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2009. 5. 26. 19:45 from 서재/접어둔 페이지

  그들은 '산속'이 평대를 가리키고 있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했지만 산속에 떨어진다는 '큰 물고기'의 해석을 두고 다시 의견이 엇갈렸다. 일사학파는 불기둥이 치솟아 하늘에 닿는다는 따져볼것 없이 남성의 발기된 성기를 가리키며, 이로 미루어 큰 물고기는 여성의 성기를 의미한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따라서 노파의 공수는 저주가 아니라 생전의 노파를 사로잡았던 반편이의 거대한 성기를 찬양하는 동시에, 남녀간의 운우지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자 이사학파에선 불기둥을 지나치게 도식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모든 범주에 기계적으로 무리하게 적용함으로써 해석상의 전반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큰 물고기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그것은 지난 전쟁에서 등장한 신무기, 즉 미사일을 가리킨다는 거였다. 미사일이 마치 물고기처럼 유선형으로 생긴데다 뒤에 나오는 불기둥이란 말과 정확하게 호응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곧 미사일론에 대한 반박이 뒤따랐다. 전쟁을 겪어보지도 않은 노파가 어떻게 미사일을 아느냐는 거였다. 귀신이기 때문에 모르는 게 없다는 해명에 대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 말라는 반박이 나왔으며, 뒤이어 어따 대고 선배 앞에서 그따위 개소리를 하느냐는 성명이 발표되자, 너 대학 어디 나왔냐는 질문이 나왔고, 이 씹쌔야, 어딜 나온 게 무슨 상관이냐는 반론이 제기되자, 저 새끼, 싸가지 없는 건 학교 다닐 때부터 알아봤다는 인물평과, 저 새끼는 학계에서 완전히 매장시켜버려야 된다는 매장론이 뒤따랐으며, 선배 무시하다 뒈지게 맞고 피똥 싼 놈 많다는 협박과, 누군 씹팔, 고스톱 쳐서 학위 딴지 아냐는 고스톱 학위론, 그럼 씹쌕꺄, 미사일이 아니면 도대체 뭐냐, 뭐긴 뭐야, 섁꺄, 니 애비 좆이라니까, 라는 식으로 반박이 줄줄이 이어지며 논쟁은 점점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어갔다. 이후에도 불기둥 논쟁, 남쪽 논쟁, 검불 논쟁 등 논쟁의 범위가 점차 확대되며 공수논쟁은 그해가 다 가도록 끝도 없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 천명관, 『고래』, 문학동네 p.24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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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yos :