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문헌★
안삼환 엮음, 『괴테 그리고 그의 영원한 여성들』, 서울대학교 출판부
(ISBN 89-521-0663-6)
- 이 책에서 진일상, '『젊은 베르터의 고뇌』와 청년 괴태의 사랑'(p.199-213)편을 읽고 잊어버릴까봐 배껴 적은 것.

<편지 그리고 눈물>
(앞부분 생략)
  서간체 소설은 당시에는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루소 「신엘로이즈」, 베르테르 이후 드 라클로「위험한 관계」등이 있다.
(중략)
  지금과는 시간개념이 다르고 다양한 오락 거리가 없던 그 당시의 사람들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편지를 쓰는 일에 전념했다. 하루종일 편지를 쓰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몇 주에 걸쳐 편지를 쓸 때도 있었다.
(중략)
  편지는 단순히 용건을 전달하고 의견을 나누고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의 내면 고백과 함께 글쓰기를 연습하는 습작의 성격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편지는 글을 쓰는 이의 감정이 그대로 표현되는 가장 주관적인 문학형식이다. 젊은 베르터도 친구 빌헬름을 상대로, 어떤 때에는 거의 매일, 자신에게 있었던 일이나 자신의 심리 상태와 생각들, 로테를 향한 사랑과 그에 따르는 고통과 번민들을 쏟아내고 있다.
(중략)
  이 소설은 편지라는 주관적인 형식을 취해 당시 시대적인 조류였던 감성주의의 다양한 특징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감성주의는 18세기 후반의 문화사적인 흐름으로서, 자연스러운 산물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하던 중세 사회의 신 중심의 세계관으로부터 계몽과 오성의 사용을 주창하게 되었고, 이러한 이성 만능의 분위기가 만연하자 그 자연스러운 귀결은 극단적인 감성의 해방으로 기울게 된다. 감성주의는 이러한 시대적인 분위기의 인위적인 결과로, 당시 사람들은 느낌을 극대화 시키고 느낌을 고양시킬 대상을 적극적으로 찾거나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고, 이 느낌을 통해 자신의 존재와 현실을 더 높은 단계에서 의식하고자 했다. 감성을 자극하는 것 중에서 가장 기쁨을 주는 것은 물론 고뇌나 고통이었다. 고뇌야 말로 가장 깊은 차원의 감동과 내면의 동요를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고뇌와 기쁨은 궁극적으로는 일맥상통하는 것이었고 이를 표현하는 수단은 눈물이었다. 당시에는 눈물이 없는 편지란 있을 수 없었다. 당시 사람들은 또 다시 눈물을 흘리기 위해 음악을 연주하고 시를 낭송했다고 한다.
(중략)
  괴테의 베르테르는 당시 감성주의적인 분위기에서 함께 호흡하는 인물인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도 숭고한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한 감성주의의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베르터의 편지를 펴낸 편자는 시작부분에서 자신의 역할을 설명하면서 독자들에게 "베르터의 고뇌로 부터 위안을 얻으십시오"라고 덧붙인다. 당시 감성을 자극하는 슬픔과 눈물은 곧 감성을 고양 시키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생략)


