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8)
  지나가던 고양이 그림자가 달빛에 어른거리는 것이 눈에 띄자 자세히 보려고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50피트 떨어진 곳에 또 한사람의 모습이 이웃집의 그림자 속에서 나타나 두 손을 호주머니에 찌른 채 서서 은빛 후춧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별들을 바라보고 잇었다. 한가로워 보이는 동작과 잔디를 굳게 딛고 선 안정된 자세로 미뤄 보아, 바로 어디까지가 자기 몫의 하늘인지 살펴보려고 나온 개츠비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를 부르려고 마음먹었다. 베이커 양이 저녁을 먹으면서 그에 관해 얘기했던 것으로 소개는 충분할 것 같았다. 그러나 갑자기 그가 혼자 있고 싶다는 암시를 보냈기 때문에 나는 그를 부르지 않았다. 그는 두 팔을 어두운 바다를 향해 뻗었는데, 나는 멀리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 그가 부르르 몸을 떨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무의식중에 나도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조그맣게 반짝이는, 부두의 맨 끝자락에 있는 것이 틀림없는 단 하나의 초록색 불빛을 빼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다시 개츠비를 쳐다보았을 때 그는 그 자리에 없었고, 나는 어수선한 어둠 속에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p.133~134)
  집 안을 구경한 뒤 우리는 저택의 대지와 수영장 그리고 수상 비행기와 한여름의 꽃들을 둘러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개츠비 저택의 창밖으로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우리는 나란히 서서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안개만 끼지 않았더라면 만 건너에 있는 당신 집이 보였을 겁니다." 개츠비가 말했다. "그곳의 부두 끝에는 항상 초록빛 불이 켜져 있더군요."
  데이지는 느닷없이 개츠비에게 팔짱을 끼었지만 그는 자기가 방금 한 말에 대해 정신이 팔려 있는 것 같았다. 아마 그 불빛이 지니고 있던 엄청난 의미가 이제 영원히 사라졌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그를 데이지와 갈라놓았던 머나먼 거리와 비교해 보면 그 불빛은 그녀와 아주 가까이, 거의 손으로 만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는것 같았다. 달 가까이 있는 별처럼 그렇게 가깝게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다시 부두에 켜져 있는 초록 불빛에 지나지 않았다. 그에게 마법을 부렸던 물건들 중 하나가 줄어든 것이다.




(p.255)
  나는 그곳에 앉아 그 오랜 미지의 세계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개츠비가 부두 끝에 있는 데이지의 초록색 불빛을 처음 찾아냈을 때 느꼈을 경이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는 이 푸른 잔디밭을 향해 머나먼 길을 달려왔고, 그의 꿈은 너무 가까이 있어 금방이라도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았으리라. 그 꿈이 이미 그의 뒤쪽에, 공화국의 어두운 벌판이 밤 아래 두루마리처럼 펼쳐져 있는 도시 저쪽의 광막하고 어두운 곳에 가 있다는 사실을 그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김욱동 옮김, 민음사
Posted by Hyo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