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2010. 11. 27. 15:33 from 서재/접어둔 페이지

  밖에 나온 다이스케는 휘청거리며 100미터 정도 걸었다. 적당한 선에서 접어두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 법한데, 그의 마음에는 그런 만족감이 조금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미치요와 더 오래 마주 앉아서 자연이 명하는 대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털어놓고 돌아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도 없었다. 그는 거기서 그만두었어도, 오 분이나 십 분 후에 그만두었어도 결국 마찬가지였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과 미치요의 현재의 관계는 요전에 만났을 때 이미 진전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보다도 더 이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이스케는 둘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보며 그 어느 시점에서나 둘 사이에 타고 있는 사랑의 불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침내 미치요가 히라오카와 결혼하기 이전에 이미 자기와 결혼한 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자, 그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묵직한 것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그는 그 무게 때문에 다리가 휘청거렸다.


- 나쓰메 소세키, 『그 후』, 윤상인 옮김, 민음사, p.240
Posted by Hyo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