<베르터의 사랑 그리고 죽음>
(앞부분 생략) 두사람의 첫 만남은 무도회로 이어졌고, 그들은 처음으로 교감을 갖게 된다.
  로테는 팔꿈치에 기대어 차분하게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녀는 하늘을 쳐다보고, 이어서 나를 바라보았는데, 그녀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그녀는 자기손을 내 손에 포개 얹은 다음 "클롭슈톡!"이라고 말했다. 나는 곧 로테가 생각하고 있는 그 장려한 송가를 생각해 내고 그녀가 이 같은 암호로 내게 쏟아 놓은 감정의 벅찬 흐름 속에 휩쓸려 갔다. 나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몸을 구부리고 기쁨에 넘치는 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손등에 키스했다. (Goethe: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 Műnchen 1981, 27쪽 - 이하 텍스트 인용은 페이지만 기재)
  오늘날 시각에서 볼 때 이러한 장면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감성주의를 대변하는 "클롭슈톡"이란 말 한마디만으로도 서로 생각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서로 감정이 고양되는 것은 이상적인 사랑을 의미했다.
  베르터는 자신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사랑의 다양한 모습들을 전달하는데, 여기에서도 사랑이 지닌 파괴적인 힘이 그대로 드러난다. 여주인과 사랑에 빠진 한 농부는 질투심에 연적을 죽이는데, 베르터는 거칠지만,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농부의 맹목적인 사랑에 경외감을 표시한다. 교육을 받지 못했고 야만적인 계급에 속하는 농부의 솔직하고 열정적인 사랑에 비하면, 어떤 행동도 표현도 하지 못하는 자신은 정신적인 불구자에 속한다고 말하고 있다. 동시에 11월 30일자 편지에서는 로테의 아버지 밑에서 서기관으로 일하다 로테에게 사랑 고백을 한 후 파면당하고 마침내 미쳐 버린 한 젊은이, 하인리히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이에 공감을 표하기도 한다. 로테의 파괴력은 베르터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략) 그녀 앞에서는 이성을 잃고 어린애처럼 행동하게 되고, 그녀가 만진 모든 사물, 심지어 그녀가 보낸 하인에게서도 그녀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녀를 느낀다. (중략)
  베르터의 죽음은 어떻게 이해 될 수 있을까? 로테에 대한 마음이 그로 하여금 스스로 목숨을 버리게 한 이유였을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베르터의 감성은 그의 이성과는 합일되리 수 없는 것으로서, 그에게 파괴적인 힘을 발휘한다. 죽음은 초반부에 이미 그의 마음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세상을 인간의 자유의지가 속박을 받는 감옥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언제든 이 속박에서 벗어날 마음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알베르트와의 대화에서 베르터의 죽음에 대한 견해는 더욱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베르터에게는 자살은 자신을 제한하고 있는 속박에서 풀려날 수 있는 수단으로 이해된다. 자살 행위가 스스로의 나약함의 결과라고 말하는 알베르트에게 베르터는 어떠한 감정이든 견디어 낼 수 있는 한도가 잇으며, 이 한계를 넘어선 감정은 인간을 파멸로 치닫게 한다고 맞선다. 즉, 이 세상에서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사람에게 극복이니, 의지니 하는 것은 하나의 이상적인 말 뿐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이성 중심의 계몽주의적인 사고와 감성의 우위를 주장하는 감성주의적 사고를 대변한다. 죽음의 세계는 베르터의 독서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호머의 세계와 대립되는 오시언의 세계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 슬픔을 노래한 것으로, 베르터의 어둡고 절망적인 심리 상태를 그대로 대변한다. 로테를 만나기 전 인간적인 따뜻함으로 그의 마음을 채우던 호머의 세계는 로테와 만나면서 갈등하는 동안 죽음의 세계를 노래하는 오시언의 세계와 갈등하게 된다.
  (중략) 제2부에서 로테와의 재회 이후 그는 "내 마음 속에서 오시언이 호메로스를 쫓아 버렸다"고 말한다. "나도 숭고한 무사처럼 검을 뽑아들고 서서히 죽어가는 생명의 고통으로부터 영주 오시언을 단번에 해방시켜 주고 싶다. 그리고 해방된 그 반신半神의 뒤를 쫓아 내 영혼도 보내고 싶다"는 그의 말에는 죽음을 향한 강한 동경이 피력되어 있다.
  로테와의 첫 만남에서 "클롭슈톡!"이라는 말로 감정의 교감이 이루어졌다면, 절망에 지친 베르터의 마음은 오시언의 노래를 통해 로테에게 전달된다. 오시언은 호머처럼 눈먼 음유시인으로 자신의 유년기를 돌아보면서 아버지 핑갈과 일찍 죽은 아들 오스카, 그리고 일찍 세상을 떠난 영웅들을 노래하고 있다. (중략)
 
  죽기 전 로테를 마지막으로 만난 자리에서 베르터는 자신이 직접 번역한 오시언의 노래를 낭송한다. 지금까지 두 사람이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던 절망적인 감정들이 오시언을 통해 대변되는 것이다. 클롭슈톡이 자연에 대한 종교적인 감성을 표현한다면, 오시언은 비극을 대변한다. 상황은 일치하지 않지만, 두 사람의 비극적인 상황은 오시언의 노래를 통해 전이 되는 것이다.
  로테의 눈에서 눈물이 넘쳐 흘렀고, 그녀의 억눌린 가슴을 시원하게 해 주는 그 눈물은 베르터의 노래를 중단시키고 말았다. 그의 원고지를 내던지고 로테의 손을 잡고 흐느껴 울었다. 로테는 다른 쪽 손에 몸을 의지하고, 손수건으로 눈을 가렸다. 두 사람의 감동은 심각한 것이었다. 그들은 고귀한 사람들의 운명 속에서 스스로의 불행을 느끼고 또 서로 공감했기에 두 사람의 눈물은 하나로 합쳐져서 흘러내렸다. 베르터의 입술과 눈은 로테의 팔에 파묻혀 타올랐다.(114쪽)

그리고 베르터는 자신의 앞날을 예고하는 듯한 마지막 부분을 읽고 낭송을 끝맺는다. (중략)

 로테와의 열정적인 만남을 마지막으로 베르터는 로테와 작별을 고하고, 곧 알베르트의 권총을 빌려 로테가 시동에게 직접 건네준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어디에도 안식처를 찾지 못하던 베르터는 이번에는 더 이상 도피가 필요하지 않은 영원한 안식처로 떠난다. 그곳에는 더 이상의 고뇌도 갈등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로테와의 마지막 순간만을 기억하면서 자신에 대한 로테의 마음을 확인하고, 고통에 찬 생을 스스로 마감하게 되는 것이다.
  베르터는 죽음을 통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고, 괴테는 베르터라는 인물을 통해 개인적인 실연의 고통을 창작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고뇌하는 젊은 베르터는 넘쳐나는 감수성으로 사랑의 열병을 앓는 영원한 연인으로 남게 된 것이다.
Posted by Hyo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