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거나 담배를 사려면 천 원짜리 지폐를 흔히 쓰는데, 그 돈에는 이퇴계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동양의 성인답게 부드럽고도 날카로운 위엄이 있다. 후인들이 그 어른을 흠모하는 마음으로 돈에 초상을 그려 놓았겠지만, 그분은 본래 돈에 별 마음이 없이 안동 청샹산 밑에 숨어서 공부만 하신 분이었고, 또 세상의 소란이나 명리와는 담을 쌓고 지내신 분이었다. 아마도 그분은 때 묻은 돈에 그 얼굴이 그려져서 온 세상을 분주히 흘러다니게 되는 소란을 원치 않으셨을 것이다. 그래서 천 원짜리를 내밀고 담배를 살 때마다 나는 내가 감히 그 그림자 언저리도 밟을 수 없는 그 어른께 민망하였다.
  돈에 그려진 퇴계의 초상을 민망히 여길진대, 당신은 큰 돈 벌기는 다 틀렸다고 마누라는 슬픈 표정으로 결론지었다.


- 김 훈, 『밥벌이의 지겨움』, 생각의 나무, p.83



지하철에서 읽다가 뿜을뻔했다. 흐흐헤헤
베껴적고 싶다. 이 책
어떤 부분은 참 따뜻하고 좋았다.   
Posted by Hyo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