.
  (중략)
 
[감정의 오류는 영국의 문학비평가 존 러스킨이 『근대화가론』(1856)에서 처음 만들어낸 말이다. 시인이나 화가들은 자연에 인간의 감정을 투사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이 감정의 오류이다. 이러한 오류는 흥분된 느낌 때문에 발생하는데, 그 결과 인간은 잠시 비이성적으로 된다. 인간의 마음이 정서에 의해 크게 자극을 받으면 이런 '오류'가 발생한다. 말하자면 외부의 사물에 대한 인간의 인상에 오류가 생기는 것이다. 러스킨은 자신의 정의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킹즐리의 시행을 인용한다.
  그들은 노호하는 포말(泡沫) 사이로 배를 저어갔다.
  저 잔인하고 기어가는 포말.
  "포말은 잔인하지도 기어가지도 않는다. 인간의 이러한 특성을 포말에 적용시킨 것은 인간의 마음 상태이며, 그 상태가 슬픔에 의해 잠시 이성을 잃은 것이다."(러스킨)
  그러면서 러스킨은 최상급의 창조적 시인들(호메로스, 단테, 셰익스피어)은 이런 감정상의 오류를 거의 저지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2류 시인들(워즈워스, 콜리지, 키츠, 테니슨 등)은 이런 오류를 많이 저지른다; 이상 프린스턴대학판 『시학대박과 사전』에서 인용: 역주]

<베르테르>
(앞부분 생략)
  괴테가 어떤 문학적 가능성 때문에 '인생은 비극이다'라는 주제를 탐구했던 것은 아니다. 카를 빌헬름 예루잘렘(Carl Wilhelm Jerusalem)이라는 젊은 변호사의 자살이 그에게 이 작품을 쓰도록 강요했던 것이다. 예루잘렘은 괴테가 라이프치히 시절과 베츨러의 제국(帝國) 상소법원 시절에 알았던 사람이었다. 자연사, 요절, 사고사 등은 인생의 의미를 정의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자살은 인생의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잘 알고 있던 사람의 자살은 괴테에게 충격을 주었고 그 결과 이러한 절망의 깊이를 이해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예루잘렘의 사회적 실패, 불행한 사랑, 자살 후의 형편없는 사후 처리, 검소한 장례식 등으로 괴테는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그는 18개월 동안 그 문제를 곰곰 생각하여 1774년 초 4주에 걸쳐 서한(書翰)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을 써냈다. 내적인 동요와 짝사랑의 괴로움 때문에 결국 어두운 종말을 맞게 되는 한 젊은이의 이야기였다.
  (중략) 베르테르가 편지를 쓰는 상황, 편지들의 길이와 어조, 서서히 일관성이 붕괴되어 나가는 과정 등은 정말 사실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하여 우리는 괴테의 시를 읽을 때와 똑같은 감정의 동요를 느끼게 된다. (중략) 
  괴테의 소설은 질병과 똑같은 위력으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심리 과정에 대해 깊은 통찰 혹은 공감을 제공해 준다. 베르테르 자신도 이러한 '심리적 원인도 죽음을 가져온다'는 논리를 원용하면서, 연적인 알베르트 앞에서 전통적인 자살 배척론에 맞서 자살을 옹호한다(그것은 베르테르가 자살하기 훨씬 전의 일이었다). 베르테르의 웅변은 기존의 경직된 법률과 도덕과는 뚜렷하게 대비되는 혁명적인 호소로, 흄의 논문 『자살론』(Of Suicide)과 나란히 세워놓을 만했다. 흄은 오래 전에 이 논문을 썼으나 파란을 우려해 발표하지 않다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나오고 3년이 지난 뒤에 출간했다. 흄은 추상적으로 인간의 자살 권리를 옹호하고 있는 데 반해, 괴테는 사람을 자살로 몰고 가는 고통을 구체적으로 재창조하고 있다. 철학은 일반적인 동의를 구하지만, 문학은 구체적인 공감을 강요한다. 문학은 이런 식으로 사회를 문명화시키는 작업을 해낸다.
  베르테르의 고통이 불행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물론 연애 감정이 표면적인 플롯을 지배하고 있고, 또 당시 기준으로 볼 때 그런 감정이 아주 감상적인 분위기로 강화되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베르테르는 좀더 급진적인 문제에 대한 답변 혹은 완화책으로 로테를 필요로 했다.
  베르테르의 마음은 그냥 저 혼자 내버려두면 덧없음과 죽음으로 내달리게 되는 그런 마음이었다. 로테에 대한 사랑은 이런 마음에 어느 정도 제동을 걸었다. 그는 인간의 모든 활동은 궁극적으로 무의미하다고 보았고, 그래서 사회 바깥에 있는 우울한 관찰자인 자신은 그런 제약으로부터 해방된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해방은 허무주의로 가득 찬 황야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이 그토록 경멸하는 그런 제약의 일부 형태를 동경한다. 전원 분위기가 가득한 소설의 도입부에서, 그는 농부가 되었으면 하는 동경을 내보인다. (중략) 그러나 이런 전원에 대한 동경은 산산조각나 버린다. 그런 전원생활에 딱 들어맞는 파트너 로테를 아내로 맞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략)
  인간의 마음과 정서는 이 세상과 충분한 타협을 이루어서, 이 세상의 조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사는 것을 자기의 집처럼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이 거듭하여 진지하게 제기되었기 때문에, 또 베르테르의 비극적 답변이 늘 옆에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괴테가 "비극을 피해갔다."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니까 괴테가 자기 자신과 소설 속 인물들에게 그런 문제를 제기하기만 하고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는 것은 허무맹랑하다. 괴테의 저작이 성공적인 해결책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은 '비극적 격언'(인생은 무의미하다: 역주)이 결코 상투어로 전락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1770년대 중반에 괴태는 인생의 비극적 견해를 상술하기는 했지만, 그런 견해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견해를 아주 동정감 넘치는 입장에서 기술했다. 하지만 시적 효과를 내기 위한 것이었을 뿐, 그런 주제에 탐닉하지는 않았다. 낭만적 개인주의의 애상(哀想)과 병리(病理)는 그의 규범이 될 수 없었다. 이것은 초창기의 그가 거둔 의미 있는 승리이다.

 (이하 생략)

Posted by Hyos :
★참고문헌★
안삼환 엮음, 『괴테 그리고 그의 영원한 여성들』, 서울대학교 출판부
(ISBN 89-521-0663-6)
- 이 책에서 진일상, '『젊은 베르터의 고뇌』와 청년 괴태의 사랑'(p.199-213)편을 읽고 잊어버릴까봐 배껴 적은 것.

<편지 그리고 눈물>
(앞부분 생략)
  서간체 소설은 당시에는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루소 「신엘로이즈」, 베르테르 이후 드 라클로「위험한 관계」등이 있다.
(중략)
  지금과는 시간개념이 다르고 다양한 오락 거리가 없던 그 당시의 사람들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편지를 쓰는 일에 전념했다. 하루종일 편지를 쓰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몇 주에 걸쳐 편지를 쓸 때도 있었다.
(중략)
  편지는 단순히 용건을 전달하고 의견을 나누고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의 내면 고백과 함께 글쓰기를 연습하는 습작의 성격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편지는 글을 쓰는 이의 감정이 그대로 표현되는 가장 주관적인 문학형식이다. 젊은 베르터도 친구 빌헬름을 상대로, 어떤 때에는 거의 매일, 자신에게 있었던 일이나 자신의 심리 상태와 생각들, 로테를 향한 사랑과 그에 따르는 고통과 번민들을 쏟아내고 있다.
(중략)
  이 소설은 편지라는 주관적인 형식을 취해 당시 시대적인 조류였던 감성주의의 다양한 특징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감성주의는 18세기 후반의 문화사적인 흐름으로서, 자연스러운 산물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하던 중세 사회의 신 중심의 세계관으로부터 계몽과 오성의 사용을 주창하게 되었고, 이러한 이성 만능의 분위기가 만연하자 그 자연스러운 귀결은 극단적인 감성의 해방으로 기울게 된다. 감성주의는 이러한 시대적인 분위기의 인위적인 결과로, 당시 사람들은 느낌을 극대화 시키고 느낌을 고양시킬 대상을 적극적으로 찾거나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고, 이 느낌을 통해 자신의 존재와 현실을 더 높은 단계에서 의식하고자 했다. 감성을 자극하는 것 중에서 가장 기쁨을 주는 것은 물론 고뇌나 고통이었다. 고뇌야 말로 가장 깊은 차원의 감동과 내면의 동요를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고뇌와 기쁨은 궁극적으로는 일맥상통하는 것이었고 이를 표현하는 수단은 눈물이었다. 당시에는 눈물이 없는 편지란 있을 수 없었다. 당시 사람들은 또 다시 눈물을 흘리기 위해 음악을 연주하고 시를 낭송했다고 한다.
(중략)
  괴테의 베르테르는 당시 감성주의적인 분위기에서 함께 호흡하는 인물인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도 숭고한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한 감성주의의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베르터의 편지를 펴낸 편자는 시작부분에서 자신의 역할을 설명하면서 독자들에게 "베르터의 고뇌로 부터 위안을 얻으십시오"라고 덧붙인다. 당시 감성을 자극하는 슬픔과 눈물은 곧 감성을 고양 시키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생략)


<베르터의 사랑 그리고 죽음>
(앞부분 생략) 두사람의 첫 만남은 무도회로 이어졌고, 그들은 처음으로 교감을 갖게 된다.
  로테는 팔꿈치에 기대어 차분하게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녀는 하늘을 쳐다보고, 이어서 나를 바라보았는데, 그녀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그녀는 자기손을 내 손에 포개 얹은 다음 "클롭슈톡!"이라고 말했다. 나는 곧 로테가 생각하고 있는 그 장려한 송가를 생각해 내고 그녀가 이 같은 암호로 내게 쏟아 놓은 감정의 벅찬 흐름 속에 휩쓸려 갔다. 나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몸을 구부리고 기쁨에 넘치는 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손등에 키스했다. (Goethe: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 Műnchen 1981, 27쪽 - 이하 텍스트 인용은 페이지만 기재)
  오늘날 시각에서 볼 때 이러한 장면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감성주의를 대변하는 "클롭슈톡"이란 말 한마디만으로도 서로 생각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서로 감정이 고양되는 것은 이상적인 사랑을 의미했다.
  베르터는 자신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사랑의 다양한 모습들을 전달하는데, 여기에서도 사랑이 지닌 파괴적인 힘이 그대로 드러난다. 여주인과 사랑에 빠진 한 농부는 질투심에 연적을 죽이는데, 베르터는 거칠지만,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농부의 맹목적인 사랑에 경외감을 표시한다. 교육을 받지 못했고 야만적인 계급에 속하는 농부의 솔직하고 열정적인 사랑에 비하면, 어떤 행동도 표현도 하지 못하는 자신은 정신적인 불구자에 속한다고 말하고 있다. 동시에 11월 30일자 편지에서는 로테의 아버지 밑에서 서기관으로 일하다 로테에게 사랑 고백을 한 후 파면당하고 마침내 미쳐 버린 한 젊은이, 하인리히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이에 공감을 표하기도 한다. 로테의 파괴력은 베르터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략) 그녀 앞에서는 이성을 잃고 어린애처럼 행동하게 되고, 그녀가 만진 모든 사물, 심지어 그녀가 보낸 하인에게서도 그녀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녀를 느낀다. (중략)
  베르터의 죽음은 어떻게 이해 될 수 있을까? 로테에 대한 마음이 그로 하여금 스스로 목숨을 버리게 한 이유였을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베르터의 감성은 그의 이성과는 합일되리 수 없는 것으로서, 그에게 파괴적인 힘을 발휘한다. 죽음은 초반부에 이미 그의 마음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세상을 인간의 자유의지가 속박을 받는 감옥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언제든 이 속박에서 벗어날 마음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알베르트와의 대화에서 베르터의 죽음에 대한 견해는 더욱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베르터에게는 자살은 자신을 제한하고 있는 속박에서 풀려날 수 있는 수단으로 이해된다. 자살 행위가 스스로의 나약함의 결과라고 말하는 알베르트에게 베르터는 어떠한 감정이든 견디어 낼 수 있는 한도가 잇으며, 이 한계를 넘어선 감정은 인간을 파멸로 치닫게 한다고 맞선다. 즉, 이 세상에서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사람에게 극복이니, 의지니 하는 것은 하나의 이상적인 말 뿐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이성 중심의 계몽주의적인 사고와 감성의 우위를 주장하는 감성주의적 사고를 대변한다. 죽음의 세계는 베르터의 독서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호머의 세계와 대립되는 오시언의 세계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 슬픔을 노래한 것으로, 베르터의 어둡고 절망적인 심리 상태를 그대로 대변한다. 로테를 만나기 전 인간적인 따뜻함으로 그의 마음을 채우던 호머의 세계는 로테와 만나면서 갈등하는 동안 죽음의 세계를 노래하는 오시언의 세계와 갈등하게 된다.
  (중략) 제2부에서 로테와의 재회 이후 그는 "내 마음 속에서 오시언이 호메로스를 쫓아 버렸다"고 말한다. "나도 숭고한 무사처럼 검을 뽑아들고 서서히 죽어가는 생명의 고통으로부터 영주 오시언을 단번에 해방시켜 주고 싶다. 그리고 해방된 그 반신半神의 뒤를 쫓아 내 영혼도 보내고 싶다"는 그의 말에는 죽음을 향한 강한 동경이 피력되어 있다.
  로테와의 첫 만남에서 "클롭슈톡!"이라는 말로 감정의 교감이 이루어졌다면, 절망에 지친 베르터의 마음은 오시언의 노래를 통해 로테에게 전달된다. 오시언은 호머처럼 눈먼 음유시인으로 자신의 유년기를 돌아보면서 아버지 핑갈과 일찍 죽은 아들 오스카, 그리고 일찍 세상을 떠난 영웅들을 노래하고 있다. (중략)
 
  죽기 전 로테를 마지막으로 만난 자리에서 베르터는 자신이 직접 번역한 오시언의 노래를 낭송한다. 지금까지 두 사람이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던 절망적인 감정들이 오시언을 통해 대변되는 것이다. 클롭슈톡이 자연에 대한 종교적인 감성을 표현한다면, 오시언은 비극을 대변한다. 상황은 일치하지 않지만, 두 사람의 비극적인 상황은 오시언의 노래를 통해 전이 되는 것이다.
  로테의 눈에서 눈물이 넘쳐 흘렀고, 그녀의 억눌린 가슴을 시원하게 해 주는 그 눈물은 베르터의 노래를 중단시키고 말았다. 그의 원고지를 내던지고 로테의 손을 잡고 흐느껴 울었다. 로테는 다른 쪽 손에 몸을 의지하고, 손수건으로 눈을 가렸다. 두 사람의 감동은 심각한 것이었다. 그들은 고귀한 사람들의 운명 속에서 스스로의 불행을 느끼고 또 서로 공감했기에 두 사람의 눈물은 하나로 합쳐져서 흘러내렸다. 베르터의 입술과 눈은 로테의 팔에 파묻혀 타올랐다.(114쪽)

그리고 베르터는 자신의 앞날을 예고하는 듯한 마지막 부분을 읽고 낭송을 끝맺는다. (중략)

 로테와의 열정적인 만남을 마지막으로 베르터는 로테와 작별을 고하고, 곧 알베르트의 권총을 빌려 로테가 시동에게 직접 건네준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어디에도 안식처를 찾지 못하던 베르터는 이번에는 더 이상 도피가 필요하지 않은 영원한 안식처로 떠난다. 그곳에는 더 이상의 고뇌도 갈등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로테와의 마지막 순간만을 기억하면서 자신에 대한 로테의 마음을 확인하고, 고통에 찬 생을 스스로 마감하게 되는 것이다.
  베르터는 죽음을 통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고, 괴테는 베르터라는 인물을 통해 개인적인 실연의 고통을 창작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고뇌하는 젊은 베르터는 넘쳐나는 감수성으로 사랑의 열병을 앓는 영원한 연인으로 남게 된 것이다.
Posted by Hyos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내가 읽은건 ISBN 89-8497-135-9)

2008년 7월 4일, 날씨 찜통
줄친거는 잘 모르겠는거 -///-

 참고문헌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소담출판사
(ISBN 89-7381-019-7 00850)
- 책 뒤에 작품설명나온거에서 아래꺼 다 찾음. 도서관에서 빨리 배껴적느라 흑흑.ㅠㅠㅋ


Johan Wolfgang von Goethe 또는 괴테 (1749-1832 독일)

그 당시, 귀족중심에서 시민계층의 사회로 옮겨가는 과도기적 상황!
또 영국, 프랑스에서 유래한 경험주의, 계몽사상이 독일에 퍼지고 있었던 시기.
아버지는 시민계층이라 정치 참여할수 없어 불만가득.
어머니는 시장의 딸, 감수성 예민하고 풍부함.

1766년, 최초 희곡 「애인의 변덕」
「공범자」→ 로코코풍의 서정적인 작품
↑ 자신의 세계 못찾고 방황의 시기, 계몽주의의 영향 아래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그의 작품세계는

1770년, 요때 봉건주의 퇴락의 길에 있었음. 시민 계급 전면 부상!! 이에따라 문학에서 시민계급 출신 작가 부상!
독일 문단는 합리주의에서 비합리쥬의, 질서에서 카오스, 프랑스적 고전비극에서 셰익스피어의 비극적 성격을 띠게 됨. 이것은 헤르더를 중심으로 정점에 이르게 되고 드디어 민중문학 운동!
괴테는 헤르더와 친구가 되어 새로운 문학의 전형인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등의 작가세계에 관심을 가짐.
요때 연애, 목가적 생활와 함께 본격적으로 시와 희곡

1773년, 희곡 「괴즈 폰 베를린항겐」: 당시 문학운동의 기폭제. 사회적 예술적 전통에 대한 반항. 문학 형식과 법칙 벗어나는 태도로 쓰임

1774년,「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작가적 명성 절정! 당시 젊은이들의 가슴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문제작

1775년, 바이마르로 가서 재상이 되었는데, 이후 독일 문화의 절정이 여기서 이룩됨.
그 곳에서 만난 세 아들의 어머니인 슈타인 부인은 괴테의 문학적 감수성 자극, 문학성을 높임.
이 부인은 나중에 「타소」, 「이피게니에」에서 형상화됨.
그래서 슬슬 고전주의의 작품세계로 접어듬.
이탈리아 여행으로 감성의 인간에서 이성의 인간이 됨.

1786년, 비극「이피게니에」:그의 고전주의 대표작. 형식과 제제가 그리스의 것이 였으나 괴테만의 세계관이 드러남 바로 독일 고전주의

1789년 프랑스 혁명←괴테는 '혁명'이라는 수단은 찬성하지 않음
1797년, 이러한 시대적 고뇌는 대혁명과 연관을 지닌 현실을 다루면서 고전주의의 대표적 서사시 「헤르만과 도로테아」완성. 이렇게 고전주의의 작품세계는
1796년, 소설「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도 그대로 드러남.

1809년(당시 60세), 소설「친화력」: 인간이 아무리 부정해도 사라지지 않는 삶의 절대적 긍정에 대한 꿈을 담은 걸작! 10살 아래던 실더가 죽자 정신적 충격. 그 가운데 삶의 의미를 꼐속해서 탐구. 진실된 연애를 체험.

1808년, 어머니를 잃은 괴테가 자신의 생을 회고하면서 집필하기 시작 「시와 진실」:자신을 대상으로 인간의 형성과정을 추적
시집「서동시집」:노년기 업적중 가장 높이 평가. 동양적인 정서가 담겨있다.

1816년, 아내와 사별후 19세 소녀 울리케와 사랑~ 「마리엔바트의 애가」형상화

1829년,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1831년 「파우스트」제 2부 완성 : 60여년이 걸림. 그의 전생에가 망라되어 있다.
위 둘 모두 청년 시절부터 구상하여 쓰기 시작한 것인데 여러번 중단하다가 드디어 완성된 것.

1832년 생을 마감......

-괴테에 대한 1차 조사 끝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배경

1772년..
베츨러에서 알게된 예루살렘이라는 청년이 어떤 유부녀에 대한 실연으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는다.
15세 샬로테 부흐, 5명 아이의 홀아비와 결혼한 여인과의 체험을 바탕으로 괴테가 25세때 쓴것. 젊은이로서 지닐 수 있는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주인공 베르테르의 사랑과 절망, 고뇌와 죽믕르 그린 단순한 연애수준을 넘어서서, 관습과 규범으로 억압하는 사회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한 괴테의 자유와 감정에 대한 의지 반영.
정렬과 세계와의 대립, 감각과 사랑의 도취속에서 파멸하는 베르테르의 모습 = 괴테 자신 = 당대 젊은이들의 모습
따라서 베르테르의 고뇌와 죽음은 합리주의의 사슬에 묶인 그 시대의 ㅂ ㅣ극!
그래서 당연스레 당시 젊은이들에게 커다란 충격.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배경 1차 조사 끝

Posted by Hyo